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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Feb 21. 2024

건강관리

주민자치센터, 산책

집에서 잠옷만 입고 있어서

허리, 배 쪽에 살이 붙었는지 몰랐다.

매일 보는 얼굴은 그대로였고,

외출복보다 더 중요한 홈웨어에 투자했더니

옷이 쭉쭉 잘 늘어나고 있었다.


간절기에 옷장을 정리하다,

예전에 좋아했던 바지를 입었다.


헐~!

엉덩이에서 걸렸다.

옷이 줄었나?

다른 옷을 입었는데 같았다.

그때 느꼈던 절망감이란.


외식도 안 하고,

일주일에 최대 2-3번만 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었다.

대부분 내가 간단한 음식을 요리했고,

대체로 맛이 없어서 많이 먹지도 못했다.

어쩌다 이렇게 뱃살이 늘었지?

혼란스러운 내 눈길이,

일요일 오전에만 공병을 받는 슈퍼마켓에

팔려고 모아두었던 맥주병에 닿았을 때 알았다.

너가 범인이구나!!


반주로 맥주를 즐겼다.

알코올 중독이 되면 어쩌지 싶어서

버드와이즈 330ml 병맥을 주로 마셨다.

조금 애매한 양이기는 했지만 가격도 괜찮고,

왠지 저 330ml을 넘기면 안 될 듯했다.

혼자 정한 데드라인이었다.

그리고 태국에 있을 때

자주 가던 식당에서 항상 병맥주만 팔아서

지금은 그립감이라고 해야 되나?

잡고 따를 때 손에 착 안기는

동그랗고 차가운 감촉이 좋았다.

거기에 귀여운 브라운 맥주병에

레드로 포인트를 준 쌈박한 디자인 때문인지

따라 마실 때 뉴요커가 된 느낌이었다.

500ml 두툼한 잔에 담긴

노란색 맥주 위에 하얗게 누워 있는

아이보리 거품을 입에 대는 순간,

느끼는 보드랍고 시원한 청량감을 좋아했다.

생맥주를 마시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병맥을 생맥처럼 마셨다.


오랜 기간 독일 뮌헨에서

동거했던 독일남자가 암으로 죽은 후에.

혼자 여행 다녔던 캐나다사람과 친해진 적이 있다.

둘 다 맥주를 좋아해서 밤마다

구글맵에 뜬 동네 맛집을 찾아다니며

음식은 거들뿐, 맥주를 들이켰던 날들이 있었다.

이때 이 친구가 맥주병을 들어

꽤 높은 높이에서 맥주를 잔에 따랐다.

꽉 조인 바지를 벗을 때 폭발하듯

출렁출렁 쏟아져 나온 뱃살처럼

병에서 쏟아져 나온 맥주들이 잔에 부딪치며

화~악 거품을 만들어냈다.

맥주가 아까워 일부러 거품만 준다고 오해할 정도로

맥주 반, 거품 반으로 만들어서 줬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당황한 얼굴로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따라주면,

이거 마시고 밖으로 나가서 맞짱 떠야 한다고 했다.

맥주가 아까울 때 주로 이렇게 따른다고 했더니,

맥주 안에 있는 기체가 공기로 빠져나가

나중에 트림을 덜 한다고 설명했다

트림 더 해도 되니 더 따라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어차피 각자 계산해서 마셨기에

알았다고 하고 마셨다.


유레카!


거품이 입술에 닿을 때 부드러웠고,

거품을 뚫고 입 안으로 들어오는 알싸하고

시원한 맥주에서 고소한 맛이 났다.

맥주가 깨로 만들던가? 잠깐 원재료를 의심했다.

그리고 옥토버페스트라는 맥주 축제가 열리는 뮌헨에서

그렇게 마신다니 믿음이 갔다.

(바로 수긍하고 뭐 이리 단순한지 웃음이 났다)


내가 병을 잔에 45도 각도로

거품을 최소한으로 따를 때

안타까웠다며 그날은 꼭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이전에도 그 친구는 그렇게 마시기에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국적, 언어, 문화가 다르면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 뒤로 병맥을 생맥처럼 마시면서

반주의 세계로 발을 디뎠다.

올해 초에 건강검진에서

내 심혈관 나이가 5살 어리게 나올 정도로

잘 먹고 잘 살았다.

그럼에도 의사 쌤이 술은 양도 있지만

얼마나 자주, 꾸준히 마시느냐를 보고

중독인지 판단한다며 줄이라고 했다.

줄이기 어려워서 아예 끊었고,

9개월 동안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다시 시작한 사회생활 적응에

처참하게 실패한 후에 다시 반주가 시작되었다.

(여기서 반주가 피아노 반주이면 좋겠지만,

연주할 줄 아는 악기는 노래방 탬버린밖에 없다)


이제 와서 다시 맥주를 줄이거나 끊을 수 없었기에

운동으로 체중 조절하기로 했다.

