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연인>과 열녀전설
*이 글은 드라마 <연인> 시즌2의 내용을 다소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최근 드라마 <연인>에 빠져 있습니다. 시즌2가 시작되고 길채가 구릅니다. 어째 장현과는 계속 엇갈리기만 하고, 그 순간에는 “내가 드라마를 잘못 잡았구나.” 생각했답니다. 제가 이 전에 푹 빠졌던 드라마가 <스물다섯 스물하나>였거든요. 결말에 꽤 큰 내상을 입고 다음엔 꼭 꽉 닫힌 해피엔딩의 드라마를 잡으리 생각했건만, 이번에도 심상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행복한 결말을 원하기에 작가님을 믿어보렵니다. 어떻게… 해피엔딩 안될까요?
오늘은 드라마 <연인>을 보다 떠오른 단상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청나라 포로 사냥꾼에 쫓겨 여성들이 달아납니다. 그러다 절벽에 다다릅니다. 한 여인이 말합니다.
“잡히면 몸이 더럽혀질 거야. 그러니까 차라리.“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집니다. 또 다른 여인이. 또 다른 여인이.. 한 여인이 망설입니다. 그러자 다른 여인이 말합니다.
“더럽혀진 몸으로 돌아가면 부모님께 죄를 짓는 거야. “
길채가 말하죠.
“내가 살고 싶다는데 부모님이 무슨 상관이야? “
여인들은 분명 스스로 몸을 던졌지만 이건 자살이 아닌 타살처럼 보입니다. 절벽으로 몰린 여인들은 오랑캐가 저지를 폭력 그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수치심보다, 그것을 견디고 살아남아 집으로 돌아갔을 때 자신을 향할 사람들을 말을 떠올립니다. 그 말들이 비수같이 가슴이 꽂혀올 것을, 또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향할 손가락질을 상상하곤 ‘차라리’하며 자살을 선택합니다.
목숨보다 ‘정절’을 우선시하는 관념이 지금의 시선으론 참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우선하는 이념이 있을 수 있을까요?
정절이라는 관념은 조선에서 큰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점점 강화되었고,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정도도 강해졌습니다.
정절을 지키려다 죽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열녀전설’란 것이 있습니다. 열녀전설은 주로 전쟁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런데 내용은 시대에 따라 조금 달라집니다. 초기엔 적군에게 겁간을 당하거나 당할뻔한 여성이 수치심에 자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시간이 흐른 후에는 적군이 자신의 가슴을 만지자 가슴을 도려내고 죽는 이야기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신체 일부의 접촉이 곧 정절의 훼손이자 삶의 가치의 상실이라고 나아가는 것이죠.
열녀 전설 속 여성들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죽음을 선택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이것이 주체적 ‘선택’이었을까요? <연인> 속 여성들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과 멸시가 벌떼처럼 몰려올 게 떠올라 삶을 포기해 버린 것이 아닐까요? 죽는다면 주변 사람들이 ‘절개를 지키려고 목숨을 버렸다’며 칭찬이라도 할 테니까요.
여기서 잠시 그림을 하나 보고 갈까 합니다.
들라크루아의 <사르다나팔의 죽음>이라는 작품입니다.
벌거벗은 여성이 죽어있고 또 죽임을 당하고 있죠. 그런데 한 남성이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시리아의 왕 사르다나팔루스가 전쟁의 패배를 직감하곤 자신이 소유하던 모든 노비와 보물과 함께 장작 더미에 올라 타죽었다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입니다. 내 것을 빼앗기느니 모두 없애버리겠다는 처절한 욕망이죠.
여기서 여성들은 완전히 사물화 됩니다. 그들은 하나의 인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왕의 소유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빼앗기지 않으려 보물을 태우듯, 여성을 죽입니다.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은 잊은 채 하나의 소유물로서.
열녀전설 그리고 환향녀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듭니다.
그녀들의 삶과 생명 따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저 더럽혀진 대상일 뿐.
전쟁 시기에 유독 열녀전설이 많이 생겼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환향녀라는 말도 병자호란 때 생겨났잖아요. 전란 속에서 많은 여성들이 폭력 속에 노출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적군은 먹을 것과 재물을 약탈하며 여인들을 유린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모두 아군이 졌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환향녀‘라는 말과 함께, 온갖 역경을 견디고 집으로 돌아온 여인을 비난한 이유가 무엇일까를 탐구한 연구에선 이렇게 말하더군요. 당시 사람들에게 ‘환향녀’는 그들의 패배와 무능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라고요.
자신들의 무능을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살아 돌아온 이들을 비난하고, 비웃으며 부정하는 것이지요.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거기서 유린당한 저들의 잘못이라고요. 국가의 난리로 말미암아 개인이 폭력을 당했건만, 이걸 ‘정절’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이 대응했어야 하는 문제로 바꿔버린 거죠.
이런 점에서 저는 드라마 <연인> 속 길채의 행보가 참 좋았습니다. 환향녀로서의 생존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보여주면서도, ‘오랑캐에게 욕을 당한 길채’도 길채라는 걸, 소중한 한 사람이란 걸 이야기해 주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