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어린이집에서 어쩔 줄 몰라한다

by 송광용

어린이집에 둘째를 데리러 가면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오셔서 오늘 누구는 어땠고 뭘 잘했고, 이런 얘길 해주신다. 이때 엄마들과 아빠들의 반응이 좀 다르다. 선생님이, "오늘 아이유는 노래를 엄청 잘 따라 하고, 다른 아이들한테도 가르쳐줬어요."라고 한다 치자.


엄마들은 대체로 "아 그랬어요? 사실 아이유가 집에서도..." 솰라솰라 하며 대화를 확장시키거나 심화시킨다. 어떤 엄마들 중에는 아이 데리러 왔다가 아예 어린이집 바닥에 앉아서 작정하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아빠들은, 선생님의 얘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는 듯, 묵묵히 듣고 있는다. 그러다가 선생님 말이 끝나면, "아, 네." 하고 수줍게 한 마디 하거나, 선생님 대신 아이를 향해서, "아이유야, 오늘 너 노래를 잘했구나." 하는 식으로 쓰리쿠션식 대답을 하곤 아이에게 서둘러 인사를 시키곤 황급히 자리를 뜬다.


나 역시도 다른 아빠들과 다르지 않다. 아이에 관한 얘길 듣는 건 좋지만, 어떤 표정을 짓고 아이 얘길 들어야 할지 난감해서 얼른 현관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어쩌면 아이를 데리러 가는 그 시간은, 긴 말을 듣는 머릿속 회로가 이미 닫혀버린 시점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서 사회성이 도태된 건지도. 이런 경우는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처럼 큰 비극을 겪은 후 전당포 주인이 되어버린 원빈의 모습에서 보긴 했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앞으로도 선생님이 아이에 대해 얘기할 때 눈을 똑바로 쳐다보거나, 대꾸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반가사유상을 닮은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께 할 말을 아이에게 하는 쓰리쿠션식 반응으로 일관하겠지.


문제는 그게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대화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더 어렵다.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과 대화하면 꽤 재미있다는 반응을 얻기도 했는데. 아이들은 자라면서 점점 사회성이 떨어지는 아빠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어떤 역량이 점점 약해진다면, 다른 뭔가가 강해지는 걸 거야."

"나이 들수록 지혜가 늘어난다잖아?"

아무리 궁해도, 이런 근거 없는 위로에 놀아나진 않겠다. 어떤 게 점점 약해지면, 내 능력 게이지는 이제 에너지 효율 2단계로 내려왔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가 들수록 지혜가 늘어나는 일은, 끊임없이 녹슬지 않기 위해 노력할 때 가능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약해지는 능력에 대체재는 없다. 입안이 쓰지만, 그게 진실이다. 다만, 점점 약해져도 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을 순 있다. 어린이집에서 어쩔 줄 몰라도, 아이들에겐 수수께끼를 내주는 아빠다. 점점 대화가 어렵지만 책을 꺼내는 데는 주저함이 없는 인간이다. 능력은 줄어들지만, 나를 좋아할 이유는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음에 감사하다. 아빠가 되는 일은, 아니 아빠가 되어 나이 먹는 일은, 이렇게 씁쓸함과 감사함을 오가는 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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