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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Feb 28. 2024

친절한 사짜

덕분에 쌓인 내공

[홈패션] 수업에서 만난 미술 석사과정을 마친 언니의 추천으로 미술심리치료 수업을 들었다.

인기가 많다고 이미 들어서

접수와 동시에 폭풍 클릭으로

겨우 듣게 되었던 수업이었다.


강사는 명문대학 교수라고 했는데

수업을 듣다 보면 무당이 아닐까

싶게 족집게처럼 집어낸다고 했다.

그림을 보고 그 사람의 심리를

완전히 파악한다는 말에 기대가 높았다.

강사는 그려진 그림을 자세히 설명했다.

듣고 있으면 정말 소름 끼쳤다.

그건 내 그림에서가 아니라 강사의 말에 따라

스펙터클하게 변하는 다른 수강생의 표정에서 느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그림은

한 수강생의 초등학생 아들이 그린 그림이었다.

범상치 않아,

저걸 초등학생이 그렸어?

라는 반응이 모든 수강생들한테 나올 정도로

아주 독특하고 잘 그렸다.

강사는 자세히 보고 입을 열었다.


-보내주시죠


이게 무슨 말이지? 어디로 보내?

그러자 수강생이 울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아들과 둘이 사는 수강생이었다.

도도하고 무뚝뚝해서 친해지기

어려운 유형이었는데

나라 잃은 얼굴을 한 채 울었다.


수강생 울음소리가 잦아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버틸 자신이 없어요.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숨죽이고

수강생 하고 강사를 번갈아 봤다.

아들이 너무 똑똑해서

자신이 감당하기 어렵다는 말을 가끔 했는데,

아들이 친할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수강생만 괜찮으면

미국으로 아이를 보내라고 했다고 한다.

아들 없는 삶은 상상도 안된다며

버티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 그림에서는

[자신을 넓은 세상으로 보내 달라는 절규가 보인다]

고 했다.


-감당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에요. 보내세요


수강생 어깨를 툭툭 치면

이 말과 함께 수업이 끝났다.

그 강사는 이상하게 내 그림을 보면

별말이 없었는데 안쓰럽게 봤다.


-세상 사는 게 힘들죠?


라는 말도 했고.


-사람이 어렵죠?


뭔가 딱 떨어진 말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러다 애니어그램 검사를 했다


검사 결과를 보고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올해 몇 살이죠?

-35살인데요.

-그래서 힘들었어.

  35살이 25살처럼 사니 안 힘들어?


또래와 다른 삶을 사니

대화가 통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돈만 벌면 외국을 나가서 사는 삶이니

한국에서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 듯했다.

애니어그램의 결과는 탐험가였다.

역사적으로 탐험가들은

현실에 적응하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굳이 다른 곳을 찾아 떠나지는 않을 터이니.


그리고 하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래브라도라이트 마크라메]

목걸이를 하고 간 적이 있다.

히피들이 주로 다듬은 원석을 튼튼한 실로 꼬아서

목걸이로 만들어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 팔았었다.

지금은 마크라메라고 불리는 명칭이 있지만

10년 전에 태국에서 구입할 당시만 해는

그냥 히피 목걸이라고 불렀다.

색상도 마음에 들었는데 내 탄생석이기도 했다.


내 목걸이를 보고,


 -이런 걸 하고 다니니 이곳에서 삶이 힘들지


라고 했다.

자유로운 영혼임은 내가 수업 시간에

여러 번 말을 했기에


-그렇긴 하죠. 근데 예쁘죠?


라고 대답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한테 다가와,

인도 유명 구루 스님 명상회가 한국에서

열리는데 예약하기 힘들다고 했다.

태국에 있을 때 명상센터 두 군데 있다 왔다는

이야기를 해서 추천해 주시는 줄 알았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어디서 열리는지

참가비용이 얼마인지 물어봤다.


1박 2일 참가비는 50만 원이었고,

장소가 실내체육관이라고 했다.

먼 인도에서 구루 스님이 오시는데

왜 그렇게 휑한 곳에서 하냐고 했더니

스님은 안 오고, 영상을 통해서 열린다고 했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들이 실내체육관에서

인도에 있는 스님의 영상을 대형 스크린으로 보면서

1박 2일을 명상회를 하는데

비용이 50만 원이라는 말이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강사가 너무 진지하게 참가하기 어려운데,

수강생을 위해 그 정도는

자신이 힘을 써 줄 수 있다는 뉘앙스였다.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음 써주셔서 감사하다. 근데 전 괜찮습니다


사원에서 운영하는 명상센터는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고가의 명상센터는 시설도 좋고,

 비싼 비용을 지불할 의향이 저절로 생길 정도로

과정도 좋았고 수준이 높았다.

그리고 그런 곳은 스님이 아닌

명상전문가들로 운영된다.(내가 알기론)


뭔가가 이상했다.

무당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림을 잘 읽었는데,

내가 이런 명상회에 50만 원씩이나 내고 실내체육관 바닥에서

방석 깔고 명상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그리고 [홈패션] 강의 경우에는 준비물은

각자 챙기고 수업시간에

먹을 간식비용으로 1인당 5천 원씩 걷었다.

