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케이블에서 방영되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였다. 아내가 마침 외출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난 8개월 된 둘째 딸을 아기 띠에 메고 어르고 있었다. 아내가 외출할 시간에 맞추어 잠자는 시간을 조절해 준덕에, 아기 띠에 매달려 있던 아이는 얼마 안가 잠이 들었다. 아기가 잠들자 조심조심 앉아서 아기를 내 가슴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다.
료타는 유능한 남자다. 대기업에서 근무하며 중요한 프로젝트에 자주 투입된다. 그에게는 6살 난 아들 케이타가 있고, 이해심 많은 아내가 있다. 아내는 주말에 한두 번 들어올 뿐인 남편을 이해한다. 료타는 아이에게 무뚝뚝하고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하지만, 좋은 집에, 좋은 교육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자신의 가정과 삶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모두를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생긴다. 아들을 출산한 병원에서 연락이 와서, 아이가 바뀌었다는 소식을 전한 것이다. 이후 료타의 가족은 친자의 가족을 만난다. 친자의 아버지는 별 야망 없이 작은 전파상을 운영한다. 그 가정은 부유하지 않다. 하지만 그 가정은 아이가 셋이나 있고 아버지는 늘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료타의 가족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다.
병원 측은 이런 경우 발동하는 매뉴얼에 따라 두 가정을 중재한다. 병원 측에선 이런 경우 대부분은 아이를 다시 바꾼다고 말한다. 료타는 자신의 ‘피’를 가진 류세이와 6년을 함께 한 케이타를 사이에 두고 잠시 고민하지만, 아내의 바람과는 달리 자기의 피를 물려받은 류세이를 데려오기로 결정한다.
아버지의 선택
6년을 함께 한 내 아이가 어느 날 나의 친자가 아니라는 얘길 듣는다면? 나의 친자와 바꾸어야 할까. 영화는 ‘낳은 정’이나, ‘키운 정’이냐 하는 진부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실은 그 이면에 더 중요한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과연 아버지란, 어떤 존재냐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감독의 경험에서부터 출발했다. 영화 촬영 때문에 장기간 집을 비웠다가 돌아온 다음 날 아침, 세 살 난 감독의 딸이, “또 와”라고 한마디 건넸다고 한다. 그때 감독은 적지 않은 상처를 받았고, 역시 피만 섞여서는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고민을 토대로 ‘피’인지 ‘시간’인지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아버지를 그려보기로 한 것이 이 영화의 시작이었다.
료타는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그리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버지’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얻어간다. 영화에 아주 인상적인 대화 장면이 있었다. 료타와, 친자의 아버지인 유다이와의 대화이다. 유다이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는 료타가 안타깝다.
“료타 씨는 나보다 젊으니까 애랑 같이 있을 시간을 더 만들지 그래요.” “여러 형태의 가족이 있는 것도 괜찮아요.” “목욕도 같이 안 한다면서요?” “우린 뭐든 혼자서 하게 하는 방침이거든요.” “방침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런 거 귀찮아하면 안 돼요. 지난 반년 동안만 봐도 케이타가 료타 씨보다 나랑 더 많이 있었어요.” “시간만 중요한 건 아니죠.” “무슨 소리예요? 시간이죠. 애들한텐 시간이에요.”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 하는 거죠.”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중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그렇겠지만, 먼저 내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그다음으론 난 어떤 아버지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네 살 된 첫째 딸. 돌아보면 4년간의 시간 동안 아이와 나 사이, 아이와 우리 가족 사이에는 무수한 이야기가 생겼다. 그 아이와 함께 한 4년은, 아이의 것만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기도 하다. 지금도 나와 함께 자고, 함께 일어나며, 내 출근길에 함께 어린이집에 간다. 그런 아이를 다른 곳으로 보낼 수 있을까. 내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내 아이와 나 사이엔, 이미 ‘피’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우리의 시간과, 쌓인 마음과 사랑이 전부다.
