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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un 06. 2023

고요하고 평온한 일상

새삼 알게 되었다.

돈 걱정 안 하고 한량처럼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요즘 매일 한다.ㅋ


나를 포함해 가족 모두 건강하고,

속앓이 하는 상대가 없다.

돈은 없지만 빚도 없다.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지만,

불안이라는 감정 덕분에 위험을

감지해서 대처할 수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따라 이것 역시

적당하니 좋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고,

 편하게 살고 싶으면 혼자 사세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듣는 순간 공감했다.


행복보다는 편리함이

내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알기 때문에 내 인생을 뒤돌아 봤을 때,

지금처럼 속과 겉이

모두 편한 적이 없었던 듯싶다.


가끔 심심했지만,

귀찮음보다는 외로움이 나았다.


지난주에 친한 언니를 만나러 갔다.

언니는 형부하고 꽁냥 연애하다,

아이를 임신하면서 후다닥 결혼했다.


연애를 많이 안 해보고

결혼해서 아쉬운 게 많다고

딸한테는 즐기다 이제 정착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 결혼하라고 했다.

그런데 첫사랑인 남자 친구와 연애하다

임신해서 결혼했다.


언니는 그렇게 40대  중반에 할머니가 되었다. 축하드립니다요.

덕분에 난 엄마도 되어보지 못하고

 '이모할머니'가 됐다.

에고고고고.

집도 멀고, 언니가 직장, 집안일에

손주 육아까지 많이 바빠서

거의 만나지 못했다.

딸하고 사위는 맞벌이하고 있어,

언니가 독박 육아하나 싶어 걱정했었다.

그런데 아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이 크다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다 몇 개월 전에 봤을 때,

아이 낯가림이 너무 심했다.

내 곁에는 당연 오지도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심지어는 식당 맞은편에 내가

앉아있다는 이유로 울었다.

그 난감함이란..


나도 길거리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보고 미소만 짓지, 먼저 다가가거나

말을 거는 행동을 안 한다.


아이만큼 나도 낯을 가린다.


장난감 가게 가서 사고

싶은 장난감을 집으면

그거나 계산해 주었지,

만날 때 아는 척 잠깐하고

딱히 친한 척을 안 했다.

장난감을 사줬을 때도, 언니 딸이

'이모할머니한테 고맙습니다.라고 해야지?'

라고 가르쳐 줘도 하지 않았다.


언니 딸이 대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나도 웃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난 선생님으로 만나기도 하고,

화면에서 만나서 그런지

아이들이 유독 따랐다.

오히려 다음 타임 아이를 만나야 하는데,

못 가게 하다 나중에는

우는 사태까지 발생해서

곤란한 적이 많았었다.


그런데 실제 본 언니 손주는 정말 심각하게

낯을 가렸기에 나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중에 더 크면 그때 얼굴 보는 게 낫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언니 인생의 축이 되어버린

소중한 존재를 내가 반기지 않고,

만나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이를 볼 때마다 그 시간이 곤욕이었다.


지난주에 만났고,

차에는 언니, 나, 아이가 있었다.

원래는 언니하고 둘이 밥 먹고

차 마시고 올 계획이었는데

아이가 열이 나서 어린이집을 보내지 못해

데리고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난 낮에 만나서 밥을 먹고,

언니가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에

헤어질 예정이었다.


언니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니,

나도 아이를 투명하게 대했다.

아이가 없는 듯 우리 이야기를 했고,

그때마다 아이가 대화에 꼈다.

그럼 대화를 멈추고,

언니는 아이와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언니가 일이 생겨 급하게 차에 내리면서

나하고 아이만 차에 남는 일이 발생했다.

아이는 정말 미친 듯 울어재꼈다.


아이를 달래려고 이런저런 말을 했는데

계속 엄마하고 할머니만 찾았다.


할머니 곧 온다고. 저기 온다. 엄마한테 전화 걸까?

이런저런 말을 해도 아이는 울기만 했다.

심각하게 울어대니,

인내심에 빨간 불이 들어 올 정도로

 한계에 다다르자,

'그만 울어!'

라고 소리 지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다른 곳을 보고 다른 생각했다.

너무 시끄러워서 내리고 싶었지만,

아이 혼자 둘 수 없었다.


그러다 언니가 왔고,

아이는 울음을 멈추기는 했지만

칭얼거렸다.

이명까지 들릴 정도로 귀가 얼얼했다.


아이는 그 나이에서 볼 수 있는

낯가림을 보였을 거고,

난 언니하고 이런저런

이야기하려고 먼 길 갔던 건데

울음소리에 칭얼거림만 

계속 들어야 하니 힘들었다.

그래도 언니가 와서 다행이었다.

점심을 먹으러 가려고 하니,

아이가 가기 싫단다.

집에 가자고 한다.


