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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Aug 22. 2023

신화 연구자가 추천하는 웹툰

<어둠이 걷힌 자리엔>

한동안 신화 연구에서는 웹툰을 연구하는 유행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신과 함께>의 흥행이었죠. 신화 연구의 쓸모나 활로를 찾았다고나 할까요. 웹툰에 이어 영화까지 10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신과 함께>에 대한 학계의 주목은 날로 높아졌습니다. 신화와 얼마나 같은지를 가늠해 보고, 또 이것을 통해 사람들이 신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다음엔 무엇을 활용해 볼 수 있을까 연구했죠.

또 하나는 국문과가 '문화콘텐츠학과'로 바뀌는 현상이었습니다. 시장 경제 안에 자리한 문화콘텐츠와의 관련성을 내세워 국문학의 '쓸모'를 보여주는 학과로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러한 자장 안에 들어가기 위해 연구자들은 열심히 웹툰이라는 콘텐츠 논문을 썼습니다.


실은 저도 콘텐츠 논문을 몇 편 썼습니다. 콩고물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저의 영업사원 모드가 발동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이 작품 진짜 재밌어요.
고증도 정말 잘했고요! 신화학자가 봤을 때도 흠이 없다고요~


제가 브런치를 운영하는 것에서 눈치를 채셨을 수도 있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과 나누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름다운 것, 재밌는 것, 흥미로운 것. 미주알고주알 옆사람에게 영업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웹툰인데, 신화학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도 훌륭하다면? 홍보해야죠.


자 그럼 오늘은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여러분께 영업해 볼까 합니다.

스포일러는 없으니 걱정 마셔요.


출처: <어둠이 걷힌 자리엔>


<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오월중개소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곳에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최두겸이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위의 사진 속 인물이에요.


오월중개소에는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숲 속에 자리한 오래되고 신령한 나무에 살고 있는 신, 귀가 큰 사람의 모습을 닮은 바위에 깃든 신과 같이 우리의 곁에 자리하고 있는 존재들이 각자의 사연을 안고 두겸을 찾아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보따리를 옴니버스식으로 마주하는 것이지요.


아동학대, 가정폭력, 권력자의 횡포, 사회의 차별과 멸시, 강요된 희생과 두려움 등등 지금 우리의 삶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폭력을 겪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두겸에게 풀어놓음으로써 한을 푸는 것이지요.


일전에도 말했듯 무속은 '맺힘과 풀림'의 민속이라고들 합니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기 위한 사혼굿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지요. 죽은 사람이 무당의 몸에 깃들어 자신의 한을 이야기합니다.

"내가 그때 그것을 못한 것이"

"우리 불쌍한 어머니를 두고 어찌 가나"

망자가 이승에 남은 미련을 마음껏 말하고 갈 수 있도록 합니다. 망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훌훌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말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들어주는 사람이 바로 무당입니다.


그런 점에서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럼으로써 사연을 해결해 주는 두겸의 역할은 꼭 무당과 닮았지요. 깊게 들어줌으로써 맺힌 것을 풀어주는 사람.




<어둠이 걷힌 자리엔>에 등장하는 신이나 인물은 우리나라의 신화 세계를 바탕으로 젤리빈 작가님이 새롭게 창작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정말 신화 세계의 어드메에 존재하는 것만 같아요. '고증'이라는 면에서 탁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제가 정말 놀란 것은 바로 시대적 배경이에요.


여러분들은 전염병이 신이 주는 것이라면 믿으실 건가요? 마을의 입구에 서있는 장승이나 서낭당이 외부로부터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라는 건요? 깊은 산속에 살고 있는 동물이 실은 산신이고 영험한 힘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힘을 쓸 수 있다면요?


예전엔 그런 생각을 믿었답니다. 사람들은 세상엔 보이지 않는 신, 귀신 그리고 기운들이 돌아다니고 우리는 그 자장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자연의 식물과 동물은 그 또한 영험한 힘이 있어 그들에게 무언가를 빌었고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러지 않죠. 그것은 언제부터일까요?

사람들은 '과학'이 들어오던 근대부터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과학 덕에 질병이 귀신의 조화가 아닌 병균에 의한 것임을 알아차렸고, 나쁜 기운 더 나아가 신이라는 것은 없는 게 아닐까 의심합니다. 그 당시 속칭 '배운 사람들'은 미신타파운동을 펼치며, 과학에 근거한 사고를 하자고 말하지요. 근대에는 기존의 전통적 사고와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합리적 사고의 충돌이 일어났었던 겁니다.



<어둠이 걷힌 자리엔>은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가던 시기. 신은 사람들의 믿음이 약해지자 당황합니다. 그리곤 각기 다른 방법으로 변화에 적응합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변화하면서.


변화의 과정에는 과거의 것과 현재의 것이 공존합니다. 그 덕에 우리는 현재의 사고와 견주며 낯선 과거의 사고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것이지요.

신화적 세계라는 것은 단순히 신화의 인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름의 세계관 속에서 작동합니다. 그러한 세계관을 보다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바로 <어둠이 걷힌 자리엔>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때요?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이 작품을 통해서 신화의 매력에 텀벙 빠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 번 읽어보지 않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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