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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주 Jan 24. 2024

동네활용법(1)

작은 도서관과 마실 가기 좋은 산.

해외에서 만난 친구들이

한국의 도시명을 잘 모르면서도

어디 사냐고 물어본다.

서울 사냐고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지하철로 30분이면 도착하는

도시에 산다고 한다.


도시 여자였어?라는 의외의 반응에

내 이미지를 짐작해 본다.

원래는 다른 도시에 살았다.


은둔 생활을 하기 전에

태국에서 창업하고 싶은 마음에

살던 집을 빼고,

일부 짐을 동생한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가지고 있던 물건 대부분을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재활용센터에

기부해서 그리 많지는 않았다.


태국에서 창업에 필요한 현지인들을 만났고,

한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여유를 즐기려는

느긋한 마인드까지 생겨서 느리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같이 일하기로 했던 사람들이

돈을 더 요구하거나,

처음과 말이 달라졌다.

혼란스러워할 때,

몸에서 혹이 만져졌다.

태국에서 진찰을 받을까?

하다가 급하게 귀국했다.



서둘러 병원에서 초음파검사를 하고 약을 먹었다.

혹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졌고,

다시 태국을 가야 된다는 계획과 다르게

온몸이 가기를 거부했다.

육체가 정신을 이겼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동생 집에서 기생하기 시작했다.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서

불편하지 않았다.

그건 내 생각이었는 듯,

동생은 집에서 먼 곳에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며 이사 갔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갈까 하다

가격대비 지금 사는 곳이 공간도 넓고,

우선 가구가 다 세팅되어 있어서 편했다.


동생이 몇 년 살았던 곳이라 가구도 낡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겠다고

처분하듯 남기고 갔다.


그렇게 이 집에 살게 되었다.


이 집 위치는

천천히 걸어서 5분 거리에 대학교가 있고

빠른 걸음으로 10분 거리에 유명한 산이 있다.

그래서 주말에는 동네에 히말라야 등반도

거뜬할 정도로 전문장비를 갖춘 등산객들로 붐빈다.

(실제는 운동화 신고도

충분히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높이다)


(사진 속 사람들은 낙엽을 하늘에 뿌리고 사진 찍는 중)

산 초입에는 취객과 술판 옆으로

트로트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어르신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날이 좋은 날,

커피를 테이크아웃해서 산 초입에 있는 벤치에

느긋하게 앉아 독서하려고 했다.

그런 내 순진한 시도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트로트 공격'으로 실패했다.



삶이 위태롭다 느낄 때 전화하라는

꽤 진지한 문구가 적힌 큰 플래카드 옆에는

도토리 집어가면 다람쥐들은 뭐 먹겠냐고.

가져가지 말라는 글도 있었다.


어떤 정치인을 지지 발언하는 사람 앞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딴지를 걸어

말싸움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몸싸움으로 커진 후

개싸움으로 번졌다.

조용할 것 같은 산에 빠른 속도로

경찰관들 2-3명이 출동해서 바로 진압했다.

아주 능숙하고 신속했다.




그 뒤로 경찰관들을 자주 봤다.

내가 첫날에 봤던 경찰관들이 유능한 것도 있겠지만

취객에게 이골이 났는지 "생활의 달인"처럼

해탈한 표정으로 싸우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분리시킨 후 이야기를 들어줬다.



난 주로 여름과 가을, 평일 4시 정도에 간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부지런하다.

새벽에 오르기 시작해서

오후 2-3시면 대부분 하산한다.

이때 주민 찬스라고 해야 되나?

4시경에 어슬렁 산 초입부터 중턱까지

경사가 심하지 않은 곳으로 가면,

내가 이 산의 주인인 듯

그 모든 공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대학 앞에 있는 저렴한 커피 브랜드 매장에서

 1,500원짜리 따땃한 아메리카노를

하나 사서 들고 간다.

신호 기다리면서 횡단보도에서 한잔 홀짝!

올라가다 숨차면 깊은숨을 내쉬고 들이키는

숨에 호~로록 한잔 들이켠다.

그렇게 등산 같지 않는 몸놀림으로

유유히 산을 오른다.



산이기 때문에 발이 머무는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공간적 자유가 있지만

난 항상 가는 곳만 간다.


혼자 산을 오르다 보니,

인적이 너무 드물면 무섭기도 하고,

또 '멧돼지를 만났을 때 행동지침'이 적힌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있는 모양새로

봐서 너무 인적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많으면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충 때문에

너무 많아서도 안된다

(산에 자주 오셔서 그런가 목소리가 정말 우렁차다)



그렇게 찾은 곳이 사찰 초입에 있는 그네 의자였다.