홈트에 도전했다.

집에 요가매트 있고,

노트북을 TV에 연결하니 꽤 큰 화면에서

운동 유튜버의 움직임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홈트는 하고 싶은 운동을 언제든 할 수 있다.

그 말인즉 언제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강제성도 없고, 운동 버디가 없다 보니

다른 사람들하고는 죽어도 안되던 타협이

혼자서 그렇게 잘했다.

내가 이렇게 합리화에 능했던가?

그렇게 쉽게 포기했다.


홈트는 실패!



다른 운동을 찾았다.

우선 식비하고 맥주값이

많이 들어서 아껴야 한다!

여지까지 체육관에 기부한 돈만 합쳐도

소형차 값이 나올 정도로 20살 이후로

많은 돈을 썼음에도 30대 초반까지 뚱뚱했다.

30대 중반, 태국에서 무에타이에

미쳤을 때 복근이 생겼다.

온다는 말도 없이 와서는,

잠깐 한눈팔았더니 말도 없이 갔다.

그때 근육으로 예뻐진 몸을 갖게 된 경험으로

지금은 병약미 물씬 풍기는 가는 체형보다는

무심코 보이는 근육을 더 선호한다.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보건소에서 [함께하는 홈트 프로그램]

진행한다며 참가자를 모집했다.

매주 화, 목요일에 정해진 시간에

줌으로 운동관리사를 만나서

운동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소도구도 지급한다고 했다.

오호!!!

바로 신청했다.

끝에서 두 번째로 선정이 돼서,

보건소에 가서 인바디로 체지방 측정하고

폼롤러, 1kg 아령 2개, 고무밴드를 받았다.


첫 주! 첫 수업에 늦지 않게 줌에 로그인했다.

그때 인사하는 운동관리사를 보고 놀랬다.

텔레토비 체형의 두 명의 운동관리사가 총 60분 수업시간에서

30분씩 나눠서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열심히 따라 하라는 말과 함께,

한 명은 화면 뒤로 가서 구령을 담당했다.

헬스 트레이너처럼  근육질 몸까지는

아니어도 호리 할 줄 알았는데,

배가 너무 많이 나왔다.

운동은 쉬웠다.

스트레칭부터 시작해서

인터벌 트레이닝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화면에서 보이는 수강생들의 연령이 다양해서

강도를 서서히 올리긴 했는데

힘들이지 않고 따라 할 수 있었다.

건강관리사 한 명씩 30분 동안 자세를

보여주면서 시범을 보이고,

다른 명은 카메라 뒤에서 구령을 하며

수강생들의 잘못된 동작을 봤다가

중간에 수정해 줬다.

30분 운동, 5분 쉬고, 다시 30분 운동했다.


1달은 지각없이 참석해서 따라 했는데,

동작에 변화가 없고, 너무 지루했다.

불량 학생처럼 짝다리 하고 쳐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잘 따라 하지 않았다.

참석하는 수강생 인원도 점점 줄면서

나도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쯤 해서 동네 주민자치센터에서 1년에 4번.

3개월씩 수업하는 강좌 접수기간이 되었다.

3개월 수강료가 3-4만 원이라서 가격도 부담 없고,

집이 아닌 어디더라도 운동하러 가고 싶었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강좌의 접수인원을 체크했다.

3일간 접수를 받았는데,

같은 수업을 오전, 오후, 저녁으로 나눠서

다른 강사가 진행했다.

요가 경우에는 오전수업은

첫날 절반이 넘는 인원이 수강했고,

오후반은 3분에 1, 저녁반은 2명이었다

오전에 운동하려는 사람이 많나?

아이들 학교 보내고 오는 주부가 많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홈페이지에 올린 강의계획서를 보고

왜 저녁반에 수강인원이 없는지 알았다.

구색만 맞추었을 뿐 누가 봐도

요가를 공부한 사람이 쓴 계획서로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저녁반에 접수했다.


월, 수, 금은 저녁에 요가수업을,

화&목요일 오전에는 방송댄스 수업을 신청했다.

방송댄스도 시간대가 나눠져 있었는데 같은 강사님이었다.

오전이 사람이 적어서 선호하는 시간대가 아니었음에도

인원이 적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방송댄스 수업에 들어갔을 때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요가매트 위로 50~70대 여자분들이 누워서 이야기 중이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운동 전인데

간식을 먹고 있었다.


잘못 왔나 싶어서 "방송댄스 수업 맞나요?"라고

물어보니 반기면서 맞다고 했다.

나를  "상콤씨"라고 부르면서 환영해 주셨는데

너무 화기애애해서 집에 가고 싶었다.


운동 시작 전에 강사가 신입들 나와서

이름하고 나이를 말하라고 했다.

