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거나

모두가 자신의 다큐를 남기고 싶어 한다

by 송광용

난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잠이 든다. 요즘은 밤 시간을 가장 편안하고 영양가 없는 일들로 채우고 있다. 오늘은 아마존 프라임에서 나온 토트넘 핫스퍼 다큐를 4편이나 이어서 보았다. 축구를 둘러싼 뒷얘기들은 영화보다 몰입감 있었다. 어느 순간 의자에 앉아 잠이 들었다가 깨어난 후에야 영상을 끄고 누웠다. 내일 밤엔 아마도 2편 정도 더 보게 될 것이다.


토트넘의 무리뉴 감독은 새로 부임한 후에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선수들을 이끌기 위해 수많은 말을 한다. 기복이 있는 선수에게 동기부여를 하고, 다그치기도 한다. 팀의 승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다한다. 그의 삶은 매우 단순해 보인다. '축구 경기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모든 걸 한다.' 그게 그의 일이다. 선수들과 신뢰를 쌓고 전술을 훈련시키고 선수 개개인의 기량을 분석한다. 한 경기를 이기는 걸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승리를 쌓아가서 '마침내' 승리해야 한다.


승리가 목표인 치열한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내 일상을 찍은 다큐를 보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재미없을까. 지루할까. 아니, 예상을 깨고 재미있을 것이다. 다큐가 된다는 건 편집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큐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모종의 재미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지루한 전체에서 흥미로운 어느 지점을 잘라 이어 붙인 걸 단순하게 다큐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날 끌어당긴 다이내믹한 축구팀 토트넘도 반복되는 일상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누구도 피할 수 없다. 편집점이 없는 모든 삶은 지루할 수밖에.


글을 왜 쓸까. 왜 나는 영상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다 일어나, 자려고 누워서 이런 걸 쓰고 있는 걸까. 난 지금 전체 필름을 그저 재생한다면 백이면 백, 모두 잠들고 말 내 일상에 편집점을 들이대고 있다. 다큐로 재생산하고 있는 중이다. 난 매일 내 삶을 다큐로 만들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그래서 쓰고 기록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지루하고 영양가 없이 보낸 오늘 같은 하루에서도 의미 있는 뭔가를 건져 올리고 싶은 것이다. 지루한 필름 속에 파묻힌 그저 그런 일상인으로만 남긴 싫으니까.


그래서 에세이를 써왔다. 쓸 때마다 내 삶은 내보일만한 다큐가 된다. 수많은 시간이 편집에 살아남지 못하고 잘려나가지만, 기어코 살려 이어 붙인 필름 몇 조각이 내 삶에 의미가 된다. 영양가 없는 일상을 다시 받아들일 동력이 된다.


토트넘 다큐의 제목은, <All or nothing>이다. 이 말만큼, 잠자리에서 쓰는 이런 글을 잘 나타내는 말이 있을까. 이 글은 내 모든 것이거나 아무것도 아니다. 내 모든 것이라 여겼는데 아무것도 아니었거나,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했는데 모든 것이었던 일이 삶에서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속단하지 않는다. 그저 이렇게 되뇔 뿐이다.

"글쎄요, 모든 것이거아무것도 아니겠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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