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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n 27. 2022

1. 태권도 (생애 첫 격투기)

초파리 같았던 내 어린 날의 무술

남아선호 사상이 심했던 시절에 태어나다 보니

(여자 아이면 낙태했던 그런 무지막지한 시대에서 살아남았다! 휴~)

동네에 여자는 나 혼자.


홍일점이라며 대접을 받기보다는,

예쁘지 않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로

모진 핍박과 괴롭힘 속에서 여전사로 자랐다.


거기에 10살-12살 사이에 20cm가 넘게 크면서

또래 남자들보다 체격이 좋았다.


초등학교 때는 달리기를 잘해서 육상부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놀리는 육상부 남자애들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

그래서 도망가는 남자애를 향해 급하면 손에 있는

실내화 주머니를  던지기도 했고,

주변에 작은 돌이 있으면  주워서 던졌다.


Practice makes perfect!

연습이 완벽함을 만들어 낸다나

나중에는 꽤 잘 맞췄다.

장난 좀 쳤는데 돌 맞았다고 육상부 코치한테 이르면서

내 던지기 실력이 이슈가 되었고,

단거리 하기에는 느렸고,

장거리 하기에는 지구력이 딸렸던 난

바로 공던지기 선수가 되었다.


학교 대표 던지기 선수로 

대회 출전했지만 3등, 4등. 

애매한 실력에 좋은 경험으로 끝내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철봉에 매달리기, 공던지기, 멀리뛰기, 

100미터 달리기를 측정해 학생의 체력을 확인하는

체력장이 있었다


운동을 좀 했던지라,

어렵지 않게 1급이 나왔다.


중학교 때 태권도부, 육상부 선배들이 1급인 아이들을 

상대로 자기네 운동부에 들어오라고 홍보하고 다녔다.

육상부는 이전에 했던지라

난 태권도부에 들어갔다.


동기는 3명이었는데,

아주 버라이어티 했다.


한 명은 소매치기하다 걸려서 소년원에 들어갔고,

다른 한 명은 남자들하고 논다고 아빠가 머리를

삭발했다며 가발을 쓰고 나타났다.

다른 한 명은 평범하게 운동했다.


운동부 폭력은 지금에서야 학생인권을 언급하며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나 때는 심했다.

막대기로 엉덩이를 맞기도 하고,

조금 못된 선배는 따귀를 때리기도 했다.


난 오래 하지 않아서 많이 맞지 않았지만

유명 선수들의 후배가 학폭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글에 그 숨 막히는 분위기를 

아는지라 공감한다.


처음에는 가장 기본적인 발차기를 배운다.

품새는 배우지 않고, 투견처럼 시합에서 이길 수 있는

겨루기 특화된 기술을 배운다.

유연하지 않았기에,  다리 찢는데 정말 고생했다.

선배 두 명이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위에서 눌렀다가

내가 버티는 힘이 좋다 보니까,

나중에는 4명이서 붙어서 강제로 찢었다.

그래서 당시 내 주특기가 찍기였다.


중학교 1학년 때 키가 158cm였는데

체중이 50킬로가 훌쩍 넘게 나갔었다.

잘 먹기도 했고, 골격이 꽤 컸다.

그래서 지금도 어깨 넓이는 왜소한 남자들이 대놓고 부러워할 정도 떡 벌어졌다.

어릴 적에는 창피했는데 지금은 꽤 자랑스럽다.

벌어진 내 어깨가.


관장이 와서 라이트급이 없다며 나한테

46kg-48kg 안으로 체중을 맞춰야겠다고

전국대회 2-3주 전에 통보하고 갔다.


이제 발차기 좀 할 줄 아는 나한테 시합이라뇨?

왕권시대 임금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관장의 말은

곧 법이 되던 시절이라 바로 무식한 체중 조절에 들어갔다.


음식도 제한을 하지만,

땀복을 입고 미친 듯 운동시키고

나중에 힘이 없어서 걸을 힘도 없으면

껌을 씹어서 통에 뱉게 했다.


체중 감량과 동시에,

윗 체급 선배들하고 시합을 붙였다.

