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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ul 25. 2023

[한국의 신화] 우리 '민속'이 그런 사람 아니에요

민속에 대한 작은 변론

얼마 전 민속학과를 졸업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물었습니다.

"민속학 선생님들은 드라마 <악귀> 보고 뭐라하셔요?"

선생님은 까르르 웃고는 학과 친구들과 꼭 한 번씩은 <악귀> 이야기를 하게 된다고 하며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졸업하면서 팽이치기에서 겨우 벗어났는데 드라마에서는 민속 중에 무속만 이야기해서 아쉽다고 다들 그래요"

팽이치기라니!  얼마 만에 들어보는 우리의 전통 놀이인가 하고 잠시 감탄하다가 선생님의 웃음 속에서 작은 아쉬움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민속은 전통적인 삶의 면면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물론 염해상(오정세)처럼 민속 종교를 연구하는 분도 있지요. 민속종교에는 무당이 행하는 무속도 있고요. 주부가 직접 신에게 빌고 정성을 올리는 가정신앙도 있습니다. 이름을 들어보셨을 성주, 조왕, 터주, 칠성에 대한 신앙이 여기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종교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일부일뿐 전부는 아니잖아요.


옛사람들의 삶을 떠올려 봅시다. 먹고, 일하고, 놀았겠지요. 우리와 마찬가지로요. 그렇다면 무엇을 먹었을지, 어떻게 일했을지 또 노는 건 무얼 하며 놀았을지 궁금하지 않나요? 민속에서는 그러한 것들 또한 연구합니다.


농기계가 없었던 시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두레'라는 하나의 조직을 만들어 서로의 농사를 도왔습니다. 지금도 많이 쓰는 '품앗이'가 바로 두레에서 이루어지던 행위를 일컫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두레는 어떻게 형성했는지 또 어떤 식으로 운용했는지는 민속의 중요한 연구 대상입니다.

노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어요? 투호 던지기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계신가요? 굴렁쇠를 굴리는 방법은요? 놀이도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고 사라지곤 합니다. 놀이 또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이자 또 문화이기에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각 지역에서는 팽이를 무엇이라 부르는지 팽이의 재료와 던지는 법, 또 몇 살 정도의 아이가 치는지와 같은 것을요.


지역 축제에 가면 반드시 있는 전통놀이 코너를 체험 중인 조카와 그것을 지켜보는 굴렁쇠 좀 굴렸던 아빠


민속학에서 민속종교는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러니 혹 드라마를 보고 민속학이 곧 귀신을 연구하는 사람이라 생각하셨다면, 꼭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드라마 <악귀>는 민속학자에게 자문을 받았는데요. 재미있게도 자문은 민속종교보다는 의식주나 농촌 문화 전공 연구자로 구성되어 있더군요. 자문의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실은 '찐'전문가 선생님들이 자문으로 참여하지 않으셔서 조금 속상합니다. 작가님 왜 그러셨어요!) 우리가 쉽게 '민속'하면 떠올리는 무속은 부분일 뿐, 더 많은 것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브이로그가 담아낼 수 있는 삶의 면면이 다양한 것처럼 민속학에서 연구하는 사람의 삶 또한 다채롭답니다.

민속학자 선생님이 겨우 벗어났다고 말하는 '팽이치기'의 세계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그런 것을 왜 연구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실제로도 민속 조사 현장에서 쉽게 듣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니 대학까지 나와서 왜 이런 걸 하고 다녀?"


때로는 이런 질문도 받습니다.

"그런 걸 연구하는 데 돈을 준다고?"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아려옵니다. 가치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는 효용성을 가져야만 가치가 있을까요? 사람을 잘 이해하기 위한 학문.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을 넓혀주는 학문의 가치를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고민이 들 때면 많은 말들이 머릿속에서 맴맴 돕니다. 그러다 요즘은 반쯤 포기한 심정으로 간결하게 대답합니다.


"아니 이런 걸 연구 안 했으면 네가 <신과 함께>나 <악귀> 같은 거 볼 수나 있었을 것 같아?"


이것이 인문학의 가치를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가장 쉽게 제 연구의 '사회적 효용'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 가시적 효용만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요.

우리나라 대학의 민속학과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하나 남은 안동대 민속학과도 학과의 이름을 '문화유산학과'로 바꾸었습니다. 쉽게 '사회적 효용'을 납득할 수 있도록 변화하는 것이지요. 수많은 국문과가 '문화콘텐츠학과'로 바뀌는 것처럼요.


실용과 활용 그리고 효용. 그앞에서 많은 말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합니다.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효용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닌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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