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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Oct 17. 2023

[한국의 신화] 친애하는 나의 감시자

조왕신과 어머니 2

스타들이 시골에서 세끼를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을 그린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예능 <삼시세끼> 산촌편의 프로그램 소개 문구입니다. 짧은 점심시간 동안 간단히 해결할 수도 있는 밥을 스스로 해 먹는 것이 주 콘텐츠라니! 그런데 프로그램을 보면 신기하게도 정말 삼시 세끼를 해 먹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훌렁 흘러갑니다.

자급자족의 삶에서 식사에 정말 많은 노동이 들었을 거라는 걸 우리는 이 예능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배달도 반찬 가게도 없던 시절, 음식은 당연히 어머니들의 몫이었던 그때 어머니들은 부엌에서 식탁에 오르는 모든 것을 만들었습니다. 밥, 반찬부터 고추장, 된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들었을까요.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분주히 부엌을 오갈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부엌은 어머니의 공간이라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그 곁에는 늘 어머니를 지켜보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물론 시어머니의 못마땅해하는 눈초리였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러한 시어머니도 감시하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조왕신입니다. 조왕신은 부뚜막에 있다고 여겨지는데요. 부엌을 관장합니다. 부엌이 바로 조왕신의 영역인 셈이지요. 그러니 부엌에서 사부작사부작 움직이면 조왕신은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신마다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그중에서도 조왕신은 까탈스럽고 무서운 신의 대표 격입니다. 그래서 부엌에서는 조왕신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심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빗자루질을 부엌 안쪽으로 한다던가, 부뚜막 위에 칼을 올려놓는다던가, 뒷간(화장실)에 있던 물건을 부엌에 가져온다던가 하는 것이요. 혹시나 이러한 금기를 어긴다? 조왕신은 화를 내며 그 집안에 벌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들은 아차차 조왕신이 노하실라 하며 조심조심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금기들이 어쩐지 납득이 가지 않나요? 빗자루질을 부엌 안으로 하면 먼지가 날리니 음식에 먼지가 들어가겠지요. 부뚜막 위에 칼을 올려두면 위험하고요. 화장실의 물건을 부엌에 가져오는 것은 비위생적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금기들은 '신이 싫어하기 때문에'라는 포장을 하고 있을 뿐, 그 근원은 실리적인 이유에서 생겨났을 것이라고 본답니다.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고든 램지가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지르는 모습 혹은 요리사 간의 군기가 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부엌에는 위험한 물건이 많으니까'라며 납득하곤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부엌엔 불, 칼 같이 위험한 물건과 위생의 문제가 있으니 금기로 조심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씁쓸합니다. 조왕은 어머니의 편이 아닌 것 같거든요. 조왕은 어머니에게 가장 가까운 신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많은 걸 비는 존재이지요. 그런데 어머니는 조왕에게 남편과 자식의 안위와 건강을 빕니다. '우리 남편 이번 일이 무사히 잘 끝나게 해 주세요.' '멀리 군대 간 우리 아들 무사히 전역하게 해 주세요'. 어머니의 소원은 어머니를 비껴갑니다. 그리고 조왕은 어머니에게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라고 엄격하게 굴지요.

남편과 자식의 성공이 곧 어머니의 성공이었고, 어머니의 역할은 '내조'에 한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주 개인적인 바람은 없었을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하물며 작은 아이도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어머니라고 없었을까요. 그러한 맥락에서 저는 '가족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고귀한 존재이자 희생하는 존재라고 외치는 말들 속에서 혹 자신의 바람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삭였을 모습이 먼저 떠오르거든요. 희생적 어머니상과 자신을 겨누며 더 스스로를 갉아내었을 어머니를 말입니다.

어머니가 가장 친애하는 신, 조왕. 하지만 그마저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않는 삶. 고단한 삶 속에서 수없이 삼켰을 쓴맛을 떠올려 봅니다.


'희생적 어머니상'의 신화 속에서 삼켰을 자신에 대한 바람은 무엇이었을까요? 어쩐지 아무도 물어보지 않고 기록하지 않았던 듯합니다. 그저 대단하다 멋있다 하기만 하였지요. 그 말이 진심을 삼키게 하는지도 모르고요. 이제는 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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