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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Jan 04. 2024

[보따리 강사] 조금은 즐거운 수업

2023년 2학기 대학 강의를 마치며

오랜만에 왔지요. 그간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실은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그럼에도 죽밥프로젝트 팀원들과의 약속 있기에, 오랜만에 죽이라도 쑤어보려 합니다.

언제쯤 시간이 나겠냐는 저의 말에 주변에서 앞으로 계속 바빠지기만 할 거라고 하더군요.  바쁨의 상승 그래프 속에서도 글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우리 다시 자주 만나요.




2023년도 2학기 수업이 끝났습니다. 이번 학기를 시작하며 ‘나만 즐거운 수업’을 하고 있다며, 학기 말엔 여럿이 즐거운 수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다고 했었더랬죠. 약속을 반쯤은 지킨 것 같아요.


저는 글쓰기 수업을 좋아해요.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마음을 기꺼이 꺼내어 보여주는 것이 기쁘거든요. 자신의 마음으로, 기억으로 풍덩 빠져 발견한 것을 글에 담아내고, 그걸 저와 공유해 주는 것이 기뻐요. 혹자는 그렇게 말할는지도 모릅니다.


“과제로 쓴 글이니까 교수한테 보여주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맞아요.

그런데요 글 속에서 학생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이걸 읽어주었으면 하는,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 (어떻게 아느냐고요? 제가 글을 읽은 가락이 얼마인데요. 그 정도는 알 수 있어요.) 만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내가 이 글을 읽을 것이라 믿고,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글감이 담긴 글들을 받을 때면 얼마나 기쁘고 고마운지 몰라요.

그래서 전 글쓰기 수업이 좋아요.


그러면서도 가끔 허망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를 탐험하는 매력을 알려주는 것, 학생들의 탐험을 응원하고 아주 가끔 도와주는 것 정도 밖엔 할 수 없거든요. 잘 해낼 거란 믿음 속에 지켜보다 가끔 알려주는 거죠.


“저기 네가 가는 곳에 전복이 있는 것 같은데?”

“호흡을 조금씩 나누어 뱉는다면 더 깊은 곳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전공 수업은 정말 달랐습니다. 꼭 시식코너를 운영하는 기분이었어요.


“여러분 유서 깊은 식품 회사에서 50년 전에 발견한 전통 레시피로 만든 만두! 한 번 드시고 가세요! 자 이건 물만두고요. 이건 김치만두입니다~! “


내가 사랑하는 학문의 매력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학생들의 입에 마구 넣어주었어요. 무표정한 얼굴을 마주하곤 조금 실망합니다. 그러다 또 신이 나서 마구 선보였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이 왜 좋은지를 이야기하는 건 참 즐거운 일이더군요. 너무 신이 나버려서, 오늘도 나 혼자 너무 신이 났었네하고 부끄러워하며 집으로 돌아온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학기가 끝나갈 때 즈음 눈을 반짝이는 학생들이 조금씩 늘어났어요. 동시에 수업을 포기해 버린 학생들도 생겨나더군요. 그제야 생각했어요. 모두가 즐거운 수업이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하더군요.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듯, 학문 또한 그러할 테니까요. 그래, 적어도 몇몇은 이 만두(학문)의 맛을 알았다면 되었다.

 

몇몇의 학생은 제게 말했듯, 정말 그 이야기가 재미있었을까요? 제가 알려준 그 공연을 보러 갈 것이라던 말을 지킬까요?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물어볼 수 없어요. 학교의 사정으로 그 학교와의 계약을 해지했거든요. 다음 학기는 나가지 않게 되었어요. 어쩌겠습니까. 저는 보따리 강사이기에 다시 보따리를 쌌습니다.


다음 학기에도 맛있는 만두를 만들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방법은 없으니, ‘이 수업 덕분에 이 학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를 주머니 속에 넣고, 또 시식 코너를 열 기회를 기다려야지요. 모두는 아니지만 조금은 즐거웠으니 되었다 하면서요.


언제쯤 다음 시식코너를 열게 될까요? 그전까지는 이 브런치에서 시식코너를 운영해 볼까 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유서 깊은 레시피로 만든 만두 드시고 가세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함께 빚던 그 만두! 드셔보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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