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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Sep 19. 2023

[한국의 신화] 난 네가 우스워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뭘 해도 밉상인 사람.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허점을 까내리다, 그런 내가 싫어 짜증이 납니다. 어떻게라도 그 사람을 우습게 만들고 싶어 하는 못난 마음. 남이 미울 땐 나의 미움도 함께 마주하게 되는 게 참 야속하지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종종 사람들의 미운 마음을 만납니다. 누군가를 향한 실소가 가득 담겨 있는 글을 요 며칠 유독 많이 만났네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글에서 만난 미운 마음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언젠가 한 번쯤 '신화'가 무엇일까, 신화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궁금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신화를 정의하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 명확한 것이 있으니 바로 "사람들이 그 이야기가 신성하다고 믿고, 이야기 속 사건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알 속에서 사람이 태어나고, 걸어서 저승을 오고 가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펼쳐져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가 고결하고 거룩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화가 될 수 있습니다.


사이비 교주의 탄생 신화 같은 것들이 항간에 떠돕니다. 저 초라한 인간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그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 그 이야기는 고결하며 진실한 신화인 것이지요. 그러나 저걸 믿냐며 혀를 끌끌 차는 우리에게 그것은 고결하지도 진실하지도 않기에, 신화가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처럼 신화는 그 이야기를 전하는 삶에 따라 신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갑자기 신화의 정의를 왜 이야기했냐고요? 오늘은 다른 사람의 신화를 우습게 만들려 하는 못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요.



몇몇 성씨들은 족보의 첫 장에 성씨의 시조가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담은 신화를 싣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성씨 시조 신화라고 부릅니다.


여자의 집에 매일 밤마다 정체 모를 사람이 찾아와 하룻밤을 보내고 간다.
여자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자 아버지가 남자의 옷에 긴 실을 단 바늘을 꽂아두라 한다.
다음날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연못의 큰 용이 있었다.
여자와 용 사이에 아이가 생겨 태어났고, 그 아이가 새로운 성씨의 시조가 되었다.


위의 이야기처럼, 성씨 시조 신화에서는 용·동물과 같은 사람이 아닌 존재와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존재가 시조가 되었단 이야기를 쉽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옛날엔 동물이 신비한 힘을 갖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동물은 인간이 차마 가질 수 없는 자연의 이치와 풍요의 기운을 갖고 있는 영험한 존재였죠. 동물 무리의 왕은 한 가문 정도는 쉽게 멸망시키고, 흥하게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흥부전>의 제비가 흥부에게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고, 놀부를 망하게 한 것도 이러한 관념에서 생겨난 것이지요.


동물과 사람이 관계를 맺어 생긴 존재라 하면 지금의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동물이 영험하다 믿던 그때에, 동물-인간의 자식은 남다른 힘을 가진 특별한 존재였던 것이지요.


성씨 시조 신화는 우리 가문의 시작이 특별하다 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에 기대어 지금의 우리 가문의 위상을 드높이고자 전하고, 전하였을 것입니다.


자 그럼 못난 마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요?


ㄱ씨의 시조 신화는 ㄱ씨 가문 사람에겐 신화이지만, ㄴ씨 가문의 사람에겐 그저 재미있는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혹 ㄱ씨 가문을 탐탁지 않아 하는 사람이 그 신화를 보았다면? 비꼬아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시조 신화가 다른 성씨 시조 신화에는 못난 마음들이 가득 담겨있습니다. 네 시작이 불온하기에 넌 아무것도 아니라는 멸시의 시선.


정상 가족에 대한 사회의 집착이 가득하던 때에 편부모 가정은 손가락질을 받곤 했습니다. 특히나 미혼모를 향한 지탄은 어마어마했죠.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며 노래를 부르고, 엄마도 누가 네 아빠인지 모르겠다며 노래를 부르는. 흥겹게 아버지를 탐색하는 <맘마미아>는 한국 사회에서 탄생할 수 없었죠. <초공본풀이>나 <제석본풀이>의 삼 형제들처럼, 아비도 없는 자식이라 손가락 받는 게 슬프게도 더 자연스러운 사회였습니다.


사람들은 미운 마음을 담아 성씨 시조 신화를 비꼽니다.


한 여자가 아이를 임신했는데, 자신은 그 누구와도 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저 지난번 빨래를 할 때 조개가 자꾸만 자신의 팔에 붙었었을 따름이라고.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세상에 씨 없는 아이가 어디 있겠냐며 조개 자식이라 치자고 비웃으며 아이에게 조 씨 성을 붙여주었다.


영험한 아버지라는 존재는 순식간에, 사회적 지탄의 한가운데의 존재로 전환됩니다.


네가 신령한 존재의 자손이라고? 그럴 리가
그냥 아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거겠지

누군가가 자신을, 자신의 가문을 드높이고 싶어서. 그럼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어 합니다.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은 탐탁지 않아 합니다. 이야기를 빼앗아 와 우습게 만듭니다.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을 가득 담아서요. 멸시하고 비웃습니다.


신화가 신화의 맥락을 벗어났을 때 비꼼과 비웃음의 시각이 담기는 일은 너무 쉽게, 많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왜 이리 못됐을까요. 비꼼이 가득 담긴 이야기를 자꾸만 읽어야 하는 요즘, 사람들이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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