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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Mar 06. 2024

딱 거기까지인 사람.

나도. 당신도. 모두 그랬다.

회사 다닐 때 알던 언니였다.

아저씨가 대기업 임원이었고,

퇴직 후에 중소기업에서 일한다고 했다.

이직 후 마음이 더 편한 듯 보여서

안심이 되면서도 줄어든 생활비에

자신이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언니도 대기업 비서실에 근무했다가,

첫째 아이 임신하면서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이들 대학 보내고 직하려다 보니

파트타임 밖에 없다며 결혼해도

절대 퇴사하지 말라고 말했던 언니였다.

내가 20대 후반에 베트남으로

파견 나가 있을 당시에

언니 역시 베트남에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지만

당시 문화 차이로 생긴 어려움에

힘들어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하는 일은 달라도

공통화제가 생기면서 서서히 친해졌다.


언니 집에 초대받은 적이 있다.

혼자 사니 따뜻한 밥을

먹이고 싶다고 하셨는데,

음식 할 때 그 번거로움을

잘 알아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밖에서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마시고

집에 가자고 했음에도

그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아저씨가 출장 갔을 때 오라고 했다.

오래되었지만 평수가

넓은 아파트 내부 곳곳을 보여줬다.

여기저기 가족들 사진이 놓여 있어서

언니한테 말로만 들었던 자녀와 아저씨의

환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TV에서 봤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었다.

자녀들은 영국에 있는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일을 하는 이유도 아이들 학비 때문이라고 했다.

오늘내일하는 시아버지가 조만간 돌아가실 줄 알고

아파트는 팔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꿋꿋이 생을 이어가는 시아버지와

다르게 언니는 그런 상황에 똥줄이 타는 모양새였다.

의식이 없는 상태로 호흡기에 연명하는 삶보다는

재산을 자녀들한테 주고 천국을

가는 게 더 나을 텐데라고 했던 분이었다.

음식을 먹고 설거지는 내가 하려고 했었다.

손님이 그러면 안 된다. 몇 개 안 된다며

차 마시고 집에 가라고 했다.

시아버지의 죽음을 기다리는 언니의 속마음만

듣지 않았다면 완벽한 저녁이었다.


이후에 밥을 먹을 때,

대화를 하면서도 계속 핸드폰을 봤다.

벨이 울림과 동시에 나가서

전화를 받는데 심각해 보였다.

은행권에서도 대출이 안된다고 해서

지인과 사금융에 돈을 빌리고 있었다.


은행권에 대출이 반려되고

나한테 물었을 때 난 이전에 돈 받지 못했던

지인들을 이유로 거절했다.

많은 사람들이 소소하게 돈을 빌렸고

기한이 지난 후 돌려달라고

말하는 나를 빚쟁이 취급했다.

소액으로 만원, 5만 원씩 갚다가

연락이 두절되거나,

곧 주겠다는 말하다 어느 순간

그들한테 차단당했다.

어른들한테 들었던 돈은 서서 빌려주고,

엎드려 받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돈 잃고 사람 잃으니,

그냥 사람만 잃자는 생각이 강했다.

나중에 여유돈이 생기면 빌려달라 했고,

사금융에 높은 이자를 물고

대출받았다고 했다.

이렇게까지 쪼들려하면서

아이들 유학을 보내는 게 맞는 걸까?

언니는 '니 남편이 지금도 대기업 임원이냐?'라고

친구들의 핀잔에 더 이상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하고 술 마시는 날들이

더 많았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퇴사할 때쯤

친한 독일 친구가 결혼식에 초대했다.

독일 가서 결혼식 보고,

2주 정도 유럽여행하고 한국에 올 계획이었다.

미리 비행기 티켓을 구입하고

1달 정도 남아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언니가 할 말이 있다고 만나자고 해서 나갔다.

할 말은 안 하고 내 근황을 물었다.

결혼식, 유럽여행을 이야기하니

얼마 정도 가져가냐고 물었다.

독일에서는 친구 집에 머물 예정이라서

500만 원 들고 갈 거라고 했다.


-결혼식이 언제야?

-5월 10일이요

-그럼 내가 그 돈 딱 1달만 쓰고

  여행 가기 전에 갚으면 안 될까?

  애들 돈이 급해서.


그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언니 절박한 얼굴로 봐서는 빌려줘야 했는데

만약에 그전에 안 갚으면 여행이 통째로 날아간다.

거기에 언니가 사금융에서도

돈을 다 당긴 걸 알았기에 거절했다.

언니의 풀이 죽은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혔다.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했다.

괜찮다며 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다.

집에 일이 있어서 여행을 취소하고

경비로 모았던 돈은

그 일에 고스란히 바쳤다.

이후 언니한테 만자고 연락했었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연락이 끊겼다.


꽤 시간이 지나고 같이 알고 지낸

다른 언니를 만날 때 같이 봤다.

시아버지가 드디어 돌아가셔서 받은 유산으로

빚청산을 했다면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그리고 나를 보는 시선이 많이 차가웠다.

실망했겠지.

나 같아도 실망했을 거야.

그런데 언니였다면 빌려줬을까?

그런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그 날 만났던 언니한테 당시 느꼈던 죄책감과

오늘 언니의 냉대를 이해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 일로 서운한 감정과 함께

내 험담을 했다고 한다.

아.... 그렇구나.

그렇게 갖고 있던 미안한 감정이 사라졌다.





온라인 수업에서 매주 봤던 몇 명의 사람들하고

오프라인에서 본 적이 있다.

은둔 생활의 여파인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데 거부감이 심했다.

그럼에도 수업에서 서로를 위했던

마음에 가슴  따뜻해었던 기억에 용기 내서 만났다.

좋은 분들이었다.

그래서 그랬나?

사람한테 상처받은 이야기가

홍수에 댐이 무너지듯 그렇게 쏟아졌다.

그럼에도 자리에 있던 다른 한 분이

주도적으로 남편과 자녀 이야기로 해서

 내 이야기는 많이, 오래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내 이야기를 하는데 그분이 그랬다.


-넌 부정적이야.

-아... 알죠. 저 부정적인 거.


당황해서 어찌 대답은 했는데 억울했다.

그날 난 듣는 입장이었고,

그분 가족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이 길었는데

나를 '부정적'이라 단정 내렸다.


온라인 수업에서 이야기를 했다고 하더라도,

나를 '부정적'이라고 단정 지을 만큼

나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정의 내렸다.

가수 제시가 평가단을 향해서 말했던 영상이 떠올랐다.

"너가 뭔데 나를 판단해!"


상처받은 이야기를 한 내 실수인 걸까?

아니면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해서

단정 짓는 경솔함이 문제인 걸까?

그리고 난 진짜 부정적인 사람인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들만을 탓하기에는

내 생각도 행동도 좋지 않았다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 말이 맞는 건가?

아...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혼자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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