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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Feb 14. 2024

은둔 생활의 든든한 지원군

이보다 더 막강할 수 없다!

은둔 백수라고 하더라도 하루가 짧다.

눈 뜨고 있다가 뒤돌았더니

저녁이 되는 영화 속 화면전환처럼

정신 차리면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보통 오전 10~11시에 일어났기 때문에

12시쯤 느긋하게 아점을 즐긴다.

그 이후로는 생활이 Ctrl + C 하고

Ctrl  + V 한 것처럼 같았다.

그럼에도 이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준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으니!

그 이름도 아주 유명한 

웹툰 넷플릭스 되시겠다



가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는 했지만 불규칙적이었고,

불쑥 과거 속 기억이 머리를 헤집을 때면

강력한 집중할 뭔가가 필요했다.


자극적인 영상일 수도 있고,

매일 혹은 매주 업데이트 되는

웹툰 에피소드일 수 있다.



넷플릿스를 많이 보다가 알고리즘의 늪이라서

점점 비슷한 유형의 영상이 추천되면서

지루해졌다.

그때부터 웹툰으로 시간을

더 많이 보내기 시작했다.


어릴 적 "점프트리 A+" "오디션" 시리즈를

소장했던 만화책덕후였다.

그러다 학교 공부하고

만화책을 보지 않는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웹툰이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던

초기에도 쳐다보지 않았다.

나이가 몇인데 만화를 보냐고.

그것도 책도 아닌 화면으로 보는 만화가 만화냐고

정통성을 언급하며 외면했다.



태국에서 어깨를 심하게 다친 적이 있다.

많이 외진 곳에 살아서 생활의 일부였던

자전거를 탈 수 없었다.

(버스, 택시가 단 1대도 없는 오지였다)

비자발적인 고립된 생활을 하다,

그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봤던

웹툰에 푹 빠져들었다.


그때 봤던 웹툰이 "천리마마트"하고

"가우스 전자"였다.

얼마나 재미있던지

안부를 물으러 왔던 외국친구들이 혼자 방에 박혀서

스마트폰 보고 깔깔대는 나를 보고

"드디어 미친 건가?"라는 듯

어이없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때 은둔 생활의 조짐이 보였던가?

걱정이 무색하게 혈색 좋은 내 얼굴을 보고 다행이라며

포장해 왔던 음식을 같이 먹었다.



다시 한국의 은둔 생활로 돌아와서,

지금 웹툰을 고르는 방법으로는

나이가 있어 무협과 학생물을 스킵한다.

무협물은 고전인 "초류향" "포청천"이 유행할 때는

영상으로 보는 무협을 많이 좋아했었다.

나이가 들면서 하늘을 날고 의리에

목숨 거는 스토리에 흥미를 잃어갔다.

학생물은 중년 나이로 교복 입고

알콩달콩 사랑 싸움하거나

괴롭히고 협박하며 진짜 싸우는

학폭물이 주를 이루면서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림이 예쁜 작품은 좋아했다.


웹툰도 나하고 비슷한 성향의 독자가

많이 보는 웹툰이 추천되는 시스템이라

쉽게 좋아하는 다음 웹툰을 고를 수 있었다.

그리고 스토리보다는

'그림'을 더 많이 중요시해서

스크롤 내리면서 예쁜 그림, 제목

그리고 소개글을 보고 선택해서 끝까지 봤다.

좋아하는 작가님의 경우에는 신작이 나오면

소개글도 읽지 않고 바로 봤다.


웹툰을 볼 때 댓글을

정말 꼼꼼하게 많이 읽는다.

웹툰마다 다르지만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보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다르다.

요즘 재미있게 보는 "유사연애" 경우에는

[내 거 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

노래 "썸"의 가사처럼

연애를 하는 듯하지만 연애는 아닌.

애정관계를 보이는 내용을 다룬다.

여자 주인공 앞에 잘생겼지만

복잡한 과거를 가진 여우 같은 남자 캐릭터

준재벌집 아들로 카페를 운영하면서

여자주인공을 좋아하는

다른 남자 캐릭터가 나온다.



예상할 수 있듯이

과거가 복잡해도

인물 뜯어먹고 살면 된다며

잘생긴 폭스남을 고르라는 미혼들과


이미 결혼해 마음고생 지대로 하는 듯한

부녀들은 입을 모아

카페 사장을 고르라고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경기보다

안정환의 미모에 설레었던 그녀들이,

지금의 안정환을 예로 들며 늙으면

그냥 잘생긴 아저씨일 뿐이라는

(실제 안정환은 자상하고 부인을

엄청 아낀다는 팩트는 잠깐 접어두고)

논리로 설득하는 글에 은근슬쩍 "좋아요"를 누른다.

결혼 유무를 떠나 비슷한 시간을

같이 보낸 그녀들에게 더 동감했다.



그렇게 웹툰에는 댓글이라는 세상이 있다.

이 세상을 통해서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도 있고,

가끔 기가 막히게 센스 있는 댓글에 감탄을 하곤 했다.

어떤 웹툰에서 멋진 남자캐릭터가

멜로눈깔을 한 채 여자캐릭터한테 물어본다.

"그래서 난 당신한테 몇 점이야?"


고민하는 얼굴을 한 여자주인공

얼굴이 보이고 회차가 끝났다.

절단신공이라고 불리는.

다음 회를 결재하게

만드는 작가님들의 신공에

태블릿을 들고 소리를 지른다.


