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주 Jan 02. 2023

말레이시아 단상 2

우울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계시


이번 여행이 왜 이렇게 우울할까?

뱅기표 끊을 때 왜 이렇게 길게 있으려고 했을까?

그런 자책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다.

지인의 친구가 말레이시아에

아이들 조기 교육차 갔다가

남편이 몸이 아프면서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정말 세상 끝난 표정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남편이 아파서가 아님)

내가 여행했던 말레이시아는 그저 그랬는데

이 사람한테는 천국이었겠구나.

역시 사람마다 선호하는 국가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몸이 좋아지자,

다시 말레이시아로 가려고 준비했단다.

남편이 기러기 아빠로 살고 싶지 않다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간다는 지인 친구한테

그럼 자신이 아이들 데리고 갈 테니

네가 일하라고 했다고 한다.

강행하는 지인 친구한테 이혼서류를

내밀정도로 강경한 남편 행동에

지인 앞에서 펑펑 울며

그렇게 말레이시아를 그리워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여기를?? 왜에~?


그럴 정도로 난 여기가 정말 별로였다.

이번 여행에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숙소 때문이었다.

빨리 예약을 했어야 했는데

게으름병이 도저 며칠 앞두고

(여러 번 전날에 하기도 했다)

예약하고 다니는 그런 여행을 했다.

그러니 가성비 좋은 숙소는 다 예약이 찼고,

크리스마스&새해 이벤트가 겹치면서

동남아시아에서 이런 가격이라고 할 정도로

가격이 올랐다.

정보와 실제가 달랐던 에어비앤비 한 숙소

그 시기가 지난 지금은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사진하고 실물이 다를 거라는

경험에서 알게 된 예상을 하고 있지만,

여기가 같은 공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완전 다른 공간에 머물러야 했다.

그리고 더운 나라여서 그런지

청소를 제대로 안 해서 그런지

퀴퀴한 냄새가 계속 났다.

특히 화장실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그럴 때면 두통으로 타이레놀을 먹고 자기도 했다.

한 숙소는 도착하고 알았다.

호텔인데.. 어떻게 화장실을 같이 쓰지?

이 가격이면 태국에서 꽤 괜찮은 호텔에

머물 가격이었는데 연말이라 그런지..

내가 잘 체크하지 않았는지

공용 욕실을 써야 했다.

호텔이니.. 방 상태만 봤다.

욕실 사진도 괜찮았는데.. 공용일 줄이야.

그래봤자 3방이 샤워실 1개,

화장실 1개를 같이 쓰는 구조였고,

이틀 머물면서 여자 아이 2명을 데리고 여행하는 엄마.

이렇게 세명만 마주치기 했지만 많이 놀랐었다.

나도 8,9시경에 숙소에 들어오다 보니

아이들 일찍 재워야 하는 그 가족하고

목욕하는 시간이 겹쳤다.

밖에서 기다리니 욕실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엄마를 찾았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와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욕실에 들어가서 여자애를 씻겼다.

여자아이도, 엄마도 귀여웠다.


간단하게 아침 먹으면서

한국을 좋아한다고 꼭 가고 싶다고

홍조 띤 얼굴로 이야기했다.

말레이 가족으로 엄마는 영어를 했는데

아이들은 모르는지 엄마가 통역했다.


공용 욕실이 아니었다면

무표정하게 지나쳤을 텐데

욕실 앞에서 마주치면서 인사하고,

밥 먹을 때는 옆에 다가와서 계속 말을 걸었다.

길을 걸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크게 불러서 보니

그 가족 중 첫째 꼬맹이었다.

얼마나 반갑게 부르는지.

혼자 여행하면서 이렇게 크게

 내 이름이 발랄하게 낯선 땅에서 불릴 줄이야.

블루모스크..그냥 그랬다는

이번 숙소들은 정말 대참사다

할 정도로 형편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인연을 만나서 여행하는 동안

숙소 안에서라도 반갑게 인사하고 이야기를 했었다.

체크 아웃하려고 했던 날은

중국계 여자아이가 수줍게 와서

한국어 연습을 했다.

블랙핑크 제니하고 BTS 뷔를 좋아한다고.

나도 좋아해..

그 말 밖에는 마땅히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낀 건,

나야 하루 이틀 이런 곳에 머문다 해도

계속 산다면 어떨까..

정말 아찔했다.

이건 사는 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많이 우울했다.

이제 그만 놀고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리고 이번에 알았다.

지금 여행하고 있는 코타키나발루가

가족 여행지라는 것을.

(석양이 예쁘다는 말만 듣고 왔다)

어쩐지 나처럼 솔로 여행자는 탄중아루 해변에서

본 한국 여자뿐이었다.

가족들이 우르르 몰려다는 여행에,

가족과 같이 해야 하는 시기 특성상

혼자 다니는 게 살짝 어색했다.


분명 단체 여행을 하라면

질색하겠지만..

그 순간 사람들 무리에 외딴섬처럼

서 있을 때는 처량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으로 여행 올 예정인데

추천해 달라고 할 때마다 할 말이 없었다.

국내 여행을 다닌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금 사는 곳과

먼 경상도 지역은 경주, 안동, 부산,

전라도는 부모님 고향이 있는 전주, 남원

강원도는 강릉, 속초 그리고 제주도가 전부였다.


외국은 솔로 여행자가 지내도

괜찮을 정도로 편의시설이

잘되어 있었고, 또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혼자 밥 먹기 참 애매할 정도로

맛집은 최소 2-3인분을 시켜야 했고,

일반 식당도 혼자 먹으면 질문을 많이 했다.


혼자 왔어? 남편은? 결혼은 했나?

팔자 좋네.. 이렇게 여행도 다니고.

그래도 남자들이 쳐다 봐 줄 때 시집 가.

해도 손해 안 해도 손해면 하는 게 낫지. 등등


인상이 좋다는 말을 가끔 듣는

나한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많은 여자들이 혼자 여행할 때 듣는다고 들었다.

그래서 국내 여행은 나중에 남편이나 남친이 생기면

손잡고 다녀야겠다. 그렇게 남겨둔 여행지였다.


해외를 많이는 아니지만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닮은꼴 찾기 게임을 하게 되었다.

코타키나발루 탄중아루 해변 석양

호주의 유명 관광지인 그레이트 오션로드는

제주도 올레 7코스 하고 많이 비슷했고,

3대 석양으로 유명한 코타키나발루의 선셋은

제주도 법환포구 앞에서 보던 색상보다 더 별로였다.

제주도 법환포구 석양


많은 인파가 촬영도구 앞에서

갖가지 포스를 취하며 기다리는 그 순간이 지나

해가 바닷속으로 들어갈 때

구름 때문인지 여러 레이어가 만든 예쁜 색상을

이미 제주도에서 봐서 그런지


"이게 3대 석양이라고???"라는 실소만 나왔다.


내가 말레이시아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은

70% 우울과 30% 평안함이었다.


우울이 절반이 넘는 그 감정 속에서도

한국에서 집콕만 하던 일상에서 볼 수 없었던

드넓은 바다와 야자수, 바닷물로 몸을 서서히 담그며

사라진 태양을 볼 수 있었던 느긋한 시간이 좋았다.


그럼에도 이제는 해외보다는 국내를.

그리고 일상을 여행하는 마음으로 사는 게 어떠겠냐는

신의 계시를 받는 느낌이 가장 컸다.


시기가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시기.

김치가 맛있어지는 시기.

어수룩했던 신입이 숙달되어가는 시기.

여행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시기가

끝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말레이시아 단상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