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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Nov 28. 2023

[한국의 신화] 끝까지 쫓아가 너를 죽일 거야

저승의 일잘러 저승사자 강림

가끔 웅얼거립니다. "신은 저런 놈 안 잡아가고 뭐 하나 몰라."

그 말에 저승사자는 이리 대답할런지도 모릅니다.

"저승 명부에 없으니 안 잡아가지."


사람은 어떻게 죽을까요? 의학적으로는 심장의 박동이 멈추는 것에서 시작하여 설명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신화 세계에서는 이렇게 죽습니다. 저승사자가 적패지라는 종이에 적힌 이름을 세 번 부릅니다. 그 순간 영혼이 육체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저승사자가 이름을 부르는 것, 그 순간에 죽음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저승사자는 그 누구의 이름도 마음대로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아는 저승사자는 굉장히 위엄 있고 두려운 존재잖아요. 저승사자를 생각하면 얼굴이 하얗고, 검은 옷을 입고, 갓을 쓴 무서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겁니다.(아쉽게도 이건 전설의 고향이 만든 이미지입니다만, 아무튼) 그러니 그가 죽을/죽일 사람을 마음대로 고르는 것일까요?

그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저승사자의 '사자'가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자는 사자(使者)로, 쉽게 풀이하자면 심부름꾼입니다. 우리는 저승사자가 죽음을 관장하는 무서운 존재라 생각하지만 실상 그는 저승의 명령을 그대로 행하는 심부름꾼인 겁니다.


그렇다면 죽음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요? 그건 저승에서 정합니다. 정확히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승에서 누구누구가 죽어야 한다고 결정을 하고, 그것을 적페지에 적어 주면 저승사자가 적패지를 들고 이승으로 향하는 것이지요. 회사에 빗대어 생각해 보자면 저승은 관리자급이고 저승사자가 실무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무를 하다 보면 늘 어려운 일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생각지 못한 변수가 끝없이 나타나고요. 저승사자에게도 여러 가지 고충이 있습니다. 여럿이 있지만 오늘은 '불멸'을 꿈꾸는 사람의 케이스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애쓰던 역사적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방삭입니다. 동방삭은 한무제 때 관리인데요. 서왕모의 복숭아를 훔쳐 먹어 죽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삼천갑자 동방삭'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동방삭이 무려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동방삭은 일명 장수의 아이콘이라 불립니다.


죽을 운명을 요리조리 피해 달아난 동방삭을 잡아 저승에 보낸 저승사자가 있습니다. 바로 ‘강림’입니다. 강림, 어디선가 들어보지 않으셨나요? <신과 함께>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바로 그 인물의 이름도 강림이었죠. 강림은 대표적인 저승사자입니다.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강림의 내력은 제주도에서 전해지는 신화 <차사본풀이>에 담겨 있습니다. 그는 본래 인간이었는데, 마을에서 갑자기 삼 형제가 죽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고을 원님의 명으로 강림은 그 사건을 해결합니다. 그 과정 중에 염라대왕이 강림의 유능함을 알아보고 그를 저승사자로 데려갑니다. 강림이 저승사자가 된 이유에서 알 수 있듯 그는 '유능한' 캐릭터인 거죠.


이 동방삭을 잡아올 때에도 강림의 유능함이 돋보입니다. 저승에서는 동방삭을 잡아오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렸습니다. 누구인지 알아야 이름을 부르고 데려올 수 있는데 동방삭이 누구인지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염라대왕이 강림에게 동방삭을 찾아오라 명합니다.


인간 세계에 간 강림은 동방삭을 잡기 위해 꾀를 냅니다.


강림이 냇가에서 숯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한 노인이 와 무얼 하냐고 묻습니다.
"숯이 하얘질 때까지 씻고 있습니다."
라고 하자, 노인이 화를 내며 말합니다.
"내 3천 년은 살았지만 그런 말은 들어보지를 못했네."
강림은 그 노인이 삼천갑자를 산 동방삭임을 알고 그를 잡아 저승으로 데려갔습니다.


강림은 저승사자들을 피해 무려 3천 년 동안이나 산 동방삭도 잡을 수 있는 아주 유능한 저승사자인 것이지요. 강림은 세상에 못된 사람을 마음대로 잡아갈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는 '사자'니까요. 그렇지만 저승에서 누군가가 죽어 야한다 하면, 그를 꼭 잡아오는 것이지요. 그러니 저승에서 권선징악을 실현해 주기를 바라야겠습니다. 유능한 강림이 생명을 거두어가는 일이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 있게요.


평범한 삶을 사는 우리도 언젠가 강림 같은 유능한 저승사자에게 잡혀 저승에 갈는지도 모릅니다. 그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분명 쫓아올 테니까요. 그러나 신화를 보면 아주 가끔 저승사자를 속이고 동방삭처럼 오래 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신화에 담긴 장수의 비법이 무엇인지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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