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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y 16. 2023

[한국의 신화] 불행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주풀이>

"가화만사성" 흔히 들어본 말이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데. 그럼 또 궁금해진다. 집안이 화목하다는 건 뭘까? 갈등이 없다면 화목한 걸까? 누군가가 인내하고 감내하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그만인 걸까? 서로 뜻이 맞고 정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렇게라도 '화목'하다면 모든 일이 잘 될까? 그러면 우리 가족에겐 불행이 찾아오지 않을까?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경기도의 <성주풀이>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이 신화는 가신(家神)의 내력을 담고 있다.

옛사람들은 대들보의 성주, 부뚜막의 조왕, 마당의 터주, 문의 문신 그리고 변소의 측신. 옛사람들은 집의 곳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독자 중에 문지방은 성주신의 목이니 밟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신들은 집의 곳곳에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이 잘 살도록 보살펴주고 또 외부로부터 집을 보호해 주었다.


신이 가족을 보호해 준다고? 무엇으로부터?


코로나가 한창일 때를 잠깐 떠올려 보자. 누가 만졌을지도 모르는 지하철 손잡이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때. 사람이 꽉 들어찬 쇼핑몰, 마스크를 벗고 왁자 왁자 떠드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에 들어갔을 때. 그럴 때면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에게 묻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며 마스크를 눌러쓰고 손을 박박 닦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땐 집 밖은 바이러스가 가득한 공포스러운 공간이었다.


옛사람들에게 바깥 공간은 꼭 그랬다. 부정, 액, 살과 같은 말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각각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사람을 아프게 하거나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나쁜 기운이라는 건 알 테다. 옛사람들은 길에 살, 액, 부정과 같은 것들이 떠돌아다닌다고 믿었다. 거기에 더해서 귀신도! 제삿밥을 받아먹지 못해서 굶주리고 그래서 사람을 해치는 그런 귀신이 길에 어슬렁 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은 바이러스처럼 보이지 않는다. 나와 우리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 것들이 문 밖에,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길 여기저기에 있었다.


신화에서 불행은 밖에서 찾아온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황우양이 집을 비운 사이, 황우양 부인을 탐낸 소진랑이 집에 찾아온다.
소진랑은 남편인척 했지만 황우양 부인은 속지 않았다.
그러나 소진랑은 무력으로 대문을 부수고 황우양 부인을 납치한다.
안심국형 <성주풀이>


소진랑은 부인을 납치해 가정을 풍비박산 낸다.

황우양 부부는 어쩌다 이런 불행을 맞이했을까? 이쯤에서 이 글의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자. "집안이 화목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누군가가 인내하고 감내하더라도 싸우지 않으면 그만인 걸까?"


황우양 부부는 언뜻 보면 화목해 보인다. 부인은 남편을 진심으로 위하며 성심성의껏 돌보고, 황우양은 대외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최고의 목수다. 전통사회에서 이야기하는 아내의 내조, 남편의 사회적 명망을 두루 갖추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화목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황우양 부인은 남편에게 길에서 누가 시비를 걸더라도 절대 대답을 하면 안 된다며,
만약 대답한다면 자신을 잃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황우양은 대장부가 길을 떠나는 데 아녀자가 잔소리를 한다며 그 말을 무시한다.


부인은 소진랑이 찾아올 것을 알고 남편에게 조언하지만 황우양은 "남편이~" "부인이~"를 시전 하며 무시한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 황우양은 소진랑의 말에 대꾸 하고, 그 결과 소진랑은 황우양 부인을 납치한다.

이 가족의 불행은 소진랑이 행하였으나, 그 불행의 원인은 황우양이 부인의 말을 무시한 것에 있다고 하겠다.


황우양 부인은 현명하고 비범하다.

소진랑이 찾아올 것을 아는 예지력, 집을 지으러 떠나는 남편에게 필요한 연장을 제작하는 기술, 소진랑을 물리칠 방법을 아는 지혜. 그에게는 황우양에게는 없는 수많은 능력이 있다.

황우양은 부인덕에 '바깥일'을 하러 떠날 수 있었으면서도 부인의 말을 "대장부의 앞을 가로막는 아녀자의 잔소리"로 취급한다.


그 결과 이들에겐 불행이 찾아왔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최근 들어 주부의 가사 능력이 재평가받고 있다. 가사의 노동으로서의 가치를 법적으로 인정받기도 했다. 그러나 필자의 부모님 세대만 해도 그러지 못했다. 주부를 9단이라 추켜세우면서도 그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이를 키워내는 일 또한 마땅히 해야 할 것이었을 뿐이었다.

어머니들의 지혜와 기술은 아버지의 바깥일 앞에선 하찮은 것 취급을 당했다. "내가 얼마를 벌어오는지 알아"라는 말 앞에서 어머니들은 입을 닫고 인내함으로써 집안의 화목을 지켰다. 싸우지 않지만 누군가는 분명 괴로운 화목.


우리는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삐그덕 거리면서 산다. 오늘은 내덕에 내일은 네덕에 집 밖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불행을 막아내고 물리친다. 그러나 그 바퀴가 맞물리지 않을 때. 아니 정확히는 맞물리고자 하지 않을 때. 황우양이 부인의 말을 무시하고 부인이 그것을 인내한 것처럼, 나의 바퀴의 위용을 과시하고 상대의 것을 얕잡아 볼 때 불행은 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다. 소진랑이 황우양의 집에 쳐들어온 것처럼.


이때 불행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집 안일까 밖일까?


자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져보자.

싸움은 없으나 누군가는 인내하는 화목이라면, 과연 "가화만사성" 한가?

<성주풀이>는 아니라 말한다.


여러분 곁의 누군가는 목소리를 삼키고 있지 않은가?
화목이 누군가의 인내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질서에 자꾸만 질문을 던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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