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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Sep 05. 2023

[한국의 신화] 완벽한 여신

<삼승할망본풀이>

인간 세상에 산모의 비명이 울러 퍼집니다. 뱃속에 생명이 움튼 지 10개월이 넘었음에도, 삼신이 아이를 태어나게 하는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남편은 삼신에게 제발 아내를 살려달라 애원하고, 산모는 비명을 지릅니다. 그럼에도 삼신은 그저 당황할 뿐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


삼신, 삼신할머니. 여러분들이 아는 바로 그 삼신 할머니가 맞습니다. 부부에게 아이를 점지해 주고,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고 또 15살까지 건강히 자라도록 돌봐준다는 바로 그 신.

그런 삼신할머니가 아이를 낳게 하는 법을 모른다니 놀랍지요?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삼승할망본풀이> 속 구삼승할망(구삼신할머니)는 몰랐습니다. 신기하지요. 아이 낳는 법도 모르는 존재가 어떻게 삼신이 되었는지. 그리고 구(old)라니, 그렇다면 신(new)삼승할망도 있다는 건데, 삼승할머니에 세대교체가 있었다는 것도.


오늘은 삼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구삼승할망이 아이를 낳는 법을 몰라 인간 세계가 뒤집히자 하늘에 있는, 최고의 신 옥황상제는 새로운 삼신을 보내려고 준비합니다. 똑똑한 여자 아이 한 명을 데려와 시험합니다


"어디 여자 아이가 대청마루에 들어오느냐."
여자아이는 대답합니다.
"저를 이곳으로 오라 부르시고 여자아이임을 나무라시는 것은 어인 까닭에서 일지요."


당돌한 모습을 마음에 들어 하며 옥황상제는 껄껄 웃습니다. 그리곤 삼신으로서 해야 하는 일을 세세히 일러 인간세상에 내려 보냅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는 법도 모르는 구삼승할망은 자신이 삼신이라며 새로 온 삼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화를 내고 소리칩니다. 그러자 새로 온 삼신은 구삼승할망을 달래며, 우리 옥황상제에게 결정해 달라고 하자합니다.  자신이 새로운 삼신을 내려보내놓고 옥황상제는 둘이 대결을 하여 이긴 사람이 삼신이 되는 것으로 하자 합니다.

삼신은 제멋대로인 옥황상제의 말에도, 소리를 내지르는 구삼승할망의 말도 모두 받아들이며 기꺼이 대결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냄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보이고, 이깁니다.


구삼승할망은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다시 한번 화를 냅니다. 모든 것을 뒤엎고 태워버리겠다 합니다. 짜증이 날법한데 삼승할망은 그 화를 모두 받아주며 달랩니다. 구삼승할망을 잘 어르고 달래 자신은 삼신으로, 구삼승할망은 저승할망으로 자리 잡기로 하지요.


이 이야기를 보면 삼신은 참 완벽해 보입니다. 삼신으로서의 능력은 물론 인성과 지성, 그 어느 것 하나에서도 부족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는 꼭 완벽해 보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연구자들은 삼신이 완벽한 선()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런데 왜 삼신은 완벽해야 할까요.


자 여기서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한 아이가 아버지와 함께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실려왔습니다.
의식이 없고 상처가 심해 당장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호출을 받고 온 외과의사가 말합니다.
"이 아이는 내 아들이라 수술할 수 없소."


이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해되셨나요? 이 이야기는 사람들의 인식을 실험하기 위해 설계된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외과의사가 남성일 거라 상상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의사의 말에서 잠시 멈칫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삼신을 생각하면 어떤 성별이 떠오르시나요? 삼신 하면-할머니, 그러니 여성이겠지요.


신화학자들은 옛날 옛적엔 신의 세계가 모계 중심이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남성중심 사회가 오랜 기간 지속됨에 따라 여신들은 밀려나고, 약해지고 심지어 신으로서의 자격 또한 빼앗겼을 것이라고요.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이 대표적입니다. 신화학자들은 세상을 만든 창조 여신이었던 그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약해지고-밀려나-신이 아닌 거인이 되고, 하려던 일마저 실패하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라 말합니다.

여신이 거인이 되는 변화 속에서도 삼신은 여전히 '할머니'로서, 인간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일인 아이의 탄생과 성장을 관장하는 자리를 지켜낸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삼신의 완벽성, 완벽한 선을 갖추었다는 점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라 짐작합니다.


삼신에 관한 신화인 <할망본풀이>에서 삼신은 끊임없이 질문 앞에 놓입니다. 그를 처음 본 옥황상제가 시험하려 했던 것처럼요. 그리고 삼신은 반복되는 질문 앞에서 인성, 지성, 직업적 능력 그 어디에서도 완벽함을 증명해 냅니다.


다시 질문해 봅니다. 왜 완벽해야 할까요?


그 질문을 이어가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채송화 캐릭터를 참 좋아하면서도 채송화는 왜 흠이 없을까 궁금했습니다. 익준이도, 준환이도 무언가 하나씩은 흠이 있는데 송화는 왜 먹깨비라는 점 말고는 흠이 없을까. 그게 흠일까. 그러다 다른 드라마 속 홍일점 캐릭터를 떠올려봤습니다. 그들도 그렇더군요. 미모, 지성, 인성 그 무엇도 흠이 없는 홍일점. 완벽해야만 유일한 빨강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푸른 점들과 달리 빨강에겐 더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여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흠 또한 잡히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야만 여자라는 성별이 발목을 잡고 주르륵 내려 앉히지 않을 테니까요.


시련을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고들 합니다. 세상이 나를 주저앉히려 할 때 우리는 남들보다 뛰어난 무언가가 되려 합니다. 노력하고 강해지고, 그럼으로써 나아갑니다. 그러다 가끔 서글퍼집니다. 나는 왜 더 나은 무언가가 되지 않으면 얻어낼 수 없는 걸까. 고개를 돌려 완벽한 삼신을 봅니다. 하물며 여성과 가장 가까운 신인 삼신마저도 완벽해야 하다니.

삼신의 완벽함에서 씁쓸함을 느낍니다.



*이 글은 제 논문인 「<할망본풀이>를 통해 본 여신의 자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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