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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Sep 12. 2023

[보따리 강사] 나만 즐거운 수업

저는 대학에서 강의를 한지 겨우 만 2년이 지난 병아리 강사입니다. 

그간 교양 과목을 가르쳤습니다. 가장 긴 기간을 가르친 것은 글쓰기입니다. 모두가 대학에 입학하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그 과목이요.


글쓰기 수업에 오는 학생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수강 이유가 '들어야 하니까'이니 당연한 것이 아닐까요. 뭐든 열심히 하는 성미 때문에 수업 초반부터 열의를 보이는 학생도 가끔 있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저에게 한줄기 빛과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저 앉아 있어요.


그래서 학기 초엔 고군분투합니다.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 여러분들이 이 수업을 통해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설득합니다. 글을 쓰고 피드백을 하며 학생들과 저 사이에 라뽀(rapport)가 생기면 수업은 조금 수월해집니다. 학생들은 제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라 믿고, 말하고 쓰려합니다. 저는 기쁘게 듣습니다.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어 들려주는 학생들이 고맙습니다.


그런데 가끔 허무합니다. 나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몇몇 학생들이 전해줍니다. 저의 수업 덕에 글쓰기가 좋아졌다고, 책을 읽는 재미를 알았다고. 삶의 동반자를 만들어주어서 뿌듯합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공부하며 익힌 지식을 전달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여 공허합니다.



그러던 제가 이번 학기부터 전공 강의를 맡게 되었습니다.(유후!)

얼마나 신이 나던지요. 알고 있는 것들을 미주알고주알 꺼내어 펼치고, 학생들이 요리조리 맛보았으면 좋겠단 마음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준비합니다.


자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학생들 앞에 촤르르 펼쳐놓습니다. 자고로 학문의 맛은 다양한 자료와 시각을 견주어 보며 자신만의 시각을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호기롭게 교과서적 정의와 함께 실제로 자료는 그리 명쾌하지 않다며 불명확함을 가득 풀어놓아 학생들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런데 학생이 하품을 합니다. 휴대폰을 봅니다. 전혀 웃을 부분이 아닌데 미소 짓고 있네요.(무언갈 보고 있나 봅니다.) 시계를 봅니다. 마흔 명이 넘는 학생 중 다섯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인원만이 열심히 필기를 합니다.


그때 글쓰기와 전공 강의가 학생들에게 뭐 그리 다른 의미를 지닐까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이 과목이라고 원해서 수강신청을 했을까요? 이 과목에서 배울 내용이 궁금할까요? 애초에 이 전공을 원해서 택했을까요? 제가 학부 전공을 골랐던 이유를 생각하며(당연하게도 점수에 맞춰 갔었지요) '아니'라는 답을 내립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이 시무룩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조금은 서운합니다. 하지만 공허하진 않습니다. 저는 재미있었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것,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매력을 와르르 펼쳐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나만 즐겁지만, 나는 즐거워!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저와 학생이 모두 즐거운 수업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 수업은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혹자는 이제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 아닌 기업, 취업 사관학교라고 말합니다. 그런 시대에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요.

그럼에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과 나누기를 좋아하기에, 제가 사랑하는 학문의 맛을 잠깐이나마 학생들이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나와 학생이 모두 즐거울 수 있을까. (일단 혼란스럽게 하는 건 효과가 없다는 것은 알았으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아야겠습니다.)



하나, 바람을 가져봅니다. 이번 학기가 끝나고 수업 노하우를 담은 글을 쓸 수 있기를. 작은 것이라도 좋아요.

[보따리 강사] 너와 내가 즐거운 수업을 쓸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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