가끔 아이들이 앞에 서서 눈치를 줄 때가 있다.


-아!!! 그네 타고 싶다. 나 정말 그네 타고 싶은데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눈치 주는 엄마도 있고,

내가 못 들을 수도 있겠다 싶은지

바로 내 앞까지 아이를 밀어 넣는 엄마도 있다.


기분과 상황에 따라 양보해 줄 때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과거에는 바로 양보해 줬는데,

너무 당연하다는 듯 호의를 받는 아이와

부모를 보고 바뀌었다.


처음 본 당신의 아이보다 내가 더 중요합니다.


산 이외에 자주 가는 곳은 동네 작은 도서관이다.

요가 수업을 듣기 위해 방문했던

주민자치센터 2층에 도서관이 있었다.

작은 도서관이라는 이름답게

작은 공간에 도서, 책상, 소파가 놓여있었다.


다른 도시는 모르겠지만,

내가 사는 도시의 큰 도서관에 있는 어린이 열람실은

성인이 책을 읽을 수 없다.

성인은 책만 빌릴 수 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아무 생각 없이 그림책 여러 권을 읽다가

사서한테 쫓겨났다.

당황한 채 왜 그러냐고 물어봤을 때 원래 그렇단다.

이 세상에 원래 그런 게 어딨냐고?

다시 반문하니 다른 사서가

다가와서 아동들이 어른을 무서워한다나.


내가 봤을 때는 덩치 큰 20대 중반의 남자 사서가

더 무서워 보이는데

"왜 저 사람은 되고 난 안 되는 거죠?"

라고 생각만 하고 알았다고 했다.

수긍은 했지만 '치사해서 안 본다'

라는 표정까지는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런데 작은 도서관은 총 두 칸으로 나눠져 있는데

작은 소파가 붙어져 있어서 아이들이 누워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은 아동 도서가,

그 옆으로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공간은

일반 도서가 있었다.


유레카!!!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라니.

아동들이 누워서 책 읽는 곳에 있는

그림책을 들고 3 발자국 떨어진

테이블에 책을 놓았다.

지금은 자주 가서 내 스타일의 그림책은 다 읽었다.

이곳에 앉아 있으면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엄마 품에 안겨 오는 유아와 학교 끝나고

학원 가기 전에 만화책 보러 온 초등학생도 있고,

가끔 중, 고등학생도 있는데

자기들 앞과 옆으로 책과 가방으로 영역표시를 한다.

좁은 공간에 그러고 싶니?라는

말을 삼키고 다른 곳에 앉는다.


그리고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다.

모두 아무 말씀 없이

책을 읽으시기도 하고,

자격증이나 한자, 사주 공부를 한다.

그런데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마다 특징이 있다.


할머니는 핸드폰을 무음이나 진동으로 하지 않고,

항시 통화 대기 중이다.

전화가 오면 작게 속삭인다고 하지만,

모든 대화가 아주 귀에 쏙쏙 들어오게

통화한다. 까칠한 중딩이들이

눈치를 줘도 끄덕하지 않는다.


와~ 멋져!


그 옆으로 다른 할머니의 핸드폰에는

연신 '카톡' 알림 소리가 울린다.

바로 확인하는 분도 있고, 그냥 두는 분도 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면서도

항상 노이즈캔슬링되는 무선 이어폰을 가져간다.

남자 어르신들은.

이런 글을 적어서 죄송하지만 냄새가 난다.

대부분 담배와 홀아비 냄새라고 해야 되나

특유의 쩐내가 뒤섞여 있다.

개인적으로 인도계 남자들한테 났던

역한 향수 냄새보다는 훨씬 낫다.


날이 더우면 냄새가 더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다르게,

샤워하기 어중간한 쌀쌀한 날씨가

시작되는 가을부터 겨울까지가 심하다.

난방을 하기 때문에 창문을 열었다가는

사서가 와서 닫아 달라고 말할 것이

분명해서 마스크를 쓴다.

나도 나이가 먹었는지,

다른 사람한테 뭐를 해달라고 말하는 것보다

내 안에서 방법을 찾는다.

예민한 구석이 많아서

(그래서 은둔 생활을 좋아할지도 모른다)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2시간이다.

보통 책을 대출하거나,

얇은 책은 그곳에서 앉아서 읽는다.

또 사서분이 너무 친절해서,

그분 미소를 보면 춘풍에 녹은 눈 마냥

마음이 깨끗해진다.


가끔 사람이 그리울 때는

누구한테나 친절한 사서분의 웃음을

보러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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