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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n 28. 2022

2. 복싱

다이어트로 시작해서 10킬로 감량에 성공했던.

좋아하는 배우가 복싱하는 장면에서

잘생김에 멋짐이 어우러진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주말 오후,

권투 중계방송에 본 마른 몸에 우리 아빠도 입지

않을 사틴 재질의 트렁크를 몸 정중앙에 걸치고

운동하는 사람들로 환상은 바로 깨졌다.

무슨 운동과 어떤 옷을 입었냐가 아니라 누구! 가 중요하구나..


내가 누구를 품평할 위치도 아니고,

그런 행위 자체를 혐오했기 때문에

다시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고. 운동 자체를 봤다.

스텝도 화려했고, 펀치하고 피하기까지.

움직임이 정말 많았다.


관심만 많을 때,

당시 핫한 배우가 방송에서 자신도 복싱을 하는데

요즘에는 다이어트하러 온 여자회원들이 많다고.

몇 개월만 지나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난다며

살도 빼고, 호신술도 익히고, 남친도 생긴다고!


오호!! 저거다.


그리고 시작했다.


우리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체육관에

상담받으러 갔는데 나보다 작은 관장이 뒷짐 지고 반겼다.


배도 살짝 나오고,

날만 따뜻해지면 동네 슈퍼 앞에 돗자리 깔고 

막걸리 드시면서 떠들다, 취하면 주무시는

동네 아저씨들하고 차이가 없었다.


"나 말고, 조~기 안에서 운동하는 애들.

내가 키우는 애들이야"


관장이 배와 얼굴에 꽂힌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일부러 손을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멋진 오빠들을 가리켰다.


여자들하고만 운동했던 태권도와는 다르게,

정말 수컷의 냄새라고 해야 될까?

에너지가 뿜어져 나왔다.

내가 올 줄 알고 세팅해 두셨나 싶을 정도로

몸 좋고 잘생긴 남자들이 많았다.

그 옆으로 여자 회원은 80킬로, 100킬로가

육박한 언니 두 명이 땀복을 입고 줄넘기하고 있었다.


"저기 언니들하고 같이 운동하면 되겠네"


남자들하고만 운동하면 창피해서

오래 다닐 수 없었겠지만,

언니들이 잘 챙겨주셔서 바로 그만두지 않았다.


"다음 수업에 땀복 가져와"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여자 다이어트 = 땀복 입고 운동)하는

공식이 있어서 나도 한 벌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줄넘기로 몸을 푸는데,

초등학교 이후로는 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했다.


3분이었나?

종소리 치는 간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3분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땡' 치면

모두 정면 거울을 보고 줄넘기를 한다.

줄넘기 실력은 몸과 비례하게,

나하고 언니들은 20번을 넘기기 어려웠고,

반면 기존 남자 회원들은 쌩쌩이로 3분을

끝내기도 했다.


그리고 쉬는 종소리가 난다.

30초 쉬고.. 또 3분 종이 치고.

무한 반복.

우리가 3분종 감옥 속에서

영혼 사라진 줄넘기 하기를 12분.


사무실 유리창 너머로 관장이 믹스 커피 마시면서

소파에 편안히 앉아 보기만 했다.

그리고 줄넘기가 끝날 때쯤,

학교 교감선생님 슬리퍼를 신은 채 뒷짐 지고 천천히 나와서,


"자. 이제 스텝을 가르쳐 줄 건데.. 너! 이리 와봐"


옆에서 시합 준비하는 오빠를 불러서

기본 스텝을 밟아 보라고 시킨다.

오빠가 보여주면,

말로 설명한다.ㅋㅋㅋㅋ


오빠를 보고, 관장의 설명들으며

따라 하면 뒷짐진 채로 말로 잘못된 점을 고쳐준다.


"아니지. 발 조금 더 벌려야 해. 자.

발 밖으로 2cm 옮겨봐.

옳지. 엄지발가락을 30도만 안으로 틀어봐.

 에헤~50도 틀었잖아. 밖으로 20도만 더 틀어봐.

좋았어. 발은 항상 그 위치에 그 모양이야.

기억하고. 오른발은.. 좋았어.

그 자리에서 사뿐히 뛰는 거야... 자.. 조교! 뛰어봐..