아무리 운동신경이 있다고 해도

몇 개월 배운 나하고 1년 넘게 한 선배들하고 

그렇게 무식하게 시합 붙이는 게

말이 되겠냐마는..

그때는 까라면 까는.

시합하면서 많이 맞았다.


실력도 없고, 무리한 체중 감량에 힘까지 없어서

지금 같으면 바로 때려치웠겠지만

당시에는 꽤 악바리 같았던지.

버텼다.


그렇게 버텨서 겨우 48킬로에 맞춰서

체중 측정해서 통과하면 그때부터 미친 듯 먹었다.


첫 상대는 하필!

같은 운동부에 딱 한 명 있던 2학년 선배였다.

모델이 꿈이라고 할 정도로 긴 기럭지에 예쁜 얼굴로

남학교 태권도부에서 인기가 좋았던 선배였는데

첫 시합이 둘이 붙게 되었다.


원래 선배하고 붙으면 후배가 기권을 해야 된단다.

그런데 내가 정말 불쌍하게 체중 감량하고

열심히 연습했던지라

관장이 기권하지 말고 붙으라고 했다.


그동안 서러웠던지.

정말 이 악물고 달려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겼다.

헐~~~


이겼을 때 희열을 느낄 순간도 없이

선배들한테 눈치 없는 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전국대회 첫 시합에서 후배한테 진 친구와

같이 운동했던 선배들 눈에, 난 그냥 배은망덕한 년이었다.

때리면 맞았던 그 시절에

선배를 이겼으니.

거기에 눈치 없던 난 포효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할 건 다 했다)


하지만 막상 시합에 진 선배는 쿨했다.

열심히 할 때부터 알아봤다고.

꼭 우승하라는 덕담으로 내 곁에 

두 번 다시 오지 않았지만 인사는 쿨했다.


그리고 운이 좋게 난 부전승으로 바로 4강에 올랐다.


태권도 배운 지 6개월도 안 된 병아리가

전국대회 4강이라니..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았다.


나중에 내가 붙을 선수를 알게 되었을 때,

아무 감정이 없었다.

그 선수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정보가 하나도 없으니까.

역시 무식하면 용감해지고 자신감이 넘친다.


굉장히 유명한 선수라고.

관장도 좋은 경험으로 여기라고 돌아서는

표정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래도 난 할 수 있다!

내가 엎어버리겠으!


그런 다짐을 나중에 내가 비웃을 정도로

심판의 호루라기가 울리고

딱 5초 뒤에 대회장 천장의 조명들이 보였다.


달려드는 3학년 유망주 언니한테 몇 대 맞고 바로 누었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창피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다시 일어나서 시합을 하고 싶었는데,

워낙 실력 차이가 크다 보니까

관장이 그만하겠다고 심판한테 말해서 시합은 중지되었다.


전국대회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왔고,

집에서 만난 아빠는 화가 많이 나 있으셨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케이블, OTT가 없던 시절이라

지역 뉴스를 사람들이 많이 봤다.


거기에 내가 나왔단다.

1학년이 전국대회 4강에 올랐다고.

왜 그런 뉴스가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운동하는지 몰랐던 아빠가 밥 먹다 뉴스에서

딸 소식을 듣고 그렇게 화를 내셨다고.


펜싱선수였던 친척 언니가,

대학까지 정해진 상태에서 고3 때 부상으로

진학이 무산되었다.

집안에 자랑이었던 언니가 취업반으로 들어가서 작은 회사

경리로 취직하는 모습이 나를 비롯한 모든 친척들한테 충격이었다.

그래서 엄마하고 비밀로 하고 운동했었다.


그렇게 아빠한테 걸렸고,

태권도부에서도 하늘 같은 선배를 이겨 먹은

배은망덕한 이미지로 계속 운동하기가 애매했다.


그리고 성적이 우선 20등 이상 떨어졌다.


악착같이 운동했는데 남는 게 없었다.

없기보다는 더 마이너스된 상황.


그렇게 내 첫 생애 격투기였던 태권도를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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