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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Light Oct 23. 2024

보통의 가족

가화만사성과 용서의 유무는 왜 필요한 가.


<가화만사성과 보통의 가족>


일륜지대사 가화만사성이라 할 만 하다.

뿌리 없는 나무 없고 그 뿌리는

토양 그리고 자연환경으로 만들어 짐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사람는 무엇으로 사는 가?

과연 사랑만으로 사람은 자라나는 가.

뜻 밖에도 사랑과 지지 그 외적으로 엄청난

많은 감정들을 겪으며 사람은 사람으로

혹은 인간으로 자라난다.

가화만사성은 보통의 가족을 만들지만

가화만사성이 아님은 아주 블랙 코미디의

<보통의 가족>을 말한다.


<내 자식 위하자고 남의 자식 해하는 것 아닌거야>


내 자녀는 법률가의 자녀

네 자식은 의료진의 자녀

나는 장남, 너는 차남.

그리고 나는 소위 기득권

너도 꽤나 소위 기득권.

그러하니……


다른 이의 잘못에 법과 윤리적 문제로

잣대를 들이대며 말하곤 한다.


“네가 잘 못이야. 내 자식은 그저…..”


그러나, 실상은 쌍방과실일 때.

혹은 실상 둘 다 문제일 때.

그들을 알면서도 모른척 한 죄가

덮쳐 올 때 당신은 무엇을 논할텐가.


그저 하늘만,

그저 종교적 의식으로

아니라면

사회적 반성의 의미 혹은 행동으로써

봉사활동을 선택 할 것인가.


<용서는 누구의 몫인가>


용서는 사실 신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일이 있을 때 모르쇠 혹은 방관자들이

더이상 방관자로만 남지 않을 때,

방관자가 아니라 반대 선상에서

사람이 인간다울 수 있을 때.

우린 사람이 아닌 인간으로서 살 수 있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려보면 안다.

내 시야 각이 얼마나 좁은지.


쉬운 용서는 복수만 못하다.


형 혹은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룬다는 의미는

죄에 대한 사면이 아니다.

그 기간을 채운다는 것은 죄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혹여나 착각으로

‘난 이미 할 도리 다했어.’

라는 의미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용서, 그것은 최대한의 반성과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리고 마지막에 와서

피해자에 대한 최선의 도리여야 한다.


이 영화에서 피해자는 죽은 이, 두 명.

그리고 첫 사건 장면의 어린 여자 아이 한 명.

그리고 최후의 피해자이자

최대 가해자인 그 둘이다.


<변호사의 정의론과

의사의 이성적 판단이 내린 결>


변호사의 정의는 방패이며

의사의 정의는 이성이다.


결말은

극장에서 확인 하시기를.


#보통의가족 #적의적

#김희애 #설경구 #장동건 #수현

#음악감독 #오랜만의귀정화 #이병우음악감독


보통이 아닌 가족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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