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처럼 떠밀려 간다

by 송광용

어제 아침 출근길, 엘리베이터 공사 중이라 둘째 손을 잡고 13층을 걸어 내려왔는데 글쎄, 마스크를 깜빡했다. 다시 올라가는 건 엄두도 안 나고. 아내에게 전화해서 베란다로 마스크를 좀 던져달라고 했다. 잠시 후 아내가 빼꼼 고개를 내밀더니, 나의 면 마스크와 아이의 일회용 마스크를 아래로 던져줬다.


면 마스크는 내가 서 있던 곳에서 3미터 거리에 떨어졌다. 아이의 일회용 마스크는 공중에서 아주 오래 머물며 떠 있었다. 그리고 바람에 떠밀려 멀리멀리 날아갔다. 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짧은 순간에 내 마음엔 ‘마스크가 포레스트 검프의 깃털처럼 날아간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그 문장은, 본 지 20년도 넘은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던 때로 날 이끌었다.


고교 시절,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극장에서 보았다. 여러 명의 교회 친구들과 보았던 것 같다. 바보 온달을 연상시키던 검프는 역사의 중요한 꼭지마다 활약했다.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든 일들은,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사람만 보자면, 위대함과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사람이 바로, 포레스트 검프였다. 어쩌면 그 영화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것인지도 모르겠다. 가장 평범하고, 아니 어쩌면 평균 이하로 보이는 사람들이 역사를 이끌어왔다고.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재능을 징검다리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고.


검프는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을 거쳤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결말은 바로, 사랑을 다시 찾은 일이었다. 그의 삶에서 그것만큼 중요한 역사는 없었다. 우리도 역사의 변곡점이나 그 주변을 거쳐 생의 마지막으로 달려갈 것이다. 인생의 영화가 끝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역사는 ‘내가 누구를 사랑했고, 내 곁엔 누가 남았는가.’가 될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던 것처럼.


고교 시절 그 영화를 보면서 얻었던 단선적인 교훈은,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구에게도 위협적이지 않은 검프가 다른 이를 해코지하거나 밟고 올라서지 않아도 위대한 일을 이룬다는 것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영화가 주는 교훈은, 그런 단순한 성공 원리가 아니었다.


이 영화는 ‘검프-역사’와 ‘검프-제니’, 이 두 가지 연결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과연 어떤 연결에서의 성공이 진짜 행복과 연결될까. 어떤 이들은 역사 속 검프의 위대한 시간들이 더 크게 보이겠지만, 난 검프의 진짜 성공은 ‘검프-제니’라는 사적인 역사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포레스트 검프가 거둔 진정한 성공은,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은 있다는 걸 확인한 일이다. 내 진심은 비록 깃털처럼 가벼운 것이라도, 바람에 날려 허공에 이리저리 떠밀려 가다가도 결국 누군가에게 가닿을 것이다.


난 하늘을 쳐다보며 마스크의 비행을 눈으로 좇다가, 어어, 하며 마스크가 날아간 곳으로 움직였다. 마스크는 한 20미터 떨어진 곳까지 밀려가더니, 노란 봉고차 지붕 위에 날개를 접고 나비로 내려앉았다. 나비로 날아간 것을 다시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난 뒤돌아섰다.


그 길로 차에 타서 시동을 거는 한편, 깃털로 날아갔지만 누군가의 마음에 아직 내려앉지 못한 내 진심들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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