그런데 미술심리수업은 준비물로 5만 원씩 걷었고,

강의계획서에도 첫날 참석 이후에는

환불이 어렵다고 적혀있었다.

내가 수업기간에 받았던 준비물은 4절지 도화지 5장,

수업용이라며 테이블 한가운데에 꺼낸 누군가 썼던

색연필, 사인펜 같은 그림 도구가 전부였다.

그것 역시 수업이 끝나면

다른 수강생이 써야 한다고 가져갔다.

그게 5만 원이었다.

(시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수강료는

센터 홈페이지에서 결재하고

준비물비만 강사한테 현금으로 냈다)


하이라이트는 자격증이었다.

민간자격시험을 소개했는데,

(협회가 특정될 수 있어 정확한 비용은

생략하고) 많이 비쌌다.

이름도 특이했고,

민간 자격증인데

왜 이렇게 고가일까 싶어서 물어보니

시험관의 스펙이 뛰어나다고 했다.

난 명상회에서 이미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안 한다고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안 한다고 하자,

조용히 있던 다른 수강생들도 안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분위기가 술렁거렸다.

강사 눈에는 내가 분위기를 주도한다는 느낌이었는지

내가 결혼을 안 해서 경제관념이 없어

비싸다 느낄 수 있지만

그렇게 비싼 비용 아니지 않냐고 반문했다.

(오히려 미혼들이 자기계발할 때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자 다른 수강생이 결혼한 자신한테도

비싸다며 강제성이 없으니까 알아서

판단하겠다고 하면서 수업은 끝났다.

강의실을 나갈 때, 그 수강생이 커피 한 잔 하다고 했다.

커피 마시면서

소문과 다르게 강사가 '사짜' 같다고 했다.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강사를 존경했다.

분명 실력은 있는 듯했는데

알게 모르게 소액이지만 돈으로 장난치는 느낌이었다.

커피를 마시자고 했던 사람하고 인사만 했지

대화를 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이 사람도 삶의 경험이 정말 다양했다.

좋게 말해서 다양한 거고,

굉장히 파란만장했다.

세상 풍파를 많이 맞아서

사람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고 했다.


난 초등학교를 4군데 다녔다.

잦은 이사에 환경적 요인까지 더해서

부모님 주변에 "사짜"들이 많았다.

나도 남을 잘 믿는 성향에 잦은 이사와 이직,

여행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짜"들로

고생을 많이 했다.

내가 겪은 고생은 사람 보는 안목을

더디지만 조금씩 키워줬던 반면,

배신이라는 상처가 가슴 깊이 새겨지게도 했다.

사람과의 관계는 상대적이니까,

나 역시 누군가한테 상처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세상은 책과 많이 달랐다.

세상과 다른 책 속 내용을 왜 그렇게 읽고,

배워서 성장하라고 말했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 나한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대인관계"라고 말한다.

사람이 가장 어렵다.

가장 어려운 존재와 관계를 맺어야 가능한

사회생활이 죽을 만큼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죽기 전까지 피할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고 했다.

은둔 생활이라는 옵션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숨이 더 막혔는지도 모른다.

어려운 존재가 사방팔방 존재하는데

죽어서야 끝난다고

하니 이곳이 지옥이 아닐까 싶었다.


은둔생활을 시작하면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당시에는 선택지가 없었다.

오래전, 유럽 지중해 한가운데에 위치한

몰타에서 3개월 지냈다.

그곳에서 친하게 지냈던 언니들하고

무인도인 코미노섬으로

1일 크루즈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말이 크루즈였지,

돛단배처럼 바람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크지 않았고 그날은 풍랑이 심했다.

5층 건물 높이로 넘실대는 파도 물결

그대로 배의 앞뒤가 빠른 속도로

번갈아가며 요동쳤다.

그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줄과 난간을 잡고

바다를 향해 토했다.

나도 구석에서 한참을 토하다 화장실이 있는

배 아래칸으로 내려가려 했을 때 선원이 가로막았다.

화장실이 급하다고 말하자,

아래로 내려가면 올라오기 힘들다며

볼일을 마치면 흔들림이 심해도

바로 올라오라고 했다.


아래칸을 내려갔을 때 알았다.

그 흔들림이 어마무시해서 위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흔들림에 넘어진 채 버둥대다

용도를 모를 고리를 잡고 겨우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앉아서 벽에 기댄 채

숨 쉴 틈새도 없이 토하다,

질식해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선원이 내려와서 나를 들쳐 매고 올라가서

뱃머리 위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 곁에

눕히면서 숨을 쉴 수 있었다.

선원 덕분에 살아서 크루즈(?) 여행에서

 돌아올 수 있었다.

꼭 그런 느낌이었다.

어찌 되었든 집으로 들어갔고 밖으로 나오기는

점점 힘들어졌다.

배에서 나를 들쳐 매고 나온 선원이

현실에서는 없었기에 예상보다

그 은둔 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혼자임을 자각하고

한 발자국씩 나가려고 애쓰고,

힘들어서 다시 주저 않고,

그리고 이 생활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안주했다.


'명랑한 은둔 백수' 글을 기획하고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상담사가 내 안에 힘이 있다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요즘 글을 쓰면서 많이 느낀다.

힘이 있구나.

그런데 굳이 나가야 될까?

조금만 더 즐기다 나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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