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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Aug 29. 2023

[한국의 신화] 가족을 죽이는 가족들

칠성풀이

한국의 신화에서 종종 아이를 버리곤 합니다.

하백은 딸 유화가 알을 낳자 불길하다며 가져다 버립니다.

오구대왕은 일곱 번째도 딸이 태어나자 화가 나 아이를 버립니다.


갓 태어난 아이를 노상에 버린다는 것은 죽이겠다는 것이지요.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우는 것밖에 없는 아이를 길에 버려, 먹지 못하고 울다 지쳐 죽어버리기를 바라면서요.


다 큰 자식을 죽이려고도 합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이 집을 비운 사이 당금애기가 중의 아이를 임신합니다.

집에 돌아와 그 사실을 안 오빠들은 양반의 가문에 먹칠을 했다며 동생을 죽이려 합니다.


가족들이 가족을 죽입니다. 이때 아이를 죽이려는 사람은 대개 남성입니다.

남성 세계에서 공유되는 '일반적임'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아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는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가진 게 많아지면 두려움이 커진다고들 하잖아요. 가부장제에서 왕위계승과 양반으로서의 명성은 매우 중요했겠지요. 그것을 잃는 것이 두려웠겠지요. 그렇지만 가족을 죽일 만큼 그것이 중요했을까요.



그런데 자식을 죽이려는 엄마도 있습니다.


매화부인이 한 번에 일곱 아들을 낳았다.
남편인 칠성님은 짐승도 아닌데 일곱 명을 한 번에 낳은 것이 징그럽다며 매화부인을 버리고 하늘로 올라가 재혼한다.
절망에 빠진 매화부인은 일곱 아이를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강가로 향한다.
<칠성풀이>


다산은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지곤 하지요. 그런데 일곱 아이를 한 번에 낳는 것이 일반적이지는 않지요. 그래서일까요. 칠성은 징그럽다며 매화부인을 버리고 떠나버립니다. 그러자 매화부인은 아이를 죽이려 합니다.


처음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남편이 자신을 버린 것에 대한 충격으로 그런 것일까. 그래도. 그래도.


그러다 한 논문을 보니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홀로 살아가기에도 힘들었는데, 일곱 아이를 부양했다면 그것은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요. 여성이 생계를 이어갈 방법이 변변치 않은데 일곱 명의 자식을 홀로 키울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는 것,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우는 것 등등 무엇 하나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삶에 대한 막막함에 신세에 대한 비관이 더해져 아이들을 죽이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었겠냐고요.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의 삶 질곡을 읽어낼 수 있다고 말입니다.


논지에 수긍하다 '동반자살'을 떠올렸습니다.

최근에 어디선가 부모가 아이를 살해한 후에 자살하는 것을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로 부르자는 말을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동반자살이라는 단어는 부모가 자식을 소유물로 인식하고 멋대로 처분할 수 있다는 개념을 포함하기에 수정되어야 한다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저 장면이 다시 읽히더군요. 매화부인에서 아이로 시각을 옮기니 저것은 아이들이 겪는 첫 번째 시련이었던 것입니다. 매화부인의 힘듦을 외면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에 방점을 찍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뒷부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매화부인이 아이를 버리려 하자 신이 나타나 말한다.
아이들은 젖만 물리고 가만히 두면 무탈히 자랄 테니 죽이지 말고 데려다 길러라.
신의 말을 들은 매화부인은 아이들을 데려다 길렀더니 건강히 쑥쑥 자랐다.
<칠성풀이>


신은 매화부인에게 알려줍니다. 네가 걱정하는 것은 알지만, 의외로 저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랄 것이라고요. 그리고 신의 말대로 아이들은 건강히 잘 자랐습니다.


우리는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걱정을 하곤 합니다. 혹은 나의 기준으로 타인의 삶과 미래를 재단하곤 합니다. 그리곤 질타하고, 비난하곤 합니다. 신화에선 그것이 죽음으로 그려졌지요. 아무리 내가 최악을 예견하고 확신하더라도, 그것이 삶과 미래보다 값질까요. 땅에 떨어진 명예를 회복하는 방법이 하나라도 있지 않을까요? 나락에 떨어진 것만 같은 삶에 희망이 단 하나는 있지 않을까요? 내가 미래를 확언할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기에, 그럴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쩌면 모든 것이 기우일런지도 몰라요. 일곱 아이가 무럭무럭 자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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