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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l 07. 2022

5. 무에타이, 빠이(Pai) 가는 길.

히피가 떠난 자유로운 영혼의 마을

푸켓에서 무에타이 1달.

근육통은 사라졌지만, 스파링 하면서

다친 어깨, 무릎 통증으로 1주일 정도

치앙마이에서 쉬었다.


푸켓에서 삶의 질이 그리 높지 않았지만,

운동을 배우면서 친구 사귀는 과정은 꽤 좋았다.


관광이 지루해질 때쯤,

다시 체육관을 검색했다.


여러 곳을 찾다.

한 체육관 문구가 눈에 팍! 들어왔다.


"툭툭이와 가 직업여성이 없는 청정지역"


태국 여행을 하다 보면 안다.

툭툭이 기사들의 횡포를.

좋은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만날 확률이 높고

한 번이라도 경험한다면

절대 이용하지 않으려 한다.


그랩과 우버 어플이 생긴 이후로는

절대 툭툭을 이용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어플이 없어서

사기를 당해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툭툭이도 없고!

밤새 나를 악몽에 넣었던 그들이 없다니..

고민도 안 하고 그곳이 치앙마이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에 있다는 정보만 확인하고

바로 연락했다.


치앙마이 여행사에 크게 쓰인 "빠이 버스 티켓"을

보고 돈을 지불하고 픽업 시간을 기다렸다.


썽태우라는 트럭을 개조해서 미니버스로 지역 곳곳을

누비는 차가 도착해서 배낭을 한 곳에 두고 탔다.


차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본

"황야의 마녀'와 굉장히 비슷하게 생긴

네덜란드에 온 여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눈인사만 하고 앉아서 밖을 쳐다봤다.

10분 뒤, 다른 백인 남자 한 명, 인도 남자 한 명이

타고 조금 더 달리다 진짜 여행사 앞에 도착했다.


도착 후 차에서 배낭을 내리는데, 황야의 마녀가

갑자기 자기 가방을 내리란다.

부탁이 아닌, 직원을 부리 듯한 말투와 태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는데, 나하고 남자 둘이 있었다.

남자 두 명과 눈이 마주치고, '모야" 이런 눈빛으로 자기 배낭만 메고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자기 몸이 불편해서 그러니까 도와달란다.

내가 가방을 내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무게가 나가서 백인 남자가 도와줬다.

가방을 바닥에 두자, 고맙다는 말도 없이 사무실까지 옮겨달라는 말만 남기고 유유히 걸어갔다.

인도 남자가 우리가 또라이를 만났을 때 검지로

귀 주변애 동그라미를 그리는 제스처를 했고.

우리는 각자 가방만 들고 갔다.

사무실에는 여자가 에어컨 바로 앞에 앉아서

내 손을 보고 물어봤다.


-내 가방은?


-내가 어떻게 알아?


그렇게 반문하고 나하고 남자 두 명 역시 의자에

앉아서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혔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네덜란드어로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뜻은 몰라도 욕이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노려보고 몸을 정말 힘겹게 일으켜서 밖으로 나갔다.


-저런 몸으로 배낭여행이라니.. 힘들겠네

-아까 나 여행사 직원인 줄. 명령조였지?

(인도 남자 끄덕임)


이렇게 말하면서 남자 두 명과 친해졌다.

백인 남자는 독일 사람이고,

인도 남자는 말레이시아인으로 둘은 커플.

방콕 카오산로드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고,

지금은 독일에서 같이 산단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남자는 원래 요리사였는데,

결혼 후 회계사인 독일 남자의 지원을 받아

회계로 학위를 받아서 현재 할리우드 제작사 중에

한 곳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둘 다 너무 다정하고, 말을 참 예쁘게 했다.

사무실에 쉬고 있을 때, 직원이 몇 분 뒤에 빠이

갈 미니밴이 온다고 화장실에 미리 들렀다 오라고 했다.


그리고 빠이가 처음이냐고 물어서

나하고 황야의 마녀는 초행길이고,

남자 두 명은 자주 오는 곳이라고 했다.

그러자 초행길인 우리한테 멀미할 수 있으니까

많이 먹지 말라고 했다.


나이가 몇 살인데 멀미야.. 싶었는데..


미니밴이 출발하고 딱 50분 뒤에 깨달았다.

꼬깔콘 같이 우뚝 솟은 산에 급커브가 코너마다 있는

꼬불한 산길을 위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는 그 구간을 일정 속도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

가끔은 영화에서 보듯 차가 붕 떴다.

이러다 우리 죽는 게 아닐까 싶을 때, 백인 남자가

"오늘은 양호하네"라며 윙크했다.


게이 커플 하고 친해져서 미니밴 맨 뒷좌석에 탔는데,

정말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초행길, 멀미에 가장 취약한 자리에 앉아 있었으니.


차라리 실신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 살짝 잠들었다.

다시 깼는데도 차는 여전히 요동쳤다.

토할 것 같다고 손짓하자,

말레이시아 남자가 봉투를 꺼내 줘서

꼭 손에 쥐고 최대한 참았다.


더운 날씨에 창문을 다 닫고 에어컨 튼 차 내부에서

토했다가는..

그 냄새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 아찔했다.


심심했는지 갑자기 차에 탄 사람들이 이야기 시작.

태국 음식이 맛있다는 이야기를 하다,

내 앞에 앉은 남자가 자신을 주한미군이라고 소개하며

소주에 삼겹살이 최고라고 한국 음식을 극찬했다.


독일 남자가 정신줄 놓기 일보 직전인 나를 가리키며


-여기 한국 사람 있어


그러자 모든 시선이 나한테 집중.

삼겹살 말고 소주와 궁합이 맞는 음식이 뭐냐는

한국에서 받지 않는 질문이 쏟아졌다.


호의와 호기심 가득한 그들의 얼굴에


-토할 거 같아 미칠 것 같으니까 니들끼리 놀래!


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버벅거리며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열하자,

그때마다 주한미군이 추임새를 넣으며 잘 받아쳤다.


그렇게 빠이에 도착했다.


우리 시골 시외터미널보다 작은 곳에 '빠이 버스터미널'이라고 쓰여 있는 곳에

던져진 내 배낭을 챙기고 나서야

정신줄을 잡을 수 있었다.


게이 커플은 다음날 같이 밥 먹자며,

자기들 숙소 이름을 적어주고 헤어졌다.

도착 예상 시간을 무에타이 체육관 관장한테

분명 말했는데도,

그 작은 버스터미널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었다.


멀뚱멀뚱 한 구석에 앉아 있는데

많이 본 듯한 무에타이 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탄

남자가 나타났다.


내 영문 이름을 크게 외치길래 맞다고 하자

씨~익 웃으면 말했다.


웰컴 투 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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