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주 Feb 03. 2023

말레이시아 단상 5

다시 안 간다 말레이~씨!!! 야~

말레이시아 여행을 끝내고 한국에 왔다.

코타키나발루 공항에서

한국으로 갈 때 굉장히 설레었다.

10년 전 호주에서 인종차별,

생각보다 많이 별로였던 사람들로 인해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던 호주 시드니를

뒤로 하고 두 번째 경험이었다.     

호주에서 내가 배운 교훈은 주류가 아니더라도

차별 대상일 수 있는 곳에서 절대 살지 말자.


한국에서도 난 차별에 대상이긴 했다.

여자였는데 예쁘지 않았고, 평생 기가 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기피 혹은 탄압(?)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건 내가 힘들더라도

내 자신을 숨기거나 바꾸면

이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선택에 문제였다.     

하지만 인종은. 내가 타고난 피부색이

살구색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태운다면 더 심한 차별에 대상이 되고,

그렇다고 방에서 콕 박혀 있다고 해도

난 절대 백인이 될 수도  없거니와

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피부암에도 취약하고, 태닝을 안 한 피부를 보면

사실 너무 하얘서 징그럽다고 느꼈던 친구들도 있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미남미녀를 보면 부러웠지만

그건 우리네처럼 아주 소수다.

다른 것보다 난 내 피부색, 머리색, 특히 연갈색의 눈동자색이 너무 좋다     

이번에 말레이시아 있으면서 총 세 도시를 여행했다.

쿠알라룸푸르는 악몽 그 자체였고.

말라카는 관광 소도시로서 여유와

특유의 밝음이 있어 머무는 동안 좋았다.

코타키나발루는 바다 빼면 뭐가 있을까 싶은

섬의 매력이 있었지만 제주도 바다보다 월등하게

좋다고 느끼는 게 없었다. 비슷했다.     

이번 여행은 내 글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망(亡)이었다.

배운 교훈은 다시는 안 온다.

그리고 이슬람이 국교인 곳은 가지 말자.

그래서 3년 전 친구 거짓말로 많이 출금했던 링깃을

정말 동전까지 다 썼다.

3대 석양 맛집이라는 노을은

영상에 남겼는데 제주도 바다가 더 예뻤다.     


말레이시아 있으면서 내가 느낀 건

노골적인 차별이었다.

같은 국적이지만 민족에 따라 복지가 달랐다.

도로나 큰 건물 광고판에도 말레이 모델들이 많았고,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구인광고에도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모델이

서 있더라도 항상 말레이계가 정중앙이었다.

정말 많은 광고나 포스터에서 메인은

항상 말레이였다. 공식처럼 말이다.     

10년 전 제주도 여행했을 때

말레이시아에서 온 중국계 모녀를 만났다.

딸 둘하고 엄마가 왔었는데

첫째 딸은 호주 모나쉬 대학을 둘째 딸은

러시아에서 의대 재학 중이라고 했다.

다른 딸도 있는 캐나다에서 공부한다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었지만,

말레이시아에서 국립대학이나 좋은 대학에서

말레이 할당제가 있다고 한다.

10명을 뽑는다면 6명은 말레이를,

(비율은 정확지 않다)

4명은 중국, 인도계들이 피 터지게

싸워한다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실력은 있는데 할당제로 막힌 똑똑한 자제들이

말레이시아에 있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유학을 보냈다고 한다.     

그랩에서 만난 운전기사는

똑똑한 중국계들이 게으른 말레이들한테 밀려서

좋은 국립대학을 못 갔었는데 언제부턴가

싱가포르에서 전액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줘서 데리고 간다고 한다.

그리고 일정 기간 머물러야 한다나 뒷말은

잘 못 들었는데 특혜를 줘서 데리고 간다고 했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발생한다면? 어떤 난리가 날지.

심장이 두근댈 정도로 무섭기까지 한다.

지역, 성별, 학벌, 경제력 할당제등

어떤 카테고리로 나눠져서 복지가 결정된다면

사람들은 가만히 있을까?

소수였던 다문화, 여성에게 주는 혜택이

이전보다 늘다 보니 역차별이라는 말이 나온다.     


관광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탓에 관광객보다

로컬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공식처럼 관공서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말레이계,

가게를 포함한 사업체 운영하는 중국계,

낮은 직급이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은 인도계가 많았다.      

여기를 여행하면서 유독 아이들 우는 소리,

뛰어다니는 소리에 주의가 흐트러지곤 했다.

아이들이 정말 많았다.

내가 본 아이들의 80% 말레이였고, 20% 인도계였다.


말라카에서 ‘리틀 인디아’라는  인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 머물렀음에도 월등히

말레이계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중국계는 우리네와 비슷해 보였다.

결혼을 안 하고 아이를 낳지 않아 출산율을

걱정하는 듯 보였다.

임신한 중국계 여성을 만났는데 나이가 많아 보였다.

고령 임신자가 많이 보였던 반면,

말레이는 종교의 영향 때문인지

20대 초중반의 젊은 엄마들이 많았다.

데리고 다니는 아이들 수도 2-5명까지 많았다.     

민족마다 차별적으로 제공되는 복지혜택 때문일까?

     

우리나라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서

조 단위로 국가 예산을 쓴다는데,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에 제공되는

복지를 따라 하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했다.

종교와 문화를 배제할 수 없지만,

걱정 없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기에

많이 낳는 건 아닐까 싶었다.     

한국에 새벽에 도착했다.

그때 느꼈던 안도감, 짜릿함까지 행복했다.     

20킬로가 넘는 가방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공항버스 트렁크에 싣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왔다. 아.... 좋다.... 다시는 안 간다. 말레이~~씨!!! 야!               


작가의 이전글 말레이시아 단상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