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뽀리와 엄마의 독립일기(2023.01.28)
1월 21일 갑자기 '태국에서 리나가 왔어' 오늘 만나러 가자. 와~~ 갑자기 기절할 것 같다. 리나가 온 것은 반갑지만 난 영어를 잘 못한다.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간단한 의사소통만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내 말은 해도 남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4년 정도는 영어를 사용할 일도 없어서 아주 쉬운 단어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일 리나 가족과 만나야 된다고 하니 애들도 난리이다. 리나는 남편 회사의 태국 거래처 사장님이다. 비슷한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 뽀리와 동생이 초등학교 때 1주일 넘게 리나네 집에서 머물고 여행을 다녔다. 아이들 인생 초반에 참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준 고마운 거래처이면서 친구 같은 분들이다. 비록 아이들이 사춘기 중이지만 리나 가족이 왔다고 하니 당연히 만나러 간다고 한다. 그리고 K-culture 서울을 전해주고 싶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도 영어 걱정을 한다.
"야, 너희들은 엄마보다 훨씬 낫잖아. 영어 유튜브 듣고, 팝송 듣고" 초등학교 이후 말하기를 그만둔 아이들도 조금은 걱정이 되나 보다. 그런데 너그들은 나랑 비교 불가하잖아.
설 명절 전날. 우리 가족은 동대문 호텔로 리나 가족을 만나러 갔다. 그런데 호텔 앞에서 어느 노숙자가 남편에게 말을 걸더니 팔짱을 끼더라. 순간 놀랐는데. 알고보니 리나의 남편이었다. 태국에 살다 보니 롱패딩이 없어 낡고 얇은 패딩점퍼에 봄 바지, 낡은 모자와 딸 들이 버리려 했던 꽃분홍 벙어리장갑까지 노속자로 오해하기 딱 좋은 차림새였다. 만남부터 긴장감을 풀어진 리나네 가족. 오랜만에 본 리나의 아이들은 큰 아이는 태국 치대에 합격했고, 둘째는 한창 사춘기란다. 우리 두 딸 사춘기를 보는 것 같아 모든 것이 다 이해되었다.
리나는 뽀리가 초등학교 2학년 때 태국에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 우리가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뽀리는 혼자 태국에 가겠다고 했다. 승무원 케어 서비스를 이용했지만 말이다. 영어를 시작한 지 3년밖에 되지 않아 의사소통이 걱정되었지만 본인이 간다고 하니 리나에게 미리 사정 얘기를 하고 보냈다. 뽀리는 리나의 아이들과 인형놀이, 수영, 파타야 여행 등 잘 먹고, 잘 놀고 왔다. 라면도 안 끓여 봤으면서 준비해 간 다양한 라면, 한국 음식을 리나 가족들과 해 먹었다고 한다. 조용하지만 할 것 다했던 뽀리...
10년 만에 만난 리나의 가족들에 뽀리는 차분하게 대화를 잘한다. 리나의 둘째도 지독한 사춘기를 겪는 중인데 제법 리나를 위로해 주는 말도 하면서 말이다. 자신도 중학교 때 말을 하지 않고 힘든 시기를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니 조금씩 좋아졌다고, 기다리시면 된다고...
k-문화가 대단한가 보다. 아이들끼리는 k-pop 굿즈와 k-pop과 드라마 등 한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하이커 그라운드를 다녀왔다. 리나는 자신들 때문에 우리 가족에게 폐가 될까 조심해서 생각보다 리나네 가족과의 만남은 짧게 끝났다.
며칠 뒤에 뽀리가 얘기했다. "엄마, 저 호주 워킹홀리데이 가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작년에 호주 워홀 간다고 할 때는 영어가 살짝 걱정이 됐는데 이번에 리나 아줌마네 가족 만나보니까 전문적인 얘기 빼고는 다 할 수 있어요. 호주 가면 잘 있다 올 것 같아요." 그래 네가 그 긴긴 저녁과 밤을 영어 유튜브를 보며 지낸 시간이 얼마인데...
아이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안에서 잊었던 자신의 또 하나의 능력을 찾아냈다. 또 두려움만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도전해 보고자 했던 자신의 초등학교 2학년 때를 다시 보는 듯했다. 그래 의외의 만남과 장소에서 자신감을 찾는가 보다. '인생은 찰나와 의외의 조합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