그래서요!! 몇 점이래요!!


다음 회차는 1주일을 기다려야 하니

궁금해서 바로 댓글을 봤다.

당신들은 몇 점인 거 같아요?라는 질문에

답을 주기라도 하는 듯,

대부분은 백점, 천 점, 오만점, 오천만 점,

백점 만점에 만점등 일반적인 대답이 나왔다.

그때! 어떤 사람이 "95점"이라고 남겼다.


아니!! 남주가 얼마나 멋진데!!

왜 95점이야.. 나머지 5점은 뭔데!!

흥분할 때였다.


"당신에게는 오점이 없거든"


와!!~~~ 이런 드립을 친다고!

오점이 없는 게 단점인.

그래서 95점을 주셨더랬다.. 캬!!~~~


그것 말고도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 어린 글부터

재치 있는 댓글에 그 아래로

수십 개의 대댓글이 달리게 하는 글까지

정말 다양하다.

가끔은 컷툰의 경우에는

작가님이 치과에 갔다 치위생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당시에 너무 아파서

물어보지 못했다면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요?

라는 질문에 치위생사 독자들이 댓글을 남긴다.

글을 읽으면서 정보도 알게 되는 일석이조!


비현실적인 내용에는 변호사가 현실에서

이런 일이 생기면 어떤 법적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지 설명하는 댓글도 있다.

그래서 웹툰만큼 댓글 읽는 재미가 크다.

  

그리고 많은 드라마와 영화들이

웹툰을 기반으로 제작된다.

'이태원클래스''마스크걸""모범택시"

같은 웹툰이 검증된 스토리로

이미 유명해졌기 때문에 영상화된 후에도

인기가 많았다.


내가 봤던 웹툰들이 드라마화되면서

각색을 잘 한 작품도 있지만

많은 작품들이 웹툰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영상화가 되면 궁금해서

바로 넥플릭스에서 확인한다.

가끔 넥플릭스에서 제공되지 않는 드라마는

일부러 TV에서 챙겨보는데

'N차 관람'하는 사람들과 다르게

난 아는 내용은 다시 보는 편이 아니라서

본방사수는 안 한다.


영상에 맞게 각색된 내용을 보면서

1회 차에 어떤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는지 그것만 보기도 했다.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는

'이보영' 배우가 주인공인 간호사 역할을

맡았다는 기사를 보고,

심리 쪽에 관심이 많아서 웹툰을 찾아서 봤다.

내 20대 모습이 보여 마음이 많이 짠했다.

간호대학을 다니다 자퇴한 사람으로,

만약 계속 대학을 다녀 졸업했다면

비슷한 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개인정보가 중요해서 그림은 오리나 다람쥐

같은 동물로 많이 대체가 되어 있었다.

조울증, 망상, 경계성지능장애 등

심리서적이나 자주 보는 정신의학과 의사의

유튜브 채널에서 봤던 환자 유형의 사연을

잘 녹여서 그렸다.


웹툰을 보면서,

이렇게 환자의 아픔에 공감을 많이 하면

언젠가는 많이 아플 텐데

걱정이 되면서 다음 편을 봤다.

라포가 깊게 형성된 환자의 죽음 이후로

와르르 무너져서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이야기가 2부에 나오면서 간호사에서 환자로서

달라진 정신병동에서 생활이 그려진다.

그때 넷플릿스에서 전편이 공개되었다.

어떻게 각색을 했는지,

웹툰 속 캐릭터를 누가 맡았는지

새로운 캐릭터가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스토리가 달라질지

너무 궁금해서 몰아서 봤다.

그날은 진심 폐인이었다.


드라마 특성상 답답한 고구마 씬들이

나올 때는 과감하게 10초 버튼을

사이다 구간 나오기 전까지 마구 눌렀다.

웹툰에서는 주인공 혼자 힘겹게 이겨나갔던 반면,

드라마에는 지고지순한 남자와

곁에서 든든하게 지원해 주는 남사친,

그리고 병동 동료들까지도 모두 호의적이었다.

그래서 훈훈하고 아름답게 스토리는 끝난다.

웹툰은 현실이었고, 드라마는 정말 드라마였다.

꿈같은. 그래서 부럽지만

나한테는 TV와 같은 모니터에서나

볼 수 있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었다.



동생이


"답답하지 않아?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생활하면 폐인 될 거 같아"라는 말에


"응. 폐인이라 그런지 멀쩡해지는 느낌이야"


폐인,

히키코모리,

은둔형 외톨이,

단어는 달라고 모두 같은 사람을 지칭한다.


중년 나이에 사회생활 하지 않고

집에서 혼자 웹툰과 넷플릭스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아주 행복하다.


폐인이라 불리지만 망가진 인간이 아니고

히키코모리에서 연상되는 음침하고

꾀죄죄한 인간도 아니고,

은둔형 외톨이에서 느껴지는 부정적인 느낌에는

할 말이 많다.


은둔 생활은 본인의 선택이고,

외톨이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만이

정상이라 여기는 사람들의 편견이라고 생각된다.

은둔 생활을 하는 외톨이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는데,

실상 사회생활하는 정상적인 인간들의 범죄율이 더 높다.

사람 간의 오해와 이해관계가

많은 싸움을 불러일으키니까.


그렇다고 내가 이런 삶을 사는

모든 사람을 대표한다는 말은 아니고,

은둔 백수라서 경제적으로 궁핍할지라도

마음만은 풍족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지금 이 시대에서 살아서 너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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