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으그흐 Oct 24. 2023

[한국의 신화] 화장실엔 귀신이 사는 이유

측신

화장실 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셨죠?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버튼을 누르는 양변기를 떠올린다면 조금 상상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럼 버튼을 누르면 귀신도 딸려 내려가는 걸까? 아니면 해리포터의 모우닝 머틀처럼 물속에서 다시 솟아오르고 다시 들어가고 그런 걸까 하고.


저는 어렸을 때부터 절에 다녔는데요. 그곳에 푸세식 변기가 있었습니다. 쪼그리고 앉으면 슈웅하고 산바람이 오물의 냄새를 싣고 올라왔지요. 엉덩이에 닿는 차가운 기운에 오소소 소름이 돋곤 했습니다. 아득히 멀고 어두워서 꼭 저기에 무언가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죠.

옛사람들은 집의 공간마다 신이 산다고 믿었잖아요. 화장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곳엔 측간신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섭고 까탈스러운 신이어서 놀라게 하면 안 된대요. 헛기침을 하거나 문을 두드려 들어갈 거란 걸 알리고 화장실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나 화장실에 빠지면 측간신에게 똥떡을 해서 올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똥으로 만든 떡이 아닙니다!) 놀라게 해서 죄송하다고 봐달라고 비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동티가 나 죽기도 했거든요.


이렇듯 무서운 존재였음에도 어쩐지 측간신에 대한 대접은 영 섭섭합니다. 명절이며, 제사 때마다 다른 신들에겐 상을 차려 올리는데 측간신에겐 아무것도 대접하지 않았죠. 또 측간에 빠진 것 같은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측신에게 기도를 올리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측간신이라고 부르지 않고, 측간귀신이라도 부르기도 했답니다. 신이 아닌 화장실에 사는 조금 무서운 귀신이라 여긴 것이지요.


왜 측신은 홀대를 받았을까요? 더러워서요?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집에 사는 신들, 다시 말해 가신들은 성주를 가장으로 삼은 가족 관계를 갖습니다. 성주가 남편, 조왕이 부인.

그중에서도 측신은 첩이었습니다.


이런 내력은 제주도의 <문전본풀이>에 전합니다. 훗날 측신이 되는 노일저대귀일의 딸 줄여 노일저대는 먼 섬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섬에 장사를 하러 온 남선비를 만나 연을 맺었는데 어느 날 본부인이 찾아온 게 아니겠어요? 욕심이 난 노일저대는 웃으며 "형님 먼 길 오느라 힘드셨지요. 목욕이나 하러 갑시다."하고 본처를 물에 빠뜨려 죽입니다. 본부인의 옷을 훔쳐 입고 그녀인 척 남선비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요. 가족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욕심 많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그녀는 훗날 벌을 받듯 남선비의 아들들에게 사지가 찢겨 죽습니다.


이러한 내력을 갖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존경하지 않았지요. 게다가 첩이라니 더하지요. 가족이지만 가족 대접을 못 받는 존재. 존재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움과 경멸이 떠오르는 존재. 화장실도 그렇잖아요. 오물, 더러움, 냄새.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찡그리게 되지요. 그럼에도 집에서 없앨 수 없지요. 그런 점에서 첩과 화장실은 닮았습니다. 멀리 있었으면 하는, 가능하다면 없으면 하는 대상. 그래서일까요 사람들은 화장실에 있는 귀신은 첩이라며 미워했습니다.


그런데요 중국에서 측신은 제법 대접을 잘 받았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오물은 재산이었습니다. 비료로 쓰였으니까요. 사람이 배출한 오물은 좋은 거름이 되어 농장물을 쑥쑥 자라게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화장실에 가득 담겨 있는 오물이야 말로 풍요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소중한 자산이었을 겁니다. 그 가치를 높이 산 것이지요. 지독한 냄새는 잠시 미뤄두고요.

전통사회의 한국도 농경사회였기에 오물은 귀중한 자산이었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큰 볼일은 집에서 보았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렇듯 오물의 가치를 알고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냄새, 더러움이 더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그래서 측신은 대접도 하지 않고 첩이라며 수근수근 흉을 보았나 봅니다.


누군가가 싫을 때 흠을 잡아 얕잡아보고 싶을 때 우리는 핑곗거리를 찾곤 합니다. 화장실이 싫은데 필요하니까 이유를 찾는 거죠. "아니 내가 그냥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고. 이유가 다 있다니까"하고, "첩이니까. 응당 미워할 수밖에"하는 거죠. 그리곤 볼일이 보고 싶을 땐 화장실을 찾고, 때가 되면 오물을 거름으로 뿌립니다. 측신의 흉을 봅니다. 그러다가도 헛기침을 해서 측신이 놀라지 않도록 합니다.

고마움보다는 미움을 앞세우면서도 아닌척하는 이중적인 모습. 이야기로 진심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마음이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한국의 신화] 친애하는 나의 감시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