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열녀를 위한 장례식>을 보고
얼마 전에 연극 <열녀를 위한 장례식>을 보고 왔습니다. 극단 ‘글과 무대’의 신작으로 글은 진주님이, 연출은 이인수 님이 하셨습니다.
이 연극을 예매한 이유는 딱 하나였습니다. 고전소설 <박씨전>이 어떻게 쓰였는가를 이야기하려 한다며, 그 이야기는 한 열녀문에서 시작되었다는 거 아니겠어요? 고전소설의 연극화 게다가 열을 다룬다니, 이건 못 참지 하며 보러 갔답니다.
여러분 <박씨전>의 내용이 혹시 기억나실까요? 분명 한 번쯤은 읽어보셨을 거예요.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작품이니까요.
얼굴이 아주 못생긴 여인 박씨 있었습니다. 이시백의 아버지가 우연히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자신의 아들과 혼인을 시킵니다. 이시백은 박씨의 외모를 비하하며 그녀를 박대합니다. 그럼에도 꿋꿋이 박씨는 이시백이 장원급제를 하도록 돕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씨는 전생의 잘못을 청산하여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여인이 되지요. 그때부터 이시백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부인을 아낍니다. (저런)
그러던 때 병자호란이 발발합니다. 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가 항복하는 굴욕을 겪습니다. 박씨는 모든 일을 예견하였던 터라 용울대를 죽이고 용골대 또한 크게 벌하고 다신은 조선을 침략하지 않겠다는 약조를 받아내고 돌려보냅니다. 박씨는 왕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남편과 평안한 여생을 보냅니다.
<박씨전>은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부는 못생긴 외모를 지녔으나 현명하고 지혜로우며 예지력을 갖춘 박씨가 능력을 보이고 허물을 벗기기까지의 과정이고, 후반부는 그런 박씨가 능력을 발휘하여 병자호란의 치욕을 되갚아주는 내용입니다.
박씨라는 여성의 영웅적 행적이 그려지는 <박씨전>이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라는 질문에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병자호란 뒤 패배감과 현실적 고통을 타파하고자 한 민중들의 바람이 문학적 상상력으로 분출된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현실의 고통을 잊고 싶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 만들어진 작품이 바로 <박씨전>이라는 것이죠.
그래서일까요? 연극 <열녀를 위한 장례식>에서도 <박씨전>은 ‘사람들’에 의해 창작됩니다. 때는 조선, 어느 마을의 여인들은 글 짓는 모임을 합니다. 이 모임의 중심에는 떠돌아다니며 책을 파는 책쾌 조생이 있었습니다. 조생이 사라지며 함께 사라졌던 이 모임은, 조생의 딸 난이가 찾아오며 다시 시작됩니다. 그 속에서 ‘헌’이라는 새로운 인물도 모임의 구성원으로 맞이합니다.
이들은 글을 씁니다. 자신이 무얼 말하고 싶었는지를 들여다 보면서요.
글쓰기에서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글은 나의 생각을 담는 도구일 뿐이다.” 제가 글쓰기 수업에서 자주 하는 말입니다. 글은 도구이기에, 무엇을 담을지를 마련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해선 내가 무얼 말하고 싶은지를 꼼꼼히 탐색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지요.
<열녀를 위한 장례식> 속 사람들은 사회가 저어하는 글쓰기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 혹은 원하는 것을 꺼내어 <박씨전>을 짓습니다. 삼국지 마니아는 전술을, 로맨스 러버는 연애를. 그리고 자신들의 삶을 둘러싼 부당함을 하나 둘 더합니다. 그리곤 박씨가 그것을 이겨 나가게끔 하죠. 그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해 여인들 또한 자신들의 삶 속 각기 지니고 있는 부당함을 하나 둘 깨부숩니다. 마치 박씨가 허물을 벗듯, 자신을 둘러싼 관념을 깨고 나아갑니다.
<박씨전>이 연극에서와 같이 쓰였을 것이라 믿고 싶을 만큼, 이야기와 인물들의 삶은 꼭 맞아떨어졌습니다.
글쓰기는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고, 또 동시에 ‘나’를 알아차리게 함으로써 가로막는 것을 부수고 나아가게끔 해주기도 하지요. 이 연극에는 그런 글쓰기가 갖는 의미와 힘이 잘 담겨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얼 쓰느냐로 그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다니!
또 좋았던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신강수 배우님의 연기를 본 것이었습니다.
신강수 배우님이 연기한 ‘헌’은 가문의 장남이나, 장애가 있어 장남으로서의 역할을 박탈당하고 투명인간 취급을 받고 있는 존재입니다.
헌은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말합니다.
웃어도 된다. 허나 자신을 연민하지는 말라는 것이죠. 장애와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에 대한 글은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대면한 경험도, 또 그를 무대에서 본 경험은 더더욱이 없었기에 낯섦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조금 버벅거렸습니다. 그때 헌이 말해준 것이지요. 웃어도 되나 연민하지 말라고요.
그때부터 조금 긴장을 풀고 신강수 배우님의 연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특유의 리듬감과 여유로움. 그리고 유머러스함이 너무 좋았습니다. 오랜 기간 홀로 별채에 방치되었으나 크고 맑은 영혼을 가진 헌이라는 존재가 꼭 눈앞에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이 연극에서 만난 장애-비장애 그리고 성별 간의 경계가 사라지는 경험을 자주 할 수 있기를 또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