(오빠가 보여주면) 봤지?

저 속도, 높이로 뛰는 거야. 자..

(종소리 간격을 보여주는 시계를 보고..)

종 20초 뒤에 울리니까. 쉬었다가 종 울리면 3분 동안

그 자리에서 이 스텝 연습. 오케이?"


시범을 보였던 오빠는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고,

옆에서 뒷짐 지고 쳐다본다.


대면이지만 비대면 같은 수업을

그 당시에 관장은 하고 있었다.


나중에 요가 수업에서

원장 선생님이 시범만 보일 뿐

학생들 자세를 바로 잡아주지 않았을 때,

이러려면 내가 유튜브를 보지.. 여길 왜 와.  싶었다.

그때 여기 관장이 생각 많이 났다.


복싱 관장은 돈을 날로 먹는 듯 보였지만,

회원들한테 관심이 많았다.

신문 보면서, 커피 마시면서, 뒷짐 지고 스~윽 쳐다보고

잘못된 자세를 바로 잡아줬다.

그리고 필요하다 싶은 훈련을 시켰다.

이 관장은 나처럼 다이어트하러 왔던 여자분을

세계대회 챔피언까지 만들고,

취미로 하려던 많은 사람들을 선수로 만들었다.


2달 되었을 때,

어떤 오빠하고 나를 헤드기어를 씌우고

링에 오르게 했다.

스텝 밟고 펀치를 조금 날릴 줄 아는데,

무슨 시합인가 싶었다.


그 오빠는 뭐랄까.

잘생긴 양아치 느낌?

농담이라며 자주 

'우리 체육관은 운동만 열심히 하게 해.'

(예쁜 회원이 없어서 운동 말고는 할 게 없다는

뉘앙스였다)라고 말하고 다녀서 여자들이 싫어했다.


잘 걸렸다는 듯한 오빠 표정.

많이 맞으면 발로 얼굴을 찍어버려야지.라는

내 적의가 드러난 얼굴과는 상관없이

관장은 흥미롭다는 듯 우리 둘을 번갈아봤다.


"자. 청코너(오빠)는 가드만 해. 주먹 날리지 말고. 홍코너(나)는 펀치만 날려"


오호!!! 좋습니다.


그러자 오빠가 바로 항의했다.

예전에 태권도 선수했다고 들었는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고.


"권투장에서 누가 발을 올려!

이제 2달 된 여자한테 맞는다고 얼마나 아프겠어?

 그리고 아무리 많이 때리면 뭐해! 정타 맞으면 끝나는데.

 얘 싫으면 쟤(중학생 선수) 하고 할래?"


그래서 나하고 시작!


그 오빠가 관장한테 항의할 때, 뒤에 있던 언니들의 

'죽여버려'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는 가드를 올린 채 피하기만 했고,

난 같이 움직이면서 보이는 대로 쳤다.

잔뜩 몸을 웅크린 채로 피했고,

 난 이를 악 물고 쫓아가서 미친 듯 펀치를 날렸다.


얼굴에 가드 올린 손도 치고,

배하고 옆구리도 치고.

며칠 전에 배운 어퍼컷도 해보고

글러브 끼고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은 다 했다.


보통 3분 정도 패드를 치면 지쳐서 헥헥 대는데,

그 오빠를 때리는 3분은

정말 30초처럼 느껴졌다.


관장을 향해.

'더 칠 수 있습니다'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오빠가

이미 헤드기어를 벗어서 끝.


그리고 우리한테 스텝을 보여줬던

조교 오빠가 링에 올라왔다.

다시 3분 종이 치고, 아까처럼 일방적으로 치는데,


어!!!


아까 팍팍 들어갔던 정타는 한 대도 안 나왔다.

미꾸라지처럼 쏙쏙 피하고

링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데

쫓아가는 내가 힘들었다.

펀치를 날려도, 고개를 까딱거리며 피하고

배나 옆구리를 때리려고 하면

백스텝이나 사이드 스텝으로 달아났다.


3분 종이 울리기 전에 내가 지쳐서 나중에는

글러브로 '이리 와보세요'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쉬는 종이 울리자,

조교 오빠한테 인사하고 링에서 내려왔다.