료타는 6년 간 함께 한 자신의 아들을 결국 매몰찬 말로 보낸다.
“어른이 되기 위한 미션이야. 외로워도 울거나 전화하지 마.”
그 뒤의 영화 내용은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궁금하면 찾아보시라.
아버지의 성장
이제 어떤 아버지가 될 것인가, 하는 고민이 남는다. 정답을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기도 하고, 정답을 모르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매년 학급에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이가 꼭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 행동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비롯된다. 가정이 온전하지 않거나, 부모가 사이가 안 좋거나,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거나. 가정에서의 본질적인 병이 치료되지 않는 한, 증상은 지속된다. 많은 경우, 학교에서는 그 증상을 완화하는 일 밖에 해줄 수가 없다. 병의 바이러스는 손을 못 대고, 통증만 완화하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맡은 6학년의 한 남학생은, 전교 선생님이 다 아는 말썽꾼이었다. 5학년 때는 수틀리면 담임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교실 밖을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부모는 별거 상태였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서 그 당시엔 아버지와 함께 살던 중이었다. 아이의 마음에 난 상처는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고, 별거라는 상황을 맞은 아버지도 아이에게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6학년이 되어서도 문제 행동은 계속되었다. 다른 아이를 때리고, 툭하면 아이들과 싸우고, 한편으론 사랑받고 싶은 욕구 때문에 여학생들 주변을 맴돌다가 갈등을 겪기도 했다.
학기 초 아버지를 불렀다. 아이의 상태와 학교에서의 일들을 다 들은 아버지는 무척 놀라는 눈치였다. 그동안 학교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자신은 잘 몰랐다고 했다. 작년 담임인 여선생님은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엄마한테 연락을 했고, 엄마는 그 얘기를 별거 중인 아버지에겐 전하지 않은 것이다. 엄마는 아이와 아버지 모두에게 지쳐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노력하겠다고 했다. 나 역시 사랑에 결핍된 그 아이, 상처 난 짐승처럼 주변을 할퀴는 그 아이를 최대한 자극하지 않고,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애썼다.
아버지는 작은 업체를 운영하는 그 바쁜 와중에서도 나와 한 약속을 지켰다. 그 후로도 몇 번 사건이 있어서 아버지와 만나긴 했지만,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나는 나대로, 아이를 스포츠부로 이끌어 내재된 에너지를 운동으로 풀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혼나고 시작해서 생긴 피해의식을 없애주기 위해, 사건이 날 때마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 또 들었다. 아이는 점차 나아졌다. 우리 반 아이들도 자주 그런 말을 했다. 작년과 다른 애 같다고 말이다.
아이를 무사히 졸업시켰다. 졸업식장에서 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았다. 감사하다는 짧은 말속에 아버지의 긴 말이 다 담겨 있었다. 아이의 고모도 내 손을 잡고 아이 앞에서 펑펑 울었다. OO이가 선생님 많이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면서.
졸업하기 며칠 전, 아이들은 나를 위해 깜짝 파티를 열어주었다. 그 파티 준비를 주도한 아이가 바로 그 아이였다. 졸업한 후에도 그 아이는 틈만 나면 내게 찾아온다. 우린 하이파이브를 하고, 포옹을 한다. 물론 우리가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내 앞에서도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고, 흥분해서 날 뛰기도 했다. 나도 학교 밖에서 우연히 만난 녀석이 인사하지 않는 것에 크게 상처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과정이었다. 상처가 아무는 과정 말이다.
아버지의 결단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없었더라면, 아이는 결코 좋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병이든 예방이 중요하고, 병이 든 이후 치료에 치르는 노력과 비용은 훨씬 커지게 마련이다. 아버지가 그런 존재다. 아이의 병을 생기게도, 낫게도 하는 그런 존재 말이다.
영화가 끝나고 얼마 안 가 내 가슴 위에 있던 아이가 잠을 깨서는 날 올려다보았다. 아가야, 너와 아빠 사이에 생겨날 무수한 이야기를 기대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