왜 우리만 나이하고 이름을 말하나 싶었는데

기존 멤버들은 익숙한 듯 소개가 끝날 때마다 박수치며


-나보다 어리네.

-내 딸하고 동갑이네


말을 덧붙였다.


이제 수업 시작하나 싶을 때,

단체 사진을 찍는다고 모두 나오라고 했다.

사진 찍는 것을 진짜 싫어하는데 눈 질끈 감고 찍었다.

분위기도 좋았고, 운동도 쉬웠다.


동작이 어려워지면서 60-70대 수강생들이

말없이 짐을 챙겨서 집에 갔다.

다른 사람들도 익숙한 듯 힐끗 보고

댄스 삼매경에 빠져 정신이 없었다.

방송댄스보다는 에어로빅에 가까웠고,

강사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흥을 북돋았다.


마무리운동까지 끝나고

집에 가야지 가방을 챙기는데

또!!! 또!!! 사진을 찍자고 모이라고 한다.

땀범벅에 몰골이 말이 아닌데.

뭘 또 찍어! 싶어서 안 찍는다고 했더니


-거기 서 있어도 사진에 걸리는데.

-싫다는 시간에 그냥 찍었겠다.


끈질기게 불렀다.

정말 숨이 막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밴드를 운영 중인데

거기 올릴 사진용이었다.


수업 끝나고,

바로 수업 취소하려고 사무실에 갔는데

다른 신입이 나보다 빨랐다.

그 사람 뒤에서 순서를 기다릴 때,

강사하고 수강생들이 시끌벅적하니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다가오고 있었다.

죄도 안 지었는데 후다닥 집에 갔다.

다음 날 요가 수업 갈 때 사무실에 들러서 취소했다.



요가 수업은 인원이 너무 적으면

폐강된다는 글에 걱정돼서 전화하니,

인원이 찼다고 했다.

에?

내가 마지막날 접수했을 때 인원이

5명이었는데.. 찼다고요?


체육관 문을 열었을 때 그 이유를 알았다.

수강생들 나이대가 60-70대였다.

아!~~~

방송댄스, 요가 모두

나이대가 높아서 방문 접수를 했기 때문에

내가 본 온라인 접수 인원이 적었던 거였다.


3명의 신입이 있었음에도

다행히 단체사진, 자기소개 없이 시작되었다.

강사님은 강의계획서를 통해

짐작한 대로 60대 강사로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 듯했다.

그럼에도 기존 수강생들이 매달 신청해서

꽤 오랜 기간 수업은 진행되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10년 이상 꾸준히는 아니더라도

한국과 외국에서 간헐적으로 참석했던

다양한 요가수업에서는 보지 못했던

생경한 동작들이 많았다.


그리고 자세마다 설명해 주는

강사의 멘트도 달랐다.


'치매에 좋은 동작'

'허리 디스크 방지 동작'


우리말로 풀어서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하셨다.


수업 중 독특하면서도 재미있었던 모습은

여기저기서 뿡! 뿡! 뿌~~~ 웅!

방귀소리가 들렸다.

특정 동작에서 소리가 유독 많이 났는데

이 자세에서는 껴주는 게

독소 배출에도 좋다는 분위기였다.

순간 웃음이 터져서 슬픈 생각을 많이 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벌거벗었다고 말하는 어린이로

난감해하는 신하들의 모습처럼,

크게 웃었다가는 내가 미친년이 되거나,

수강생들이 민망하겠다 싶었다.


그런 인간적인 분위기가 좋았다.

눈치 볼 필요 없고, 조용히 와서 운동하고

매트 정리하고 댁으로 돌아가셨다.

나보다 더 유연한 그분들을 보면서,

나이보다는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성실하게

해야 된다고 배웠던 수업이었다.


1주일이 지나고 모든 동작이 정해져 있음을 알았다.

스트레칭부터 마무리 운동까지 매 수업 똑같았다.

나이대가 높아서 모두 변화를 싫어하는 분위기였고,

나도 3개월만 다닐 예정이라 군말 없이 따라 했다.


다만, 지루해서 월수금 수업 중에

랜덤으로 하루나 이틀 참석했다.



지금은 저녁에 쓰레기를 버린 후에

동네를 산책한다.

반려견하고 산책 나온 사람들,

수업 끝나고 집에 가는 학생들,

술에 취한 얼굴로 비틀 걸으며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로 꽉 찬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을 찍는다.

하늘이 유독 예뻐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같은 방향의 하늘을 본다.

나처럼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고,

왜 저걸 찍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절레 흔드는 사람들도 있다.


산책도 내 생활처럼 루틴이 생겨서

코스를 만들었다.

30분 코스, 60분 코스.

몸 상태에 따라 걷다가 집에 간다.

살은 단 1kg도 안 빠졌지만 건강하다.

그럼 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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