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JTBC <싱어게인>을 보며 생각한 것

by 송광용

1
요즘 가장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은 JTBC <싱어게인>이다. '무명가수전'이라는 부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무명 가수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이 오디션엔, 전 국민이 다 아는 드라마 OST를 부른 가수들이 등장하고, 이런 가수가 왜 그동안 안 나왔나 싶을 정도로 실력 있는 가수가 나오기도 한다. 아이돌이었다가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는 이들도 나온다.

슈퍼스타K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창력 말고 우승의 요건 중 하나는, '극적인 스토리'를 가졌는지 여부였다. 그만큼 누군가가 걸어온 삶의 궤적은, 그 사람에게 매력과 진정성을 부여하는 요소였다. 그래서 때로는 억지로 만들어낸 스토리 같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방송사에서 미는 참가자에게 스토리를 만들어 주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었다.

<싱어게인>에서 참가자의 사연, 스토리는 결정적인 우승 요건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참가자 모두가 스토리를 가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수'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긴 했지만, 설 수 있는 무대가 없고, 불러주는 곳이 없고, 가수로 살아가는 일을 위협받는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원하던 호칭으로 불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원하는 지점에 이르지 못한, 끝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 불확실 속에서 음악을 떨쳐내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듯 걷는 이들이다.

그들의 현 상황은, 그 어떤 스토리보다 극적이었고 묵직한 울림을 주었다. 난 그들이 1라운드 무대를 서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수시로 울컥했다. 그들은 호기롭게 달려드는 여느 오디션의 참가자들 같지 않았다. 눈빛은 깊고 무거웠고, 약간은 달관한 것 같고, 흥겨운 몸짓조차 애수를 품고 있었다.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흙 속에 묻혀있던 진짜들을 만나는 건 설레는 일이다. 그들이 어디까지 갈지, 그들의 노래를 누구에게까지 들려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2
난 언젠가 그들과 같은 눈빛으로 자판을 누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운 좋게 책을 내고, '작가'라고 불릴 수 있게 되었지만 어디서도 내 글을 위한 무대를 내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싱어게인>에 출연한 가수들처럼, '무명 작가전'이라는 책 전시회장에 서서, "제가 냈던 책은 이것입니다. 그 후로 책을 내진 못했지만 아직도 이런 마음으로 쓰고 있습니다." 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끝내 무명작가로 남는다 할지라도, 난 쓰면서 걸어온 길을 결코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쓰는 일은 매 순간, 좁은 삶의 링 안쪽에 바른 구리스였기 때문이다. 맨몸으로 통과하려고 했다면 쓸리고 긁혔을 순간들도, 내가 쓴 글들이 삶의 압박을 조금은 미끄럽게 비켜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통과해 가려고 웅크리기를 반복할 수 있었다. 글쓰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링 앞에서 기운을 잃고, 지레 의욕을 잃고, 나마저 잃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일이다. 내게 쓴다는 것은.

3
2020년은 코로나19 말고, 영원히 기억될 사건이 있었던 해다. 내 첫 책이, 첫눈처럼, 첫 아이처럼, 첫사랑처럼 내리고 태어나고 나타났던 해이기 때문이다. 그 책은 겸손을 일깨워주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책은 함께 만드는 것이고, 스크럽을 하고 날 가마 태워준 사람들, 그 선의와 노력을 깨닫는 일이기도 했다. 이 12월, 뒤를 돌아보며 감사하는 것이다. 올해를, 코로나19 말고 기억할 매개가 있다는 것이.


글로 만난 지인이, 내 책을 리뷰하면서 책의 내지를 찍어 올려놓았다. 늘 표지만 보다가 내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느낌이 신선했다. 나도 내 글도, 겉만 말고, 몇 장을 넘긴 아름다운 손에게 발견되고 싶다. 여전히 읽히고 싶다. 2021년도엔, 읽는 사람, 쓰는 사람을 넘어서, 읽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싱어게인 #무명가수전 #마음이조금은헐렁한사람

keyword
이전 14화그렇게, 아버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