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주 Dec 27. 2023

은둔 적합형 인간

그게 나야! 나! 바로 나!

비대면 줌 강의로 진행된 독서힐링수업에서

'바다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세요?'

라는 질문을 들었다.

대답에 따라 심리상태를 추측할 수 있는 테스트로

여러 질문을 물어보셨는데 난 '바다'에 꽂혔다.

사람들은


아름답다

평화롭다

푸르다

기분이 좋아진다.


간단한 대답부터 '심연과 같은 깊은 슬픔'이라는

형이상학적인데 싶은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난 '바다'하면 두 가지가 떠올랐다.

나.

미친 여자(줄여서 미친 x)


아. 내가 미친 여자라는 뜻이 아니라.

바다를 보면 "나 myself"

그리고 '미친 여자' 두 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고 했다.


대답은 간결했지만 다수의 수강생들은

"뭔 소리여?"라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로  생각한 이유는

보통의 바다는 잔잔하고

평화로우며 아름답다.

탁 트인 수평선 너머 그리고

그 너머에도 끊임없이

펼쳐진 바다가 아득하면서 몽환적이다.

평소의 나는 조용하고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다.


하지만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면

거세지는 물결처럼

내 감정의 폭도 노랫말인

'머리가 하늘까지 닿겠네' 싶게

고저의 간격이 엄청났다.

조울증의 원인인 뇌에서 분비되는 특정 물질과

별개로 외부 자극에 심하게 반응했다.


사실 바다라기보다는 외부 자극에

심하게 흔들리다 못해 물이 넘치는

간장 종지에 담긴 물

더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 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일을 잘 안 했다.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꼭 내가 해야 되는지?


소수의 좋은 상사는 자세히 설명했고

(감사한 마음에 열심히 일했다),

대부분은 대답 대신 빨리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이해가 안 되는 업무는

손이 여러 번 갈 수밖에 없을 정도로

결과가 좋지 않았다.

나중에 상사 앞으로 불려 가서

하나씩 지적받을 때마다

내 생각을 말했다.


그러니까. 지적에는

"시정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일반적이고 상투적인 대답이 나와야 하건만

난 사과나 수긍 대신 설명했다.


상사의 목소리가 고함으로 바뀔 무렵,

나도 비슷한 크기로 악을 지르며 설명하고 있었다.

위태롭던 업무지시는

곁에 있던 동료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라거나

상사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라는 호통에 일단락되었다.

시간이 지나 내가 대리가 되었을 때,

나하고 비슷한 기질의 후임이 들어왔다.

난 좋은 상사가 되기 위해

정말 자세히 설명을 했건만

후임은 듣지 않았다.


납득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받는 월급 이상의 일은 하지 않겠다는

꽤 합리적인 마인드를 갖고

회사 생활을 하는 친구였다.


그런데 당시 회사는 밤 10시에 끝나면

동료들끼리 신나서 맥주 한 잔

마시고 들어갈 정도로 업무량이 어마무시했다.


그래서 잘해주려는 내 마음을 바로 잡고,

끊임없이 계속 불러서 업무 진행을 물어봤다.

시큰둥하게 대충 대답하던

후임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졌다.


나중에는 한대 치겠다 싶을 정도로

짜증을 내며 대답하는 모습에

불량한 태도를 언급하며 뭐라고 했다.


내 행동에 불만이 많았던 후임은

"태도"라는 말에 꽂혔는지

내 태도를 걸고 넘어갔고,

난 내 상사에 했던 그 말을 그대로 했다.

"그렇게 꼬우면 xx 씨가 대리하던가"


업무를 제때 보고 안 하니까 번거롭게

내가 불러서 체크하고 있는데

대답도 건성으로 대충 할 거면

당신이 왜 여기 있어야 하냐고 물었다.


후임은 손에 들고 있던 볼펜을 던지며

단전부터 끌어 올라온,

깊은 빡침이 멀리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전달될 정도로 큰 소리로

"씨발"을 외쳤다.


