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낭만이라는 것은

by 송광용

 -낯선 거리를 걷다가 작은 카페로 들어간다. 창가에 앉아 대지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를 지켜본다.


-비를 피해 가까운 서점으로 들어간다. 서점의 의자에서 생소한 작가의 책을 뒤적거리며 오후 시간을 꼬박 보낸다. 


-갑자기 짠 내가 코끝을 맴돌아 가까운 바다로 무작정 차를 몰아간다. 마침 번지기 시작한 바닷가 석양 아래서 파도의 포말을 바라본다.


 -넓은 침대에 누워 창밖의 어둠과 여전히 빛을 간직한 곳의 옅은 풍경을 바라본다. 내일은 또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감사하며 잠이 든다.

 이제는, 내 일상에서 기대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나의 시간을 서정적인 배경 앞에 세워 두고 맘대로 낭비하는 자유는 서산 너머로 진 태양빛 같이 붉은 잔상만 남았을 뿐이다. 어둠이 깔린 산길을 더듬더듬 내려오며, “어라 언제 해가 졌지?” 하는 탐험가처럼, 난 시간을 맘대로 꺼내 쓰던 금고의 문이 봉인되어 버렸다는 걸 갑작스레 깨닫게 되었다. 일생일대의 변화는, 아이와 함께 찾아 왔다. 아이가 엄마의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뚫고 내지른 울음소리가 바로, 내 시간의 금고가 철컹, 하며 닫히는 소리였던 것이다.


가끔 예능 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를 본다. 카메라 앵글에, 혼자 사는 이들이 일상에서 추구하는 일들이 담긴다. 요리를 하거나 집을 고치거나 파티를 준비한다. 열심히 운동도 하고 뭔가를 맛있게 먹거나 캠핑을 떠나기도 한다. 일상의 사소한 일을 하는데 몇 시간에서 하루 종일 걸리기도 한다. 뭔가 어설프게 시작한 일은 우여곡절 끝에 만족의 순간에 다다른다.


그 한순간의 만족을 위해, 몇 시간에서 하루 종일을 소비한다. 그렇게 소비한 과정들과 그 끝에서 얻은 여러 감정들이 하나의 말로 묶인다. 바로 ‘낭만’이다. 낭만을 추구하는 일은, 효율적이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나 돈을 낭비해도 용서된다. 오히려 많이 낭비한 만큼 낭만 지수는 높아지기도 한다.


우리는 낭만을 물질적인 것, 숫자로 셈할 수 있는 것, 그 이상으로 인식한다. 누군가가 추구하는 낭만은,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낭비하는 것들은, 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보여주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아, 저걸 위해서 소중한 시간과 돈을 쓴 거구나. 남이 볼 땐 별 거 없어 보여도, 저 사람에겐 참 중요한 가치인 모양이구나.”


지금 나의 낭만은 어떤 모양일까. 낭만적인 순간과 그것을 만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하나의 덩어리로 묶여 있던, ‘나 혼자 사는’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다. 내 낭만은 ‘하루’ 안에서 수없이 파편화되어 있다. 나의 낭만이라는 것은, 설거지 전에 귓구멍에 찔러 넣는 블루투스 이어폰이다. 홀로 장을 보러 가며 핸드폰 화면으로 보는 명문의 칼럼이다. 아이들의 목욕을 시키면서 틀어 놓는 권진아의 슬픈 노래다. 출퇴근을 하면서 깔깔거리는 팟캐스트 방송이다. 모두가 잠든 밤 꺼내 읽는 성장소설이다.


낭만의 순간을 오래 준비하던 시기는 지나갔다. 내가 누리는 낭만은 일상의 의무에 수없이 쪼개 붙인 모서리 충격 방지 스펀지 같다. 자잘한 조각 스펀지들이 내 일상을 떠받들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쿵, 하고 부딪힐 수 있는 순간에, 충격을 완화해준다.


짧은 시간 음악을 듣고, 누군가의 대화를 듣고, 몇 페이지의 책을 읽으며 덩어리가 훨씬 큰 의무들의 무게를 잊는다. 그리고 난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의무들 이면에 낭만 스펀지를 붙일 것이다. 그 어떤 의무도 내게 충격을 가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이 오면, 대중없이 갖다 붙인 낭만들만 별처럼 빛날 것이다.

keyword
이전 16화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