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고백의 시작.
'기분이 안 좋아서 점심 먹으로 가요' 아이의 카톡을 보며 깜짝 놀란 나는 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지금은 못 가고 금방 갈께. 식당에 도착하면 메세지 남겨." 나의 심장 박동은 뛰고 걱정이 앞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를 챙기라고 했다.
시급한 일을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밝은 얼굴로 걸어오는 아이를 보며 약간은 안도하며 드라이브 가자고 청했다.
교외의 한적한 월요일 쇼핑몰. 아기자기하고 푸릇푸릇한 야외 카페, 아름다운 꽂밭, 푸르른 산을 배경으로 한 맑은 하늘까지. 꺄르르 웃음 소리가 어울리는 이 카페에서 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 드디어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썼어요. 그런데 글은 첫 시작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뭐라고 썻는지 아세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던 아이가 드디어 글을 썼나보다. 아이가 할 말이 두려웠지만 눈을 마주보며 들을 준비가 됐다고 지그시 바라보았다.
"'나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느낀다.' 로 시작했어요." 그리고는 지난 6년의 고통스런 시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엄마인 나에게 얘기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은 고통을 소화해서 생명의 영양분으로 전환시켜서 이제껏 살아 왔다고 한다. 고통이 없으면 생명을 느낄 수 없다고.
덤덤한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기 30분 전에 아이는 오전에 쓴 자신의 글을 나에게 공유해줬다.
우리는 깊은 절망과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 앞에서 '감히 제가 그 고통을 알 수 있을까요.'라고 말한다. 나 또한 아이의 짧은 고백글을 읽으며 '내가 감히 아이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까?'란 물음과 가슴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찔리는 고통을 느꼈다.
아이는 자신의 우울증 원인을 찾는데 100피스 퍼즐 중에 이제 한두개 찾았다고 한다.
아이 안에는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불안과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함께 있다. 옷도 알록달록 사탕과 같이 밝고 단맛 가득한 색을 고르고, 꽃시장에서는 무대 위의 주인공처럼 혼자서도 돋보이는 꽃을 사고 싶어했다.
'그래, 너란 존재는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과 같이 햇살과 자연이 만나는 아름다움을 소망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나는 참 복이 많고 운이 좋은 엄마이다. 20살 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얘기를 나눠주니 말이다. 아이에게 고맙고 감사하다. 우리는 부모와 자식 관계이면서 서로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나누는 이야기 친구가 되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