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없는 사랑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

by 송광용

음악의 선율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이라면, 우리는 길거리마다, 집집마다, 방구석 구석에 재생되었던 음악들이 오래된 눈이나 먼지처럼 쌓여 있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소재가 사랑과 이별인 걸 생각하면, 세상은 온통 사랑과 이별로 가득 차 있고, 이 세상의 환경 미화원들은 은퇴 직전까지, 치우기가 무섭게 다시 쌓이는 ‘사랑과 이별’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이다.


 사랑 노래의 대부분은 남녀 간의 연애 감정을 다룬다. 이걸 보면,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랑’이거나, 최소한 ‘사랑’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연애 시대>의 명대사 하나를 보면, 어째서 모든 거리마다, 집집마다, 방구석에도 연애 감정이 음악에 실려 쏟아져 내리는지 짐작할 수 있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 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한다. 내일을 기다리게 하고 미래를 꿈꾸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
-드라마 <연애시대> 중.


 ‘연애란 어른들의 장래희망 같은 것’이기 때문에, 십 대도, 청년도, 장년도, 심지어 연애 세포마저 허리가 굽어 있을 것 같은 노년도, 저마다의 선율에 사랑의 가사를 얹어 노래한다.


 붉게 타는 노을을 보면서 소리쳐 부를 사랑의 대상을 떠올리고, 상하이 트위스트를 추면서 난생처음 만났던 사랑의 대상을 떠올린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대상은, 어린 아기가 아니고 놀랍게도 연애 상대다. 밤비 내리는 영동교를 비를 맞아가며 걷는 이유는, 버스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 사람을 잊지 못해서다.


 장르를 불문하고 저마다 사랑을 노래하고 있지만, 노래마다 표현하는 사랑의 색과 결은 저마다 다르다. 분류하는 기준에 따라 수십 갈래로 나눌 수 있겠지만, 사랑 노래를 화자의 성향에 따라 다음과 같이 두 부류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하나, ‘들뜨고 확신에 가득 찬 화자’가 말하는 사랑 노래

둘, ‘신중한 나머지 힘없어 보이는 화자’가 말하는 사랑 노래


 사랑을 노래하는 이 두 사람의 화자는 저마다 비판받을 만한 허점을 안고 있다.

 첫 번째 부류의 화자는, 내 삶의 유일한 사랑은 바로 당신뿐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갖고 있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사람들은, 이 ‘완전한 확신’이라는 말을, ‘완전한 착각’이라는 말로 바꾸어도 별 무리가 없다는 걸 안다. 이 화자는 운명론자다. 우리는 어떻게든 만나게 될 운명이고, 내 삶은 너 아니면 안 된다는 읍소를 늘어놓는다. 세상 ‘끝 날’까지 당신을 사랑하겠다고 고백한다. 이 화자는 분별력 있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끝나는 날이 세상의 끝 날이라면, 당신은 앞으로 세상의 종말을 여러 번 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끝장나지 않고 보란 듯이 굴러갈 겁니다. 그리고 내 삶의 유일한 사랑이라고 말했던 그 ‘당신’은 현재 문법 체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단수형 복수’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두 번째 부류의 화자는, 아주 신중하고 소심하다. '평생 너와 함께 하겠다'는 것 같은,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나를 사랑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한다. 사랑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뭔가 불안한 마음이 느껴진다. 현실 속에서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우리의 사랑을 어떻게 유지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이런 나’의 구체적인 정황은 보통 드러나지 않는다. 신체기능에 문제가 있는 건지, 돈이 없는 건지, 나이차가 서른 살쯤 나는 건지, 어떤 건지 알 수 없다. 겸손함을 어필하기 위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조금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 화자를 꽤나 진실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진실성’ 측면에서는 이런 의심을 살 수 있다.


“아니, 사랑한다면서, 우리는 운명적이야! 같은 말도 못 합니까? 사랑한다면서, 당신을 평생 웃게 해 줄게. 같은 약속도 못합니까? 한창 뜨거울 시점에도 이렇게 사랑에 힘이 없는데, 나중엔 어떻게 되겠습니까? 소 닭 보듯 할 게 눈에 선하네요.”


 사랑을 노래하는 두 부류의 화자가 모두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 둘 중에 내가 선호하는 화자는 후자이다. 난 자기 비하로 가득하거나 자신의 소심함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가사를 좋아한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임재범, <너를 위해> 중


 사랑을 얻기 위해 자기를 포장해도 모자랄 판에, 자기를 이토록 적나라하게 드러내다니!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가진 남자를 좋아하는 여자는 없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은, 여자를 덩달아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그래도 이 가사가 좋은 것은, 내 허물을 다 드러내도 날 지켜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판타지 때문이다.


 소심한 화자인 듯 보이지만, 강한 약속으로 마무리하는 노래도 있다. 두 부류 화자의 혼종이라고 할까. 다음은 김동률의 <감사>의 가사다.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 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김동률, <감사> 중


 앞부분에 부족한 자신을 언급해서 소심한 화자인 줄 알았는데, 뒷부분에서 강한 확신을 가진 운명론자의 면모를 거침없이 드러낸다. 뭐 좀 혼란스럽긴 하지만, 가사에 자기를 낮추는 겸양이 들어있으므로 난 이 가사 좋아한다.


 난 왜 힘없는 사랑 노래를 좋아하는가.

 난 평소에도 주장이 센 사람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자기 말에 강한 확신을 갖고 주먹을 흔들며 말하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마음에 담을 여유 공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순전히 느낌일 뿐이다. 나의 편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런 경향성이 사랑 노래의 가사를 보는 눈도 혼탁하게 만들어 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 사랑을 확신하며 외치면, 음 저 정도로 간절하고 감정이 고조되어 있군, 하고 좋게 봐줄 법도 한데 말이다.


 힘없는 사랑 노래의 화자는 비리비리해 보이고, 불쌍해 뵈고, 눈빛이 좀 불안해 보이지만, 왠지 감정이입이 용이하다. 그래서 ‘부족한 나를’ 어쩌고 하는 가사만 보면, 자동으로, 음 좋군,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비리비리해 보이고, 불쌍해 뵈고, 눈빛이 좀 불안해 보이는 화자가 내 속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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