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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Nov 24. 2021

"잘 지내~"라는 말로 끝난 하루.

시원 섭섭해서 미안했던 인사

코로나 시작 전에 영어 학습지 화상 교사로 채용될 때

만해도 2년 가까이 일하게 될 줄 몰랐다.

구직할 때 블로그에 쓴 글을 보니, 좋아하는 일보다는

잘하는 일을 하자고 선택했던 일이었다.


학원 강사를 하려고 했다. 무경력에 내 나이를 언급하며 급여를 구인광고에 게시했던 금액보다

적게 주려고 해서 다른 사람 찾으라고

공손하게 인사하고 나왔다.

경력이 없어서 적게 준다면 이해하겠지만,

나이 많은 게 걸리지만 인심 쓰듯 채용하겠다는

말 뽐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청소에 잡일까지

은근슬쩍 말하는 모양 새하며.


영어 학습지 역시 서울 본사에서 면접 볼 때

경력이 살짝 걸렸지만, 푸근한 인상과

영어 발음이 괜찮다는 이유로 일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건들을 브런치에

꽤 자세히 적었다.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던 사건과 감정들이

글을 보면서 당시를 상기시키곤 했다.

아~~ 이런 일이 있었지.. 이런 기분이었구나.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그만둘 때 아이들과 헤어짐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정이 많이 들어서 어떻게 헤어지지?

울면 어떻게 하지?


많은 생각에 퇴사를 주저했는데

1달 전에 더 이상 일하기 힘들겠구나라는 결심이 섰고 퇴사한다는 말을 했다.


4살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한 나이대 학생들을 가르쳤다.

학습지 특성상 아이들 자의가 배제된 부모의 교육열에 시작을 하고 약정된 계약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공부하는 아이들이 적다.

2년 가까이 공부를 했으면 파닉스가 끝나서

단어를 읽어야 하는데 다수의 아이들이 읽지 못했고,

파닉스 과정을 3번을 반복한 지금.

더 이상 아이들한테 반복하자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아이들도 지겹다고 짜증내기 시작했고,

나도 그 마음이 이해돼서 난감했다)

그렇다고 문장을 읽어야 하는 다음 단계로 올리자니,

내가 모든 글을 읽어줘야 할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제대로 배워야 할 시기를 놓치게 하기도 했다.


퇴사한 교사의 아이들 중에 일부가 학부모와

마찰을 피하기 위해 진도만 뺀 교사로 인해 학습지를

3년 했어도 문장을 혼자 못 읽는 경우가 많았다.


나 역시 그 욕했던 퇴사한 교사와 비슷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구의 잘못일까?


공부를 안 한 아이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교사?

바빠서 아이들 공부를 봐주지 못한 부모?


내가 내린 결론은 영업사원들의 이익창출이었다.


내가 가르치는 학습지는

아무리 빨라도 6살, 7살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6세 이전 아이들 중에 언어 능력이 탁월한 아이들 이외에는

그냥 비싼 놀이 수업일뿐이라는 것을 영업 사원들 역시

자신들의 자녀를 통해서 알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지금 문제 되는 아이들 모두

4,5살에 시작을 해서 2년이 지난 지금 8살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었다.


나이가 어려서 학습이 더디었고,

공부는 안 하고 매주 출석을 하다 보니까 그 과정에 콘텐츠는

이미 다 봐서 더 이상 보여줄 것이 없었다.

그리고 교사를 계속 바꿀 수 있음에도 나하고 정이 들었는지,

바꾸지 않아 나하고 아이들이 뭔가를 더 할 것이 없었다.

(회사 규칙상 학부모한테 '교사'를 바꾸라고

권할 수 없었다)


그래서 회사에 학생들을 바꿀 수 없는지 물어봤지만.

교사한테는 선택권이 없다는 말에 퇴사한다고 말했다.


예습 잘해오고,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들 수업은 재미있었지만

그런 학생들만 가르치는 것 역시 이기적이다 싶어서

전체를 바꾸면  어떠냐는 제안이었는데. 단 번에 까였다.


여튼. 그렇게 퇴사를 결정하자,

본사에서 퇴사 프로세스가 자세히 적힌 메일을 받았다.

그대로 따라서 해야 된다고 해서 3주 전부터 학부모한테 퇴사한다 말하고 아이한테 어떤 교사를 연결해줬으면 좋겠냐고 계속 전화를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아이들 수업을 했다.


오늘 마지막 학생까지 헤어지고 나니까 긴장이 풀렸다.


너무 정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던 학생 5명을 제외하고는 담담하고 시원했다.

인후염이 1년 내내 낫지 않을 정도로 큰 소리로

열심히 가르쳐도 다음 시간에 만나면

'우리가 이걸 공부했다고요?'라고

반문하는 아이들하고 실랑이는 이제 그만해도 되겠구나

라는 편안한 마음에 몸에 힘이 빠졌다.


"좋은 데 가시는 거죠?"


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좋은 데 가기는 한다.


올해 8월에 온라인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굳이 도시에 살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제주도에 집을 구했다.


우선 1달 살아보자 하고,

온라인 수업할 때 잡음이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에

집을 얻었는데 떠나기 바로 1주일 전에

일을 정리하게 될 줄 몰랐다.


제주도 가서 좋다기보다는

지금 당장 정리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조금 피곤하다.


학부모 상담도 언제 다 하지

싶었는데

지금 완전 다 정리되고 퇴사한 것 보면

집에 있는 짐도,

앞으로 뭐해 먹고 살지라는 걱정도

하나씩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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