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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l 11. 2022

6. 무에타이 In 빠이(Pai)

마음의 고향이라 부르며 내 삼십 대를 보냈던,

도착 다음 날부터 오전 8시, 오후 4시 하루 2번.

2시간씩 운동했다.


산속에 있어서 모기도 많았고, 관장이 개를 좋아해서

스트레칭할 때 개가 옆에서 털을 고르기도 했다.


소수 인원에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시설은 푸켓에 있는 체육관만큼 낙후되어 있었지만

사람들이 좋아서 시설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았다.


8시 수업 전에 30분 정도 조깅하고,

10-20분 단체 줄넘기.

5분 단체 스트레칭.

그리고 기술을 각자 배웠다.

<흔들림이 많았던 예전 사진>
<이름 대신 나를 '시스터'라고 부르는 트레이너 '에이>


배운 기술(펀치, 엘보우, 니킥, 로우킥, 하이킥 등)을

 거울 보고 연습하면, 트레이너가 부른다.

트레이너 하고 3분씩 5세트 패드를 치고,

서로 짝을 정해서 샌드백을 가운데 두고 서서

한 명씩 킥(Kick)을 연습한다.

그러고 나서 모두 모여 10-15분 크로스 핏.

마지막으로 단체 스트레칭 후,

서로 빙 둘러 서서 합장으로 수업을 끝냈다.

<이렇게 소수였었는데>


수업료에 식사비를 내면,

수업이 끝난 후 다 같이 모여서 태국 사람들의

일반 아침식사를 같이 할 수 있었다.


첫 주에는 같이 먹었는데, 운동이 힘들어서 그런지

운동 직후 목에 잘 넘어가지 않았고,

빠른 속도로 먹는 남자들 속도에 맞추다 보니,

자꾸 체했다.

그 뒤로는 샤워하고 쉬다가 브런치 겸해서 먹었다.


빠이는 배낭여행객들의 쉼터면서

히피의 성지라고 불렸던 마을이다.

치앙마이에서 3시간을 756개의 꼬불거리는 길이라는

 고행이 수반돼야 만날 수 있는 지역이었다.

시내는 도보로 2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으로, 은은한 조명과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푸짐하게 즐길 수 있는 현지 음식을 먹으면서

교류하는 곳이었다.


외곽으로는 조용한 성자를 만날 수 있는 듯

자연 그대로의 지역 주민의 삶이 있었다.

태국 북쪽, 산에 위치해 있어 서늘한 아침 안개를

뚫고 달리는 기분이 좋았다.

길에서 마주친 낯선 지역 주민들도 손 흔들어 주었다.

마음이 열린,

순박한 미소와 우리네 정이 공존한 곳이었다.


체육관에서 왜 툭툭이와 직업여성이 없는

청정 지역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해했다.

모두 1인 1 오토바이하고 있어 툭툭이가 필요 없었고,

자연을 벗 삼아 조용히 쉬러 오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벌 여성이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빠이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앞으로 이곳을 정말 자주 오겠다 싶었고,

처음 방문했던 2011부터 2019년

코로나 발생 전까지 거의 매해 방문했었다.


관장이 체육관을 오픈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모든 것이

 부족했지만 거기 모였던 10명 내외의 학생들하고

나눴던 마음만은 넘쳤다.

관장 포함 트레이너 3명, 학생 10명 내외,

총무를 봤던 태국 여자 1명.

이렇게 정말 친하게 지냈다.

<난 항상 구경꾼>

운동도 열심히 하고,

매주 토요일 밤에는 바비큐 나이트라고

술만 가지고 오면 무한 바비큐를 제공해 주었다.

술과 고기가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하면서 친해졌고,

그 친분은 나중에 겜블링..

소액을 걸고 한 도박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나중에 관장 부인이 된 영국 친구가 없앤 듯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모두 모여서 빠이 외곽의 폭포, 유명 관광지를

 단체로 몰려가서 놀았다.

<나한테 던지는 거 아님 주의. 포즈 취한 거였음>


난 오토바이를 운전할 수 없어 항상 신세 지기는 했는데,

오토바이 뒤에서 바람맞으며 자연 그대로를 봤던

그 광경이 지금도 가끔 꿈에 나온다.

<노란티셔츠 있은 친구는 이때 20킬로가 빠진 상태였음>


1달 운동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1년 뒤 겨울에 다시 빠이에 갔다.

그 사이 연애 중이던 관장하고

영국 친구가 사귀기로 했단다.

소식 듣고 얼마나 좋던지.

축하한다고 서로 안고,

덕담 주고받았던 기억이 무색하게.

<다둥이 부부의 흔한 부부싸움 ㅋ>


그다음 해에는 항상 말라 있던 친구 배가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

"호.. 혹시?"


그랬더니 맞다고 환하게 웃는 친구 보고 너무 기뻐서

양손을 친구 얼굴에 대고 같이 기뻐했었다.


그다음 해에는 지친 표정을 한 친구가 아들을 안고

육아에 지친 엄마의 표정으로 맞이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체육관이 서서히 입소문을

탔던지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

<마무리 운동>

10명도 안되었는데 20명, 30명 많을 때는

그 좁은 곳에 수를 세지 못할 정도로 많이 학생들로

꽉 촤서 난 참석하는 횟수가 점점 줄이기는 했다.


그사이 트레이너들도 많이 늘었는데,

푸켓에서 장난 삼아 가르치는 트레이너가

생기면서 변질되었다는 생각에 이곳에서

무에타이는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아졌다.>


오랜 기간 왔던 빠이를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빠이에서 찍은 중국 영화가 유행하면서

갑자기 많은 중국 사람들이 유입이 되었고

오토바이를 30분 배우고 바로 운전하는 사람들로

여기저기 사고가 났다.


조깅할 때, 굉장히 빠른 속도로 내 달리며

소리 지르는 중국 사람들을 마주할 때마다,

정말 재수 없으면 치여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무례한 중국사람들로 장사하는

태국 사람들의 태도도 바뀌어갔고, 

물가도 많이 올랐다.


시내에서 레스토랑 하던 태국 친구도,

10년 장사하던 그곳에 집주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게스트하우스를 세운다고 해서 외곽으로 이사했다.


2011년 빠이에 갔을 때,

한국인이라면 신기해하면서 반겼는데

2014-5년에 중국사람들이 밀려 들어왔고,

2018년부터는 한국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페이스북에서 볼 수 있다.

같이 나이를 먹는 친구들 사는 모습도 재미있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좋아요'를 누른다.


이곳에서 만난 친구 한 명이 치앙마이에 있는 체육관을

 소개해 줘서 2017년부터는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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