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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Apr 11. 2020

학부모 상담

진짜 상담이 필요한 건 나(Me)입니다!

강제적인 학부모 상담이 진행된다.

일정 기한마다 상담해야 될 학생의 이름이 계속 뜨기 때문에 안 할 수도 없지만 솔직히 하기 싫다.


우선 할 말이 없다.

아이들 만나서 공부하고,

영상은 모두 녹화가 되기 때문에 언제든지 학부모들이 어플로 수업 내용을 볼 수 있다.

할 말이 있으면 메시지 보내는 란에 글을 쓰면 나하고 채팅이 되고,

할말 있으면 전화를 할 수도 있고,

내가 마음에 안 들면 교사를 바꾸면 되는데..

굳이 상담을 해야 된다고 강제적으로 시키는지 모를 일이었다.


전화를 걸면 아이의 수준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이 나이에는 이  정도 하는 게 맞는지?

우리 아이는 어쩐지 등등 질문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나하고 할 말이 없다.

한 주에 잠깐 만나는 화상수업교사와 굳이 할 말이 있겠는가 싶다.


아이가 기다린다며 칭찬해 주는 학부모들과 이야기할 때는 얼굴이 화끈거려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아이는 공부할 마음이 전혀 없이 집에 갇혀 있다 만나는 내가 좋아서 자꾸 다른 이야기 하려는

아이한테 맞장구친다며 수업에 집중해 달라는 학부모를 만나면 갑자기 죄인이 된 듯하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고,

죄송합니다. 수업에 집중하겠습니다.

본분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듯한 질타를 받는다.


아이가 예쁘고 이야기하자 옆구리 찔러도 수업시간에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이를 만났다.

예쁜 머리띠를 하고,

무슨 공주 옷을 입고 자랑을 하며

나한테 엄마 미소 짓게 하려고

작정한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슨 공주로 변신했는지 궁금했지만,

인사만 하고 바로 수업을 했다.

나한테 했던 말이 있던지라 학부모도

계속 수업 내용을 시켰는데 5분도 안돼서

아이가 울상이 되었다.

대체 이게 공부가 되는지도 모를 일인데 공주 옷 자랑하고 싶은 아이는 화면에서 사라졌고,

그 아이를 끄집어내서 화면 앞으로 세우려는 엄마와, 그 모든 영상이 녹화되는 가운데

어정쩡한 표정으로 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초 단위로 카운팅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아이한테 관심이 없는 학부모한테

계속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최소 3번은 전화를 걸고,

부재중일 때만 메시지를 남긴다.

마지막 회차에 전화 통화가 되고,

아이에 대해 말하는데 아이한테 관심도 없고

영어 그거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데 뭐 이런 전화까지 하냐고 한다.


쿨하게 아이를 자유방임으로 키우는지,

교육은 니 소관이지 굳이

내가 들어야 하냐는 뜻인지 헷갈렸다.

전자면 멋진 분이지만, 후자면 아이가 안쓰러워지니까.

이 분은 후자였다.

월 회비 꼬박 내고 있으니까 교육은 알아서 시키고 이런 전화하지 말라는 말로 전화는 끊겼다.



정말 멘탈이 간만에 확실히 나갔다.

다행히 아이는 영어를 잘했고,

똘망하니 부모가 돈만 제대로 내면

나중에도 공부는 상위권이겠다 싶었다.


상담을 하면서 정말 나도 누군가한테 상담받고 싶었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이들한테도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지,

학부모들한테 아이에 대해 말하고 소위 상담을 하고 있을 때 내가 말하게 맞는지

정말 물어보고 싶었다.



사람하고 대면하기 싫어서 선택한 직업인데,

아이들 만나서 내가 정말 위안을 많이 받는다.

어쩜 그리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학부모들도 100명을 이야기한다면

대략 5명 정도 특이하고

나머지는 참 좋은 분들인데도 어색하고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좋은 분들도 어색해하는 것 보면

이건 내 문제임이 확실한데.


구두 매장 판매직에 완전 질려서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선생이라는 존재를 싫어했음에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행복하다 느끼는 요즘,


얼마 전에 매장 운영하던 동생이 믿었던 사람한테 크게 뒤통수를 맞았다.

그래서 매장을 옮겨야 되는 상황에서 보증금이 없다며 혼자 고민하길래

돈을 주면 줬지 빌려주면 못 받는다는

내 과거에서 배운 경험에

내가 보증금을 납부하고 내 명의로 계약을 했다.


그러니까 그 질려했던 구두 매장의 점주.(매니저)가 된 셈이다.

그래서 그 매장에도 오전에 나가서

손님을 만나고 있다.


그 손님들과 이야기하면서 학부모 상담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은 마음에

다음 주부터 내가 예뻐하는 내 학생 부모님한테 더 친절하게 이야기해야겠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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