갈 식당까지 정해져 있었고,

난 배가 정말 고팠다.

그래서 언니가 단호하게

이모할머니 배고파서 안된다고.

밥 먹고 집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아이가 또 운다.

가기 싫다고. 집에 당장 가자고.


언니한테 그냥 집에 가자고 했더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버릇 나빠지기도 하고

밥 먹으러 와서 아이 우는 소리만 듣고

집에 보내기 그렇다고

내가 얼마 전부터 가고 싶은 식당으로 향했다.


그 길 내내 아이는 칭얼댔다.

 자기는 배가 안 고픈데

왜 밥 먹으러 가야 하냐고.

이모할머니 혼자 가서 먹으라고.


그러자 언니가 이모할머니하고

약속에 네가 낀 거라고.

자꾸 그러면 다음에는 절대 데리고 다니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또 운다.


친구 아이들을 많이 봤지만,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친구 아이가 이랬다면,

낯가림 없어질 때까지는

만나지 말자고 말을 했겠지?


그런데 언니한테는 그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 식당에 갔다.

아이는 여전히 칭얼댔고,

스마트폰에 뽀로로 영상을

보여주니 조용하다 싶다가도

또 집에 가자고 울었다.

달래는 언니도 그랬지만,

점심시간이라 꽉 찬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꽤 소리가 컸는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 고마움이란.)

이건 아마도 난 아이를 달래지 않고

바라보는 입장이라 집중할 뭔가가

더 부족해서였겠지 싶다.

아이는 울다가도 나를 보고 인상 썼다.


언니는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니까

마음 상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 상하지 않았다.

다만, 아이 때문에 언니가 전혀 먹지 못하고

아이를 고 달래는 모습에 한숨이 났다.


예전 도서관 수업에서 만난

60대 수강생이 그랬다.

손주가 미워 죽겠다고.

그 말에 놀라는 사람도 있고,

공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 주변에는 손주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만

있었던지라 미운 걸 넘어서서 죽겠다는

표현을 쓰는 사람의 출현이 꽤 충격이었다


-왜 손주가 미워요?


라는 내 질문에 그분은 정말 단호했다.


-내 딸 힘들게 하니까!


아이가 밤에 잠도 안 자고,

칭얼거림이 심하다고 했다.

자세히는 말을 안 했는데

이전 수업시간에

딸의 산후우울증 때문에

곁에서 너무 힘들었다는 말이 기억났다.


당시에 울분을 토하는

그분의 말에 공감 못했다.

아이를 좋아하지 않지만,

거리에서 보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했으니까.


그런데 난 이 날 그분 심정을 이해했다.

아이 때문에 영혼이 반쯤 나간

초췌한 얼굴로 뽀로로 영상을 물끄러미

보는 언니 표정에 마음이 너무 쓰렸다.

먹으려고 몸을 테이블로 살짝 기울이면

자세가 불편한지 아이가 칭얼거렸다.

그래서 그릇에 떠 주면 언니는

국물만 수저로 먹으면서 괜찮다고 했다.


내가 하나도 괜찮지 않아서

내 눈빛도 이때 달라졌는 듯싶다.

간간히 짓던 미소가 사라졌다.


그나마 조금씩 보던 아이 얼굴을 안 봤다.

마지막에는 아이 몸부림이 심해서

언니가 아이를 데리고 나갔고,

나도 후다닥 먹고 나갔다.


가기 싫은 식당에 앉아 있었던 게

억울한지 차 안에서 또 심하게 울었다.

이 날 아이가 저렇게까지 집에 가자고 하면

무조건 헤어지고 각자 집으로 향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

집에 가니까 조금만 기다리는 말에

아이는 자기 집에  

이모할머니는 못 들어온다고 했다.

언니는 그렇게 말하는 건

나쁜 거라고 말해도 나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아이한테 나도 안 갈 거니까

그만 말해도 된다고 했다.

나도 내 집 갈 테니까,

너도 너네 집에 할머니하고 가라고.


언니는 같이 가자고 계속 말했는데,

내가 싫다고 했다.

머리가 너무 아프다고.


한계치를 넘었다.


먼 길 왔는데 언니하고

이야기 다운 이야기는 전혀 못하고,

밥 먹는 시간도 너무 불편했다.

거기에 대놓고 반감을 표하는 아이가,

아이라 그럴 수 있다고는 해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언니한테 그랬다.

언니하고 보내는 시간이 너무 소중한데,

아이 때문에 전혀 할 수가 없다고.


나중에 둘만 보자고.

아이는 정말 크면 보자고.

한계에 다다르니 말이 나왔다.


돌아와서 고요한 집에 들어서서

소파에 누우니,

내가 천국에서 살고 있었구나.

혼자가 좋구나.

아~~~

좋다..

그러면서 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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