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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Nov 11. 2023

80세에도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

완창판소리와 KBS2 <골든걸스>를 보고

오늘 국립극장에서 완창판소리를 보고 왔어요. 신화를 주연구분야로 삼고 있지만 연구의 뿌리는 분명 구비문학에 있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판소리와 창극 공연을 챙겨 보며 구비문학 전반에 대한 안목을 키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완창판소리를 보러 갈 때는 도전한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전통 판소리에 익숙하지 않은데, 그걸 3시간 4시간씩 볼 수 있을까? 두려웠죠. (완창판소리는 길면 8시간이 걸리기도 하지만 국립극장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완창판소리는 소리꾼과 관객 모두의 컨디션을 고려해 3시간 내외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국립극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조금 가벼웠습니다. 오늘은 <흥보가>였는데요. 흥보가는 비교적 가볍고 재미있는 장면이 많은 편에 속하거든요. 또 이야기도 익숙하고, 유명한 대목이 많아 소리(음악과 가사)도 잘 알고요. 그래서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오늘 완창 판소리의 소리꾼은 정순임 명창이었습니다.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의 보유자이신데요. 무려 1942년생, 그러니까 올해로 82세이시랍니다. 너무 고와서 나이가 잘 실감 나지 않았는데요. 처음에 무대에 서셔서는 목이 까끌하다. 소리가 힘들다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 조부모님의 80대를 떠올리며 그래 저 연세에 무대에 선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것이라 생각했죠.


오른쪽이 정순임 명창 그리고 왼쪽은 사회를 보신 송지원 선생님


1시간 10분의 1부가 끝나고 잠시간의 쉬는 시간을 가진 후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고운 옥색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시더군요. 그리고 노래를 시작하는데 눈물이 고였습니다. 1부가 준비운동이었던 것일까요. 지친 기색 하나 없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에너지로 가득 차 보였습니다. 그리고 얼굴엔 미소가 잔뜩 너무 행복한 표정으로 소리를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나도 80대에도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다면 너무 좋겠다.

그 나이에도 내가 나의 일을 사랑할 수 있으면 좋겠다. 행복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몸이 따라주면 좋겠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에 보았던 KBS2의 새로운 예능 <골든걸스> 중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골든걸스>는 박진영의 프로듀싱으로 최고의 가수인 인순이,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네 사람이 걸그룹으로 컴백하는 여정을 담은 예능입니다. 최고의 커리어를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요. 새로운 것을 향한 두려움 그리고 안주하고 싶은 마음을 부수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어마어마한 실력을 만끽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묘미입니다.

두려움을 부수며 나아가는 네 사람에게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나이입니다. 특히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신체검사를 해보았더니 맏언니인 인순이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런 인순이를 보고 박진영이 말합니다.

"저 누나는 가수를 오래 하고 싶어 하는구나"

그 말에 쌈을 우물거리며 인순이가 대답합니다.

"난 오래 하고 싶어"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것을 오래 하고 싶어 하고. 오래 하기 위해 몸을 관리하는 것. 그게 너무 멋지단 생각이 들었어요. 날 돌볼 만큼 사랑하는 일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멋지잖아요.


저는 일 하는 걸 좋아합니다. 되돌아본다면 10월은 종종 운동을 하거나 공연을 보러 가는 시간을 제외하면 모든 시간이 일로 가득했습니다. 가끔 사는 게 뭘까 싶고, 몸이 갈려나가는 것만 같았지만 꽤 즐거웠어요. 그런데 이렇게 평생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해 보려고요. 저는 인순이처럼 오래 일하고 싶고 또 정순임 명창처럼 80대에도 즐겁게 일하고 싶거든요. 어떻게 하면 일에 갉아먹히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을까요? 고민하며 일하다 보면 그렇게 일하고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다시 일거리를 펼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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