이에 나도 손에 들고 있는 파일철을 던지고

똑같이 "씨발"을 시전 했다.


한 대 치면 나도 칠 모양새로

눈을 부릅뜬 채로 노려봤고,

'여자만 아니면 벌써 내 손에 죽었다'는

길거리 싸움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에

"남자만 아니었으면 너도 내 손에 뒤졌어"

라고 받아쳤다.


내 회사 생활은 그랬다.

잘해주면 잘했고,

욕을 하면 같이 했고,

때리면 같이 쳤다.


참을성, 융통성, 현명함은 나하고 거리가 멀었다.

주변 사람도, 나도 모두 힘들었다.

당시에 왜 내 주변에는 이렇게 돌아이들만 가득한지.

인복이 없어도 '더럽게' 없다고 투덜댔다.

시간이 지나고, 거울치료라고 해야 되나?

나하고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달았다.

내가 돌아이구나.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인복'을 의심하고 부정했겠구나.

이런 사실을 깨닫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다시 '바다'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친 여자를 떠올렸던 이유는

구두 매장에서 일한 경험에서였다.


정말 멀쩡한 여자들이

사소한 꼬투리를 잡고,

순식간에 돌변했다.


내가 유독 남자들을 잘 보는 건지

아니면 속이 아주 투명한 남자들만 오는지,

말투와 행동으로

내 '돌아이탐지센서'를 작동시켜서

빠른 태세전환이 가능했기에

남자하고는 트러블이 없었다.


친절하고 우아했던 그녀들은

생각지도 못한 어떤 것에 꽂힌 상태로

지랄발광했다.

소리 지르다가 울었고,

자기 팔자를 원망하다가

나를 저주했다.

오픈된 공간인 아웃렛 매장에서 그녀들의 지랄은

시선을 모으기 충분했다.

내 개인 매장이라면 저렇게 원맨쇼, 모노드라마를

혼자 찍고 가도 되건만,

모여든 사람들 중에서 한 층을 책임지는

매니저가 나타나기 전에 끝내야 했다.


어떨 때는 멍~하니.

'넌 떠들어라 난 다른 생각할 테니'처럼

쳐다만 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어릴 적 버릇 개 못 준다고

같이 소리 질렀다.


그러니까 여기서도 일반적인 매장 직원의

진정시키려는 몸짓과  나긋한 말은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성질은 조금 죽었을지언정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내 자신을 통해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증명하고 있었다.


쳐다보기  VS  같이 소리 지르기


손님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저렇게 매장에서

눈이 부시게 발광을 하는 손님의 경우에는

후자인 '같이 소리 지르기'가

빨리 사건을 종결시킨다.


-신발 불편하니까 환불해 달라고!

-이거 6개월 전에 구입한 거예요.

  이미 신은 신발은 환불이 아니라

  수선만 가능하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수선했는데도 불편하면 환불해 줄 거야!

-아니요.  수선해야죠.

-지금 나하고 말 따먹기 해!!

-아니요! 고객님 말에 대답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소리 질러도 환불 안 해준다는 거지

-그렇다고 몇 번 말합니까?!!!

    어떻게 녹음이라도 해서 카톡으로 보내드려요!

-야!!! 지점장 나오라고 해!

-지점장이 동네 똥개도 아니고 오라면 온답니까!!  

    찾아가세요!

-지금 어딨어?

-자기 사무실에 있겠죠.

-사무실이 어디야?

-상식적으로 매장직원이 어떻게 알겠어요!

-야!!!

-왜요!!!!


뭐 이런 양상으로 흐른다.

처음에는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소리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비와 바람을 몰고 오는

폭풍 같은 사람이 주변에  없는 요즘,

은둔 생활이 외부 자극에

민감한 나한테는 파라다이스.

낙원이었다.


은둔생활은,

고립된 생활 속에서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돌아이였음을.


고요한 나만의 시간 속에서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혼자이기에 느낀 수 있는 행복을

알게 해 준  소중한 시간들이다.











 




이전 04화 은둔 생활자의 노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