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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an 10. 2024

혼자라서 불편한

유일한 단점

'혼자' 지내면서 유일하면서 가장 큰 불편은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혼밥러라고 지칭하면서

"어디까지 먹어봤니?"라는 항공사 광고를

패러디한 질문으로 내공을 측정한다.




혼밥을 좋아한다.

밥을 천천히 먹는 편인데 사회생활하다 보니

어느샌가 앞에 앉은 사람 속도에 맞추고 있었다.

빨리 먹는 사람하고 겸상하는 날에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로 허겁지겁 먹었다.

그렇게 먹은 밥은 당연히 체해서

오후 시간을 망쳤다.




사회 초년생 때 내 속도대로 먹었더니,

먼저 먹은 선배들이 기다리면서 구시렁대었다.

군대에서 선임보다 늦게 먹는 사람을

관심병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나는 여자라서 군대도 안 가는데

뭐 그런 것까지 알려주냐 핀잔을 줬다.


어떤 선배는 천천히 먹으나 빨리 먹으나

뱃속에 들어가서 똑같은 영양분을 얻는데

늦게 먹는 행동이 비효율적이라고 했다.

그 말에 그렇게 효율을 중시하는 분이

비싼 돈 주고 위스키 마시냐고 물었다.

무엇을 마시던 취할 텐데

굳이 비싼 술을 마셔야 되냐고 했다.

집에서 소주 마시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빨리 먹으라는 재촉을 돌려 말하는지 몰랐다.

싸가지보다는 눈치가 없다고 생각한 상사

같이 먹는 사람들하고 비슷한 속도로 먹는 게

사회생활하는데 좋다고 했다.


일하면서 기한, 스타일, 비위 맞추기도 힘든데

밥 먹는 속도까지 맞추라는 말에

엄청 스트레스받았다.

그 뒤로 서둘러 먹었고, 자꾸 체했다.

체하니 일의 능률도 떨어지고 짜증도 늘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점심시간에 시간차를 두고 식당에 갔다.

가족적인 회사를 지향하던 사내 분위기도 있고,

회사 사람들이 까칠하고

자기 주관이 강했지만 좋은 분들이 많았다.

"혼밥 = 왕따"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대화에 끼지 않더라도 꼭 불러

옆에 앉히는 배려(?)가 있었다.

구내식당에서 만나는 회사분들을 피할 수 없었기에

여러 핑계를 대고 늦게 갔다.



그렇게 혼밥을 시작했는데 너무 편했다.

당시에는 혼밥 하는 사람을 불쌍하게 보는 분위기라서

의기소침해질 수 있었지만 만족도가 높았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고, 또 갖다 먹었다.

그리고 오랜 기간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

혼밥이 일상이 됐다.

그래서 혼밥을 좋아하는데

문제는 식당에서 혼밥러는 싫어한다는 사실이다.



특히 점심시간에는 식당에 들어가서

혼자라고 하면 난감해하는 곳도 있고

대놓고 인상 쓰는 곳도 있다.

점심시간에는 테이블이 부족해서

혼자는 이용이 어려우니까 다음에 와 달라고 한다.

어떤 곳은 '혼자는 안 돼요!'라고 하거나

"테이블당 2인분이 기본이에요"


여기가 나이트클럽도 아니고.

점심에 테이블당 기본이 있다는 말은

정말 당혹스러웠다.

기본 시키면 안주도 줄 거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거리에서 구구구구구하고 돌아다니는

비둘기마냥 투덜투덜 내며 걸어 나왔지만

실상은 쫓겨났다.

내 돈 주고 사 먹겠다는데 구걸하러 갔다

쫓겨난 거지마냥 내 뒤로 문이 닫혔다.



일이 있어 송파에 갈 때마다 먹었던

순댓국집이 있다.

일이 끝난 오후 3~4시에 밥을 먹었다.

널찍하고 한산했고 맛도 괜찮아서 자주 갔다.

그러다 하루는 시간이 애매해서 

점심시간대에 가게 되었다.

평상시대로 앉던 자리에 앉으려 하니

사장이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갔더니 단체 손님이 먹는 자리에서 구석에 있는,

그러니까 인원이 홀수라서 같은 테이블에

의자만 하나 남는 자리를 가리켰다.

당황해서 쳐다봤는데, 점심시간에는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사장님이라면 여기서 먹겠어요?


정색하고 물으니, 미안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해서 알겠다고 하고 나왔다.

그 뒤로는 절대 안 갔다.

이때부터였다.

점심시간에 꼭 먹어야 될 상황이면

맥도널드나 서브웨이 같은 패스트푸드만 먹으러 간다.



시간대가 문제였구나.

그 뒤로 식당을 갈 때는

점심시간 전후인 11시나 오후 2시에 간다.

요즘에는 오후 3~5시 브레이크 타임을 하는 곳이

많아서 저녁에는 오후 5시에 간다.

그 말인즉 이 시간대 이외에는 

식당에 자리가 많아도 안 간다.

언제 사람들이 몰려올지 모르고,

그때마다 내가 자리를 옮겨야 하나

마음이 불안해서 서둘러 먹게 된다.


한동안 식당 주인을 욕했다.

그러다 직장에서 만난 나이가

지긋한 남자 어르신이 계셨는데

작은 식당을 운영하다 폐업하셨다고 했다.

점잖으시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났음에도

존중받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눈이 많이 오던 날,

회식자리로 이동할 때 이분 차를 타게 됐다.

혼밥을 좋아하다는 말에 자신이 식당을 운영할 때

혼밥러들이 그렇게 싫었다고 하셨다.

시간당 테이블 회전율이 있고,

사람 수에 따라서 매출 차이가 많이 나는데

혼자 와서 천천히 먹는 사람들 보면

그렇게 속이 터졌다고 한다.

많은 식당들이 대출받아 영업을 시작하고,

밥 먹는 시간이 정해져 있다 보니

자리가 없어 다른 식당으로 가는

무리의 손님을 보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셨는데

왜 폐업하셨을까?

건강상 문제인가 싶어서 물어보니

사기를 당했다고 했다.

식당 주변에 마케팅 회사가 생기고,

월후불 결제로 계약할 수 있냐고 했다고 한다.

완전 후불은 힘들고 선불 50%로 시작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밀리지 않고 주다가,

회사 자금 사정을 이유로 결제를 미뤘다고 한다.

그 사이 직원들하고 친해져서 돈을 이유로 끊기에는

마음에 걸려서 외상거래 했다가

며칠 동안 직원들이 식당에 안 와서 찾아가 보니

사무실이 비어있었다고 한다.


경찰서 찾아갔는데,

사장이 이미 외국으로 도망가서

결국에는 하나도 못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폐업했다고 했다.


조선시대 고고한 학자 같던 분 속에도

열불이 날 정도라고 하니

그만 미워하자 싶었다.

그분들한테는 생계다.


그리고 혼자라서 불편한 게 뭘까?

뭐가 있지?

있나?

음...


없다.

그래서 명랑하게 은둔 백수로

잘 사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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