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산동 올빼미 Nov 21. 2021

인사쟁이가 바라보는 인사(bye)

당당하게 퇴근하는 방법 제안

인사하지 않고 퇴근합니다

얼마 전부터 '인사하지 않고 퇴근'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려는 회사들에 대한 기사를 접하곤 합니다. 또, 인사를 하지 않고 퇴근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갑론을박하는 인터넷상의 글도 심심치 않게 보게 됩니다. 그런 와중에 최근에는 스타트업에서부터 공기업까지 '인사하지 않고 퇴근하기'가 마치 하나의 필수 직장 문화인 것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잡포털의 일부 채용공고에는 인사 없이 퇴근하는 문화를 회사의 장점으로 내세우기도 하니까요.

(*직장 커뮤니티에서 '인사하지 않는 개념 없는 후배 vs. 인사를 강요하는 꼰대'는 키보드 배틀의 단골 소재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특정 공간에 일정 시간 이상 머무는 시작점과 종료점에 그 주변인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컨대 외출이나 귀가할 때 가족에게 인사를 하며, 식당 들어가고 나올 때면 가게 주인에게 인사를 합니다. 온라인 게임에 로그인/로그아웃할 때 유저들에게 채팅으로 인사를 하고,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반려동물에게 인사말을 던집니다. 심지어 저는 AI 스피커에게도 가끔 퇴근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왜 회사에서만 인사(bye)를 하지 말자고 할까요? 너무 뻔한 얘기지만, 누군가 눈치를 주고 그 눈치로 인해 선뜻 퇴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퇴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동시에 불필요한 초과근무가 만연한 문화를 타파하기 위해 인사하지 않고 퇴근하는 것을 고안했을 겁니다. 게다가 다채로운 여가생활을 즐기고자 워라밸이 보상, 소속감 그리고 성취감보다 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적 흐름과 관련 법 제도의 강화도 영향을 줬을 겁니다.

결국 그동안은 마치 '늦은 퇴근은 미덕이고, 칼퇴근은 죄'인 것처럼 여겨지던 불합리한 문화를 인지하면서도 대체적으로 순응하며 지내왔다면, 최근에는 칼퇴근이라는 정당한 권리를 몸소 실천하는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해 회사에서도 이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퇴근 인사를 하는 것은 어떤 어려움, 문제와 관련 있길래 'Don't 리스트'로 규정되었을까요?

제 경험에 비춰보면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리더나 선배, 동료보다 먼저 퇴근은 심리적 부담과 용기(?)가 요구됨.

셋째, 인사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됨.

첫째, 암묵적, 묵시적으로 불필요한 초과근무가 강요됨.


그런데 저는 인사하지 말고 퇴근하기가 '해결'보다는 '봉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구성원의 고충을 헤아리고 배려한 점은 박수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눈치가 보여 퇴근을 못하므로 눈에 띄지 않게 비밀스럽게(?) 인사 없이 퇴근하는 것이 과연 근본적 원인에 대한 해결인지 의문이 드는 동시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가벼운 인사도 없이 퇴근한다는 것이 다소 각박하게 느껴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고도 도망치듯 퇴근하는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저만 그런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약간 다른 관점으로 모든 회사의 밥벌이 N년차들에게  '당당하게 인사하고, 쿨하게 보내주는 퇴근' 문화에 대해 제안을 드리려고 합니다. (참고로, 제가 주니어 때부터 현재 시니어의 위치로 변해가면서도 실천하려고 노력해 온 부분입니다.)


먼저 조직의 리더와 시니어분들에게 정중히 제안드립니다.

1. 먼저 작별 인사를 고하세요
인사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인사 안 하는 팀원 뒷담화 하지 말고 "오늘 수고했어. 어서 퇴근해" 라며 먼저 작별 인사를 고하세요.  처음에는 조금 어색해도, 몇 번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2. 본전 생각, 그리고 피해의식은 잠시 내려놓으세요.
팀장, 선배가 퇴근하기 전에는 본인 퇴근은 꿈도 못 꿨고, 이유 없는 야근이 당연했던 경험을 팀원들에게 대물림 하기보다는 그것을 끊어내는 용기를 내어주세요.

3. 질척 대신 쿨하게 보내주세요
"벌써 퇴근하려고?", "어디가? 같이 가야지~" 식의 농담조차 필요 없습니다. 괜한 질척거림 없이 쿨내 진동하게 보내주세요. 간다는 사람 붙잡아 봐야 마음은 이미 떠났습니다.


구성원들에게도 제안드립니다.

1. 당당하게 나의 퇴근을 알립시다.
설령 퇴근 인사가 필요 없다고 생각되거나 심리적 부담이 될지라도 오히려 인사로써 선언하고 퇴근하자는 것입니다. 꼰대 같은 리더와 고인물 같은 선배 앞에서 퇴근 인사가 엄두조차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당당히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깡다구(?) 역량을 개발해 봅시다.

2. 똘똘 뭉쳐 만들어 갑시다.
탑다운이 아닌 바텀업으로, 자유롭게 인사하고 퇴근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수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동료들끼리 반갑게 인사도 건네면서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자고요.

3. 일을 꿰차고 있어야 합니다.
당당하고 자유롭게 퇴근하기 위한 전제는 당연하게도 '일'입니다. 모든 일을 그날 완성해야 된다는 게 아닙니다. 내가 맡은 일의 진행과 계획이 명확하게 세워져 있어야 퇴근을 막는 어떤 기습공격에도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아울러 인사쟁이들은 '인사 없는 퇴근 문화'와 'PC Shutdown'과 같은 퇴근이라는 행위 자체를 수월하게 만드는 방법과 함께 왜 리더는 눈치를 줄 수밖에 없고, 구성원들은 눈치가 보이는지에 대해 좀 더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온갖 필터 효과와 각도 조절, 자르기를 적용한 사진 속의 모든 피사체는 감탄스럽고, 우리는 그것이 실제인 양 믿게 됩니다. 사실 사진과 실체가 심한 괴리감이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도 말이죠.

우리 인사쟁이들도 실체(본질)에 집중해서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체는 그대로 둔 채 사진 속 보정 효과와 같은 HR은 쁘게는 보이겠지만 결국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으니까요.


어찌 됐든 우리 모두....

당당히 인사하고 퇴근합시다.

감사합니다.

2021.11.21


작가의 이전글 진짜 이직 이유를 말해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