몇 개월 뒤에는 마우스피스를 끼고,

헤드기어 쓴 채로 스파링 몇 번 했는데,

조절을 못 하다 보니,

상대방한테 항의를 듣기도 하고,

상대도 화가 나는지 세게 쳐서 스파링이

난타전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건 내 잘못이다.

스파링에서는 정말 세게 쳐서는 안 되는데.

당시에는 몰랐다.


어릴 적 태권도 스파링 할 때

선배한테 세게 맞아서 스파링 개념이 없었다.


그렇게 연습을 하는데,

어느 날 조교 오빠가 관장한테


"선수로 키워 보는 건 어떠세요?"


라고 나를 추천하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아직은 아냐"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시합이니 선수라는 단어도 싫어해서 말씀에 동의했다.


난 이때 복싱을 정말 열심히 하면서 식단 조절도 잘해서

2달도 안돼서 10킬로가 빠졌다.

100킬로 나갔던 언니는 60킬로까지 빠졌는데

남친 생겨서, 다른 언니는 20킬로 감량 후

스포츠댄스 배우고 싶다고 그만두었다.


단시간에 살이 빠질 때 부작용을 몰랐다.

볼살이 빠져서 나이도 들어 보였지만,

지금까지 남은 후유증은 목주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목주름이 아주 진하게 20대 초반에 생겨서

지금까지 뚜렷하다.


그래서 단시간에 많은 살을 빼려는 사람한테

꼭 내 목주름을 보여준다.


살이 10킬로 이상 빠지니까,

우선 입고 싶은 옷을 다 입을 수 있었다.

어울리는지 여부보다는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에

만족도가 높았다.


언니들 없는 체육관이 썰렁하고 재미없어서

하루 이틀 빠지다가 그만두었다.




그러고 나서 두 번째 복싱은 내가 30대 중반이었을 때였다.

나중에 쓸 예정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동네에 무에타이 체육관이 없어서 복싱 체육관을 다녔다.


이곳을 이후로는 복싱 체육관에 가지 않는다.

복싱과 무에타이는 외관상으로도 스텝이 다르고,

무에타이는 킥, 팔꿈치, 무릎을 사용하기 때문에

피하는 방법도 다르고 거리감 역시 다르다.


복싱에서 피하듯 하다가는 킥에 정타를 맞을 수 있고,

기술적으로 많이 다르다.

복싱을 몇 개월 하고 다시 무에타이로 돌아갔을 때

다시 배워야 했다.

그래서 한 가지나 꾸준히 하자는 생각에

복싱은 더 이상 안 한다.


당시 다니던 복싱 체육관은

관장과 사범 둘이 운영을 했는데,

관장은 복싱협회에서 무슨 직함이 있는지 많이 바빴다.

그래도 오랜 시간 학생을 가르치고,

선수도 많이 양성해서 그런지 매뉴얼이 있었다.

체육관 한 곳에는 시작한 기간에 맞게

1주일 단위로 배울 기술하고,

연습해야 하는 드릴(drill practice)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그래서 기술을 사범한테 배우고,

적힌 그대로 혼자 연습할 수 있었다.

시합 준비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가르쳐 주기도 하고,

스파링도 하면서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냈다.

대부분이 한참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진지한 표정이 너무 귀여워서 엄마 미소가 저절로 나왔다.


다니면서 내가 불편했던 점은,

고등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이라는 사범이

체육관에 주로 있었다.

연애하고 싶은 나이라는 걸 충분히 알겠지만,

예쁜 여자 회원이 들어오면 정신을 못 차렸다.


우리를 가르쳐야 하는데,

여자회원들하고 이야기하느라

회원한테 집중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그나마 어디서 배운 것 같은 나한테

물어보기 시작했다.

시합 준비하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가르쳐 주다가

반복되니 나중에는 피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알려주면서 이게 맞나 싶긴 했는데,

참 열심히 따라 했다.

그리고 지도자가 가끔이라도

패드를 잡아주면서 자세를 봐줘야 하는데,

그런 기초적인 훈련도 안 했다.


회원들과 패드 치는 연습을 할 때,

난 열심히 잡아 준 반면 애들은 미숙해서

잘 못 잡다 보니까 나 역시 서서히 지쳐갔다.


돈 내고 운동하는데 일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렇게 두 번째 운동인 복싱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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