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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Aug 01. 2023

[한국의 신화] 우리 '무속'이 그런 사람 아니에요

무속에 대한 작은 변론

대학생 때 고전문학을 활용해서 콘텐츠를 만드는 발표 수업이 있었습니다. 옆자리 친구의 콘텐츠가 지금도 생각납니다. 무당이 빗자루를 타고 세상에 저주를 내리자 고전소설 속 영웅이 나타나 무당을 물리치는 거였죠. 그 이야기 속 무당은 꼭 마녀 같았어요. 세상을 수렁에 빠뜨리기 위해 독을 만들고 저주를 내리는 마녀요.


이건 아마 무당 아니 무속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에 기대어 만들어진 거겠죠. 무당, 무속 하면 영화 <곡성>, 저주 같은 걸 떠올리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정말 무당은 누군가를 저주할까요?

실제로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한 굿인 저주굿이 학계에 보고된 바 있습니다.

연구자가 굿판에 조사를 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때 연구자는 일상복(아마 등산복)을 입고, 카메라와 녹음기 그리고 노트를 들고 가, 사제자와 신도를 모두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에 앉아 굿을 봅니다.

그런데 저주굿을 조사할 때는 악사로 변장해야 했다고 합니다. 매우 은밀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그 굿은 내연녀가 본부인을 저주하기 위해 한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허수아비를 커터칼로 찌르며 '죽어! 죽어!'를 외쳤다고 합니다.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았던 모습과 닮았지요.


그런데 이것은 아주 예외적인 굿입니다. 1500번 이상 굿을 조사한 연구자도 저주굿은 처음 보았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리고 더 재밌는 것은 도대체 이런 굿을 왜 하느냐고 묻자, 무당이 "자신들이 하지 않으면 더 큰일을 꾸밀 것이라 할 수 없어서 했다", "본부인이 첩 떨어지는 굿을 하면 효과가 있는데, 첩이 본부인 떨어지라고 굿을 하면 효과가 없으니 걱정 말라"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효과도 없을 굿을 내연녀의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한 것이라는 말이지요.


한국에서는 무당이 심리치료사 같은 역할을 한다는 말 많이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여러분도 마음이 불안할 땐 점을 보러 가곤 하지 않나요? 나의 불안을 털어놓고, 그 불안이 곧 해소될 거란 말을 듣는 것만으로 꽤 큰 위안을 얻곤 하지요.

저주굿도 비슷한 역할에 머문다는 것이죠. 누군가를 해하지는 않되 욕망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발산하게 하는, 마음 해소의 역할 딱 그 정도.


여기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주굿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장담하나요?

그것은 바로 무속은 '가족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무속에의 믿음은 가족의 화목과 번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나 첩이 처를 해치려 하는 저주굿은 통할 리가 없는 것이지요.



어제 달이 참 밝던데 혹 소원을 빌었을까요? 달님에게 부정적인 마음을 이야기했나요? (지구가 망했으면, 회사가 없어졌으면 같은 생각 말고요. 정말 누군가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거나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 같은 거요) 그보다는 오늘보다 조금이라도 밝은 앞날을 부탁하지 않았나요?


우리에게 무속은 이제 특별한 대상이 되었습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우환이 닥쳐야만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곤 하죠.

그렇지만 과거에 무속은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있는 신앙이었습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길흉을 점치거나, 날짜를 받으러 가고. 가족이 아프면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구하러 가고. 가족이 죽으면 무당을 찾아가 혼을 위로하는 의식을 지내달라 부탁했지요. 그 외에도 계절마다 절기마다 수시로 찾아갔습니다. 나의 일상생활이 조금 더 윤택해질 수 있도록 무속에 의지했던 것이지요.


또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살기도 바쁜데 누군가를 저주하기 위해 쓸 힘이 있었을까요. 당장 내일의 조업이 올해의 농사가 급한데 말이에요.

저주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는 남이 잘못되어야 하는 저 고관대작들의 일이었을지도 모르죠. 그들의 일은 기록되었으나, 수많은 사람의 일상은 어디에도 남지 못하고 사라졌기에 우리에게 무속이 저주로 기억되었을는지도 모릅니다.


혹 무속에 대한 편견이 어디선가 들려오거든, 지난날 당신께서 달에게 빈 소원을 떠올려주세요. 무당을 찾던 사람들의 마음은 분명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니까요.


*저주굿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논문을 참고했습니다.

홍태한, 「욕망의 표현으로서 굿판의 존재」, 『지식과 교양』3, 목원대학교 교양교육혁신연구센터,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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