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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Aug 08. 2023

[한국의 신화] 가난은 왜 저승까지 따라오는지

ENFJ가 상상해 본 한국의 저승

영화 <코코>를 혹시 좋아하시나요? 주황색의 찬란한 꽃들과 신나는 노래에 덩실거리다, 멕시코의 저승관으로 그린 가족의 사랑에 펑펑 울어버렸더랬죠. 과장을 조금만 보태자면 요즘도 OST를 생각하며 울먹입니다.

"Remember me"


출처: 영화 <코코>


그런데 인터넷에서 한 비판을 보았습니다. <코코> 속 저승이 이승에서 부유했던 사람은 저승에서도 부를 누리고, 가난했던 자는 남루한 옷차림에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는 것으로 그려지는 게 불합리하다는 것이었죠. 그림 속 왼쪽의 헥토르가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있는 것은 그가 이승에서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이승에서 어떻게 살아왔든 관계없이 가난한 자는 가난하고 부유한 자는 부유한, 권선징악은 실현되지 않는 저승이라니. 씁쓸하지요.


저는 그 글을 보고 생각에 빠졌더랬답니다. 이승과 저승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도 모를 때, 그곳을 어떻게 그려내는 것이 좋을까. 만약 저승에서도 삶이 이어진다고 한다면 그 사람이 이승에서 얼마를 가졌던 관계없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만을 기준으로 치하하거나 징벌해야 할까요? 아니면 모두가 평등하게 물자를 배분받아 사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그런 고민을 하던 어느 날 <이공본풀이>를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목이 있지 뭐예요.


부잣집 아이는 사기그릇에 물을 먹고
가난한 집 아이는 깨진 그릇에 물을 마시네
<이공본풀이>


15살이 되기 전 죽은 아이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서천 꽃밭에서 물을 주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곳에서의 아이들은 모두 같이 일을 하지만, 어떻게 먹고사는지는 이승의 자장에 놓여 있는 것이지요.

만약 내가 가난한 부모였다면 이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요.


에고에고 생전에 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했는데.
못난 부모 때문에 저승에서도 깨진 그릇에 물을 먹네.

이 다음 가난한 저승 아이를 위해 돈을 시주받는 의례가 이어집니다. 사람들은 그릇에 딸그락딸그락 동전을 넣습니다. 그 돈으로 저승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먹기를 바라며.


아무래도 한국의 신화에서 저승과 이승은 단절되지 않는 것 같죠? 악행을 저지른 이라면 저승에서 큰 벌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또 아주 착한 일을 한 사람이라면 큰 포상을 받을는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우리 같은 보통 사람은 어떨까요. 저승에서 큰 벌이나 상을 받지 않을 소소한 보통의 삶을 산 사람은요. 그런 보통의 우리에게 저승은 현실의 연장일지도 모릅니다. 이승의 가난과 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분위기를 바꾸어서 야담집 <어우야담>에서 읽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드릴까 합니다.


어느 날 꿈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와 말했다.
"내가 모임에 가야 해서 좋은 옷이 필요한데 너희들이 제사를 소홀히 하니 옷이 없다. 내 부끄러워 도저히 모임에 갈 수가 없으니 새로 옷을 한 벌 지어 올려라."
놀란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새 옷을 지어 제사를 지냈고, 다음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흡족해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저승 세계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저승에서 자체적으로 옷을 생산하려면 저승에서의 생산 체계를 갖추어야 하는 것이잖아요. 목화솜을 기르는 것부터 옷을 재봉하는 것까지 말이에요. 그리고 옷을 사려면 돈도 필요하죠. 복잡하지요.

저 이야기에 따르면, 그러니까 저승은 자체적인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승의 물건을 소비하는 공간인 것이죠. 제사로 보내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제사를 소홀히 하면 조상이 노해 자손을 괴롭히는 것 그 때문이 아닐까요? 생존이 달린 문제인 거죠.


"네가 보내주지 않으면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다!
이 부모를 굶기겠다는 게냐!"

이승과 저승의 부와 가난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실마리를 조금 찾았다 싶을 때 제 머릿속에 새로운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만약에 자식이 집안을 말아먹으면! 아니면 자식이 갑자기 엄청난 부를 축적하면?! 어느 날 초라해진 제사상 혹은 화려해진 제사상이 저승에서의 날들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김씨 지나간다. 자기 천석꾼 양반이라고 사람 무시하고 다니더니 자식이 쫄딱 말아먹었잖아. 저 행색 좀 보라지." 하며 수군거리지는 않았을까요? 오만한 김씨와 착한 이씨의 관계가 자식 때문에 하루만에 역전되는 에피소드가 머릿속에 그려지네요.

이런 일이 저승에서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직 그런 기록은 제가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저승이 소비의 세계라면 응당 자식들의 경제 사정에 영향을 받겠지요.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저의 작은 상상입니다. 재미있잖아요.


소비의 세계 저승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 한 번 상상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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