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와 꽃이 된 노래들

by 송광용

요즘 카세트테이프나 CD로 음악을 듣던 얘기를 하면, “오, 아날로드 갬성~” 하는 얘기를 들을지도 모르겠다. 카세트테이프나 CD와 같은 물성을 지닌 사물로 음악을 듣던 시절은 어느새, ‘아날로그’라는 하나의 폴더로 정의되어 압축되었다. 가끔 아날로그 폴더를 클릭해서 그 안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그 폴더 안에는 그 시절 내가 주야장천 들었던 몇몇 뮤지션들의 이름과 그 음악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기억도 함께 들어있다.


지금은 목회자가 된, 고교 시절 내 절친은 진로를 고민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영원한 것을 하고 싶어.”

그러면서 그는 그가 생각하는, 영원한 것 두 가지를 꼽았다. 그건 ‘하나님의 말씀’과 ‘음악’이었다. 내가 듣기에 후자는 좀 생뚱맞았다. 음악이 영원하다니. 그 친구가 어떤 음악들을 듣는지 뻔히 아는데. 친구의 생각으로, 성과 속을 대표하는 것을 한 가지씩 꼽은 건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는 뮤지션이 되는 대신, 목회자가 되었다. 함께 숱하게 노래방을 들락거리며 지켜본 바로는, 그의 선택은 옳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요즘 가끔, 그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영원한 것 중 하나는 음악이라는. 어떤 면에선 그 말이 영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만 하더라도, 그 옛날 내가 들었던 노래들은 내 마음에 아직 살아 있고, 이따금씩 그것들은 그 시절의 색과 냄새를 몰고 와서 내 가슴을 쿡쿡 찔러대기 때문이다.


그 시절 노래가 담긴 아날로그 폴더를 들여다본다. 그때는 대부분의 앨범이 여러 곡의 노래가 함께 묶여 있는 정규 앨범이었다. 앨범엔 그 앨범을 대표하는 타이틀곡과 그 외의 수록곡들이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 나오면 하루 종일 전체 노래를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듣다 보면, 그 속의 노래들은 각각 독립된 무언가가 아니고, 끈끈한 연쇄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를 테면, 하나의 노래가 끝나면 내 머릿속엔 자동으로 다음 곡의 시작 부분이 재생되는 식이다.


좋아하는 앨범을 사서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다 보면, 유독 애착이 가는 곡들을 만나게 된다. 앨범엔 ‘타이틀곡’이라는 게 있고, 그런 곡들은 TV에서, 거리에서 자주 울려 퍼졌기에 싫증도 빨리 났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앨범에 세뇌당한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들은 대부분 이름 없는 수록곡들이었다. 히트곡 편집 테이프를 주로 듣던 친구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노래들이 내 마음 깊이 각인되었다.


변진섭, ‘널 위한 노래’/ 김동률, ‘그건 말야’/ 이승환, ‘체념을 위한 미련’/ 윤종신, ‘수목원에서’ /박정현, ‘앤’/ 이소라, ‘아로새기다’/ 플라이투더스카이, ‘stay’/ 이승철, ‘처음 만난 날처럼’/ 패닉, ‘눈녹듯’/ 브라운 아이드 소울, ‘Because of you’


진부한 표현으로, 보석 같은 이 노래들을 알고 좋아하게 된 건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각 앨범의 타이틀곡보다 100번은 더 들었을 이 노래들을 떠올리면 묘한 기분이 든다. 앨범 속에서 타이틀곡을 떠받들고 있었던 이 곡들은 조연으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겐 주연이 되었기 때문이다. 난 그 노래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점에서도 희열을 느꼈다. 이 노래들은, 남들보다 내가 더 알고 누리고 있는 것이 하나라도 존재한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로 이런 노래 중 하나가 들려올 때, “이거 괜찮은데? 언제 적 노래야?”라고 누군가가 중얼거리면, 난 속으로 음, 이 노랜 나와는 꽤 인연이 깊은 편이지, 하며 해설을 시작할 것이다.


누구라도 그런 적 있을 것이다. 주목받지 못한 노래와 사랑에 빠진 경험 말이다.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가 제각각이라는 점은, 때때로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어떤 노래도 누군가에겐 환영받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되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가슴이 뛴다. 세상엔 주인공스러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앨범의 타이틀곡처럼 많은 사람들의 감흥을 이끌어낼 임무를 받고 태어난 잘난 이들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하고 사랑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들만 주목하고 사랑하진 않는다. 우리에겐 ‘사람들의 취향과 선호는 제각각’이라는, 희망의 전제가 있다. 이것과 가장 근접한 말로는, ‘짚신도 제 짝이 있다’ 정도가 되겠다.


조연처럼, 보너스 트랙처럼, 심지어 히든 트랙처럼 시작한 이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는 나를 사랑해서 주연으로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걸 하루라도 일찍 깨닫길 바란다. 난 오늘도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그 시절 노래들을 찾아 듣는다. 이왕 노래들을 이렇게 정리했으니, 앨범 제목을 붙여야겠다. ‘나에게로 와 꽃이 된 노래들’

그리고 나도 세상에서 누군가에겐 필연적으로 받아들여질 거라는 확신에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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