금요일 밤이면, 집은 아주 조용해진다. 대개 아이들이 외갓집에 자러 가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처갓집에 태워주고 돌아오면 나의 긴 금요일 밤이 시작된다.
보통은 동네 무인카페에 가서 글을 쓴다. 카페에 앉아 있으면, 뭐라도 해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노트북 폴더에서 동화나 소설을 꺼내 고친다. 이야기는 고칠수록 좋아진다. 일주일에 고작 두세 번 쓰는 틈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들은 초조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어젯밤엔 2주 동안 붙잡고 있던, AI가 주인공인 SF 단편 소설 퇴고를 끝냈다. 이야기의 절반을 덜어내고 다시 썼다. 완성 폴더에 넣어두고 7월에 한 번 더 꺼내 고칠 생각이다.
거부할 수 없는 영화가 개봉한 주간엔 일정이 달라진다.
"혹시, 이 영화 볼 생각 있어?"
아내는 웬만한 대작이 아니면, 집에 홀로 있으려고 한다. 나처럼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혼영'이 결정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자전거 헬멧을 꺼내든다. 영화관이 있는 다운타운까지는 자전거로 가는데 35분, 오는데 40분쯤 걸린다.(갈 때 내리막길이 길다) 영화관까지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당근마켓에서 싼값에 구한 영화표가 있다면, 벌써 승자의 기분이다.
길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다. 완만한 내리막길을 내려오면 하천을 낀 자전거길로 접어든다. 가로등 불빛이 하천 위로 늘어지듯 반사되고, 그 옆을 달리고 있으면, 세상에서 살짝 비껴 있는 기분이 든다. 번잡함과 의무감에서 벗어난 시간과 공간. 숨이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서서히 뻐근해질 무렵, 영화관이 나타난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금요일 밤의 열기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나는 어둠 속 자리에 앉아, 곧 시작될 이야기를 기다린다. 혼자 보는 영화의 이점은 많다. 일단 좋은 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커플이나 친구들 사이에는 늘 한 자리쯤 비어 있기 마련이다. 늦게 예매해도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어둠 속, 틈새 시간, 틈새 좌석에서 난 달처럼 차오른다. 누구에게 말을 걸지 않아도 되고, 팝콘을 공유할 필요도 없다. 화면에 나오는 세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지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좋은 영화는 시간을 잊게 만들고, 내가 누구였는지도 잠시 잊게 만든다. 영화가 끝나면, 나는 캄캄한 우주로 향하는 비행체를 타듯 다시 자전거에 오른다.
혼자 영화를 본다는 건, 함께 나누는 즐거움과는 다른 종류의 사치다. 최근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혼자 영화관을 찾는 관객 비율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20대 남성뿐 아니라 40대 여성, 중장년층의 '혼영족' 비중도 뚜렷하게 늘었다고. 영화관 통계를 보면, 다정함만이 관계의 해답은 아니고, 고독이 꼭 결핍은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린 것 같다.
MZ세대뿐 아니라 중년 이후 세대도 자기 시간을,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누리는 쪽으로 옮겨가는 트렌드가 뚜렷하다. 누군가와 나누지 않아도 좋은 시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시대. 사회는 이제 그것을 쓸쓸하다고 정의하지 않고, '자기 돌봄'이라 부른다. 나에게 금요일 밤은, 자기를 돌보는 모험의 시간이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 불빛이 하나둘 꺼진 동네를 지나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지금, 아무도 모르게 빛나고 있다고. 한껏 헐거워질 수 있어서, 결국엔 단단해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