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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l 05. 2022

3. 검도

시도는 좋았으나 끝은 엉망이었던.

어린 시절 나를 설명하는 단어 중에 하나인

 '주의력 산만'.

생활기록부에는 쾌활하고 활발하다는 좋은 단어 뒤에

꼭 붙어 있었다.


성인이 돼서도 찰나의 몰입을 경험하기도 했지만,

흩어진 내 정신들은 모일 생각을 안 했다.



그때 사람들한테 검도가 집중력에 좋다고도 듣고,

죽도로 카리스마 있게 휘두르는 모습이

멋져 보여서 시작했다.

<사진은 aikido >


처음 간 곳은 한마음이라는 한자 뜻을 가진 검도장.

지하에 있던 곳인데

다음부터는 지하에 있는 곳에서는 운동하면

안 되겠다 싶을 정도로 곰팡이 냄새가 심했다.

2주 정도 배웠는데 관장이 체육관이

확장 이사 가게 되었다고,

2달 뒤에 새로운 곳에서 오픈하면

위치를 전화로 알려주겠다고.

그렇게 2주를 배우고, 쉬면서 기다렸는데,

2년이 넘어도 연락이 없었다.


돈만 받고 튄 거다.

아....


속상한 마음에 검도는 쳐다도 안 봤다.

그런데 몇 년 후 이사한 집 근처에

새로운 검도장이 생겼다.

시설도 깨끗하고, 특이한 건 내 또래들이 많았다.


처음 먹튀 한 곳은 나하고 어떤 여자애

두 명 밖에 없어서 심심했는데,

성인부에 사람이 많았다.

그곳에서 기초부터 다시 배웠다.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친하게 지내서

운동 끝나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도 하고. 재미있었다.


대부분이 전문직 종사자라서

운동 이외에 배울 것도 많았고,

인맥 쌓기 진짜 좋았다.


승급시험을 볼 때,

관장이 일부러 저녁 시간에

초등부~성인부 모두 한 공간에 본다고 했다.


시험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담으려는

정말 많은 학부모들과 친인척이

몰려와서 뒤에 한 줄로 앉아 있었다.

작은 몸으로 도장을 씹어 먹겠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죽도를 휘두르는 귀여움 뽀짝한

아이들의 시간에는 화기애애했다.

실수해서 우는 아이가 있으면 사범이 다가가서

같이 해주고 그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담기 모두 바빴다.


성인부가 시작되었을 때는,

아이들이 이미 했던 동작을 같은 시기에

시작했더라도 습득력이 떨어진  어른들의 느리지만

묵직한 동작에 모두 신기하다는 표정.

그리고 '나도 할 수 있다'라는 묘한 자신감이 보였다.


아~~~ 이래서 관장이 일부러 저녁에 몰아서

승급시험을 봤구나.


승급 시험이 끝나고 학부모 몇 명이

실제 등록하기도 했다.

아이들만 배운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렇게 어른들이 많으니까,

와서 같이 하시죠라는 기분 좋은 손짓에 응했다.


급이 올라가면서 거금 들여

호구 세트도 다 구입했는데

집 계약 만료로 이사했다.


새로 이사 온 집 주변에는 검도장이 없었다.

건너 들으니 청소년수련관에

검도 수업이 저녁에 있어 참여하게 되었다.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치기는 했지만,

사범이 친절해서 재미있게 수업했다.


어느 날, 서로 가볍게 연격 연습하는데,

덩치가 큰 남자가 머리 치기 하고 옆으로 지나가다

내 발을 세게 밟고 지나갔다.


내가 너무 아파하니까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는데,

왜 그런 실수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 두 번 더 연습하다 발이 너무 아파서

그날은 쉰다고 했다.


집에 돌아와서 샤워하면서 보니까,

발가락이 퉁퉁 부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까,

새끼발가락이 거의 파란색으로 변해 있어서

겁이 났다.


회사에는 병원 들렀다 가겠다고 미리 연락을 하고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찍으니

새끼 발가락뼈가 조각났단다.

그래서 반깁스를 했다.


당시에 해외출장을 많이 다닐 때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출장 전에

깁스를 풀게 되긴 했다.


한여름에 반깁스 한 발로 절뚝거리면서

버스를 타러 가면

그렇게 사람들이 물어본다.


"왜 다쳤어요?"

"축구하다 다쳤나 보네"

"깁스하면 바지를 입어야지"


축구를 하다 발을 많이 다쳐서 그런지 아저씨들은

축구를 들먹이면서 한 마디씩 보탰고,

깁스 한 발에 바지 입기가 불편해서

일부러 치마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가려야 하지 않겠냐는 아줌마들의

걱정보다는 핀잔에 가까운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발이 다쳐서 아픈 것보다 잔소리와 관심이 싫었다.


깁스를 풀었지만,

의사 선생님이 당분간은 운동하지 말라는 말에 쉬다가,

내가 담당하는 제품이 중국 공장으로 옮기면서

파견 나가게 되었다.


그렇게 짧지만 내 몸에 굵직한 상처를 남긴 채

검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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