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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Dec 13. 2023

자발적 고립

부정보다 긍정인 생활

어릴 때 부모님이 가게를 운영하셨다.

자연스럽게 가게에서 밥을 먹고, 

숙제하고, 심부름을 했다.

사람들이 오가면서 가게 안을 들여다봤고,

학교나 학원에서 만난 친구들로부터

몇 시에 내가 뭘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모님이 가게를 비울 때마다 혼자 가게를 봤다.

손님이 오면 어른들 안 계시니

나중에 오라고 설득해서 보내기도 했고,

물건을 찾는 손님이 가게를 휘젓고 다니면

훔쳐가는 건 아닐까?

쫓아다녔다.

투명한 내 공간이 싫었다.

남들이 들여다보는 공간이 싫어서

성인이 된 지금도 누구도

집에 들이지 않는다.


20대 초반에 동생하고 둘이 산 적이 있다.

동생은 돈이 없을 때라서 

집에서 친구들하고 술 마시고 싶었던 반면, 

난 내 공간을 침범한 타인의 존재를 

참지 못했기에 항상 싸웠다.

동생하고 격렬하게 싸웠던 날


-그거 병이야!


 그렇게 소리 지르고 나갔다.


기브 앤 테이크라고 

집에 초대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언제 초대하냐고 물어본다.

'초대할 생각이 없다' 하면 

집에 꿀단지 숨겨뒀냐고 돼 묻는다.

그래서 집 정리도 잘 못하고, 

내 공간에 누가 들어오는 걸 싫어한다고 했다.

비밀스럽다. 내성적이다. 음흉하다. 

여러 말이 오가다가 화제가 전환되곤 했다.

그리고 어느샌가 모임에 배제되어 있었다.

가끔은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 

궁금하긴 하지만,

초대할 마음이 없기에 

좋은 마음으로 청하는 초대에도 거절한다.


반면, 내 공간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항상 밖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외로움을 많이 타서 누군가와 항상 함께하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들, 선배들한테 

진드기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곁에 사람이 있어야 마음이 편했다.


식구들하고 같이 살 때 

집에서 걸려온 전화는

주로 언제 들어오냐는 물음이었다.


글쎄요.

이제 만났는데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한참인데


여러 핑계를 대면서 곧 들어갈 테니

먼저 주무시라고 말하고,

아주 늦게 들어갔다.


그래서 나한테 고립이란 단어는 

달에서 방아 찧는 토끼처럼

눈에는 보이지만 실존하지 않는 단어였다.

수년이 흐른 후,

고립으로 내가 숨을 편히 

쉬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고립과 고독은 다르다고 하는데

어찌 되었던 혼자 오롯이 생활하는

이 시간에 마음이 놓였다.


고립이 좋은 점


1. 아무거나 해도 된다.

2. 타인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날이 좋을 날에는 

동네 산책 겸 장을 보러 밖에

나가기도 했지만,

겨울에는 1주일 이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혼자 있으니 씻지 않았고,

몸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가 

신경 쓰일 때쯤 샤워했다.


침대에 뿌리를 내린 채 밥 먹는 시간 이외에는

모든 시간을 침대에서 보냈다.

그 침대에는 나를 지지했던 친구 대신 

빵빵한 등받이 쿠션

든든하게 뒤를 받치고 있었다.

추운 날, 체온 올리는데 좋다며 

코트 주머니에 따뜻한 캔커피 넣어주던

선배 대신에 포근한 극세사 이불이 

항시 내 체온을 유지해 주기도 했고,

노트북에 다운로드한 영화를 

같이 보면서 꼭 안았던 남자친구 대신 

꿀잠 바디필로우라는 광고에 혹해서 

구입했던 긴 베개를 안고 있다.


등받이 쿠션, 극세사 이불, 바디필로우 삼종세트가

내 고립 생활에 든든한 아군이라고 해야 될까?

그렇게 고립된 생활을 즐겼다.

지금도 즐기고,

앞으로도 즐길 듯하다.


그럼에도 급격한 물가 상승의 영향으로 

모아둔 돈이 눈에 띄게 줄어드는 통장 잔고로 

고립 생활을 정리하고 조만간 경제활동을 시작해야 

않을까 고민만 하고 있다.


이전과 다르다면,

친목이라는 이름으로 소모했던 내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아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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