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골 때리는 그녀들> 프로그램 영상을 찾아본다. 이 프로에선 여자 셀럽들로 구성된 풋살팀들이 풋살 경기를 한다. 아이를 재울 시간이라, 본방을 보진 못한다. 보통, 하루 이틀 후 유튜브에 올라오는 축약본을 찾아본다. 이것이 내겐 EPL의 손흥민 경기를 찾아보는 것과 맞먹는 루틴이다.
난 2021년부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의 오랜 팬이다. 이 프로가 처음 시작했을 때, 대부분의 멤버들은 맨땅에 헤딩하듯 풋살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맨날 운동장에 나와서 뜀박질하는 초등학생보다도 못한 체력과 기술을 갖고 있었다. 의도적인 패스는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골은 골문 앞에서 우당탕 들어가기 일쑤였다. 사실 경기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초창기에 등장했던 배우 박선영이나 가수 송소희는 풋살을 먼저 접해 봤다는 이유로, 거의 메시나 호날두처럼 보이기도 했다.
경기 자체의 수준이 높지 않았는데, 계속 봤던 이유가 뭘까. 그건, 그라운드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캐릭터들 때문이었다. 그들의 몸짓과 표정엔 하나같이 이런 것들이 묻어 있었다.
-마음처럼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서 느끼는 당혹감
-이기고 싶은데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난 것 같은 좌절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이를 악물지만 현실은 제자리인 것 같은 답답함.
그들이 보여주는 그런 감정들은, 내가 한 번쯤은 느꼈던 것들이기도 해서 내 가슴 깊은 곳을 툭툭 건들곤 했다. 경기답지 않은 경기를 보면서, 혀를 차거나 실소를 터뜨리면서도 그들만의 경기에 깊이 빠져든 건 그 때문이었다.
시즌 몇 개가 지나면서, 그라운드에서 몸개그를 펼치던 선수들은 이제 정말 ‘선수’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성장했다. 난 그 성장의 과정을 계속 지켜보았고, 그들의 서사는 내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난 그들의 이야기를 공유한 사람이 되었다. 이야기를 공유하면, 애정이라는 게 생겨난다. 애정한다는 건, ‘밉거나 곱다고’ 평가하는 걸 넘어서서, 오롯이 그 존재를 마음에 담는 걸 뜻한다. 그 존재를 응원하고, 부드러운 시선과 마음으로 그 존재의 움직임을 쫓고, 소식을 계속 알고 싶고,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누군가의 팬이 되거나, 지지자가 되는 일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추앙하게 되는 건, 그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내 마음을 건드는 뭔가를 발견하고, 이야기를 쌓아 왔기 때문에 그 존재가 오롯이 내 마음에 담기게 된 것이다. 미숙한 표현으로라도 내 삶과 일상을 말하기 시작할 때, 내 글이 읽히는 어느 곳에서는 공감이 생산되고 그게 모이면 ‘애정’이 발생한다. 이건, 물리 법칙에 가까운 사실이다.
이야기를 공유하는 일은, 세상에 개인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내 목소리를 듣고서 나를 호의와 애정어린 눈으로 보아줄 다른 존재를 찾는 여정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람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마음을 연다.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 세계에, 아직 순수한 애정이라는 게 남아 있다면, 그건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난 이 글 한 편으로 오늘도 거대한 애정의 호수가 마르지 않도록 몇 바가지의 애정을 발생시켰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