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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Dec 20. 2023

은둔 생활자의 노력

나름 큰 도전이었다.

시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다른 기관에서 받았던 상담은 

간단하게라도 현재 내 심리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이 적혀 있거나

직접적으로 상담받고 싶은 영역에 

체크하라고 적혀 있는 종이를 줬다.


그런데 이곳은 내 이름만 확인하고 

바로 상담실로 안내했고,

처음 만난 상담사의 외모나 인상은 

무당을 연상케 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동네 무당할머니하고 

친하게 지내셔서 인사할 때마다

듣던 음성과 표정이 많이 비슷했다.


-정시에 도착하셨네요.

  왜 오셨는지 편하게 말해 보세요.


그래서 내가 힘든 부분에 대해 말했다.

지금은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지만,

오랜 시간 은둔 백수로 지내서 더 늦기 전에

사회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최대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재택에서 근무할 수 있는

직업교육도 받았는데

취업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내 나이로 인해 

취업이 어려워졌기도 했지만

열악한 조건에 내 노동력을 값싸게 

제공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인,

아직 배가 불렀다는 말이 

내 머릿속에도 떠올랐지만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내 가치, 자존감이 떨어졌던

경험에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20대가 아닌 40대인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라고 물어봤다.


난 요즘 말하는 T(이성적)라서,

듣자마자 

나를 선택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나라도 20대를 뽑을 거라고 했다.


상담사는 축구 경기로 비유하면 

은둔 생활을 전반이 끝난 

'브레이크 타임'으로 여기고, 

후반을 뛸 준비를 해야 된다고 했다.

전반과는 다르게 후반을 뛰어야 하니,

20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고 했다.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서 

여러 자격증이 있다.

하나씩 이야기하자, 

나이가 페널티로 여겨지지 않는

자격증을 언급하며 

그것을 개발해 보는 건 어떠냐고 물었다.


글쎄요.


내 미적지근한 반응에 

그래도 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을 

고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했다.

그렇군요. 축복이군요.

감흥 없는 동의로 1회 차 상담을 끝냈다.


2회 차에는 인간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3개월 만에 만났을 때는 

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은둔 생활을 정리하기 위해

큰 마음먹고 했던 시도의 결과가 처참했다.

과호흡이 오고,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일상이 된 은둔 생활 밖으로 나갈 때,

초기에는 힘들 거라는 걸 예상하고 시작했다.

새벽 2시~3시에 잠들었다 

아침 10~11시에 깨던 생활 패턴도

9시 출근에 6시 퇴근에 맞춰 바꿔야 했다.


생활패턴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도 생기기는 했지만,

무섭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오히려 출근 전에는 사회 초년생 때의 

떨림과 가벼운 흥분이 활력으로 느껴졌다.


낯선 환경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에 치여서 그런지 날이 서 있었다.

호의적이지 않았고

자신들 일까지 나한테 미뤘다.

텃세일 수도 있지만, 

혼자 밥을 먹었던 상황이 오히려 좋았다.


근무 기간이 정해진 일이었지만, 

매일 받는 많은 양의 스트레스로

먹었던 음식을 토하는 신체 반응을 견디며 

겨우 약속한 기간을 끝냈다.

힘든 상황에서도 다 끝냈다는 기특함

시간이 지나면서 근무할 당시 나한테 못되게

굴었던 사람들의 행동을 곱씹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이 넘쳤기에,

잠깐 스쳐 지나가는 사람일지라도

같은 일을 하는데 


꼭 그렇게 대했어야 했는지?

그때 난 왜 바보같이 당하고 있었는지?

그게 최선이었는지?

이미 지난 일에 대해서 생각이 많아졌다.

그래서 2회 차 상담을 갔다.


그동안 있었던 힘든 일을 주저리 이야기했다.

두서없고, 욱한 감정을 여실히 보여주며

쉬임 없이 이야기했다.


상담사는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인간관계를 뭐라고 생각하세요?


인간관계라?

글쎄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지금은 피곤해서 피하고 싶은 관계죠.


-인간관계를 피곤하다 여기시네요. 

  언제부터 그러셨어요?


글쎄요.

어릴 때부터인가.

아니면 성인이 되서부터인가


그러면서 내가 그동안 맺어왔던 

인간관계와 내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상담사가 이야기했다.

머리가 띵... 했다.


아... 내가 이렇게 사람들을 대했구나.

그래서 사람들도 나를 

그 정도의 사람으로 대했구나.

내 행동이 상대를 변화시켜 

나를 다르게 대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1시간 상담에서 내가 50분을 이야기하고 

상담사는 10분 동안

질문 혹은 간단한 자기 생각만 말했다.

그런데 어떤 조언과 위로보다

질문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뭔가 크게 깨우친 표정으로 상담사를 봤다.


-이성적이고 혼자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본인을 믿어보세요.

 

상담사의 말에.

글쎄요..

전 아직은 힘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데..

라는 말미를 흐리면서 상담을 끝냈다.


5회 차까지 상담이 가능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상담은 가지 않았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나한테 혼자 할 수 있다는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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