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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그흐 May 09. 2023

[한국의 신화] 부동산 혹은 우주

성주풀이

작년에 주인이 집을 내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다. 재미있게도 그 사람들은 수압, 곰팡이, 배수, 벌레 같은 걸 확인하지 않았다. "자취방 체크리스트"라고 검색만 하면 알 수 있는 필수 확인 요소를 왜 보지 않느냐고? 이유는 단순하다. 그 사람들은 이 집을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니까.


나는 집에 대한 애착이 크다. 몇 년을 살지 모르지만 '우리 집'이니까. 내가 살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 여기저기 손을 보고, 가구를 꼼꼼히 배치했다. 마음을 가득 쏟은 덕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은 안락하고 편안하다.

그러나 수많은 집주인 후보들에게 집은 그저 물건이고 투자처였다. 그들에게 집에 사는 사람과 그곳에서의 삶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가격이 오를지, 세입자는 쉽게 구해질지, 잘 팔릴지만 중요했다.

나의 몇 해가 담긴 이 작은 공간의 소중함을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전세사기, 깡통전세 같은 집을 곧 물건이자 돈으로 보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조금씩 화가 났다.


하지만 나의 화는 아무런 힘이 없어 그냥 가만히 누워 생각했다.

집이란 무엇일까. 집은 왜 소중할까.

그러다 한국 신화에서 보았던 집의 기원이 떠올랐다.


집의 곳곳에 살고 있는 신에 대한 신화는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 부산에서 채록된 <성주풀이>에 집의 기원이 전한다. 자 그럼 <성주풀이>를 한 번 들여다보자


세상이 생겨나고 신들의 세계엔 온갖 이치가 생겼다.
서천국왕 부부의 아들 안심국이 자라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니
밥 나무에 밥이 열고 옷 나무에 옷이 열고  
짐승이 사람 말을 하고
사람들은 집이 없어 풀 속에 살고 있었다.
안심국은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고자 하늘에서 소나무 씨앗을 가져와 인간 세상에 심었다.


세상이 막 생겨난 후 신의 세계에는 온갖 이치가 생겨났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는 질서도 문화도 없어 사람과 동물이 한데 섞여 자연 속에 살았다. 그런 인간을 딱하게 여긴 안심국은 인간 세계에 소나무 씨앗을 가져다 심고 집을 지어주고자 했다.

신이 인간을 위해 가져다준 문화. 추울 때는 따뜻하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이 선물해주려 한 것. 그것이 바로 집의 기원이다.


신이 선물해 준 것이니 소중히 하자는 시시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재미있게도 신이 지어준 집에는 다른 것도 깃들어 있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안심국의 삶을 조금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


솔씨를 심고 돌아온 안심국은 부인을 박대하고 주색에 빠져 국사를 게을리했다.
안심국의 방만한 생활은 서천국의 국법에 어긋났고 안심국은 신하들의 청으로 유배를 간다.
유배지에서 안심국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와 화목한 가정을 꾸린다.


인간에게 있어 안심국은 자신들을 가엽게 여길 줄 아는 선량하고 고마운 존재다.

그러나 가족에게 있어 안심국은 방탕한 게 노느라 부인을 박대하고 일을 게을리하는 나쁜 가장이다.

능력만 있다면 인성 따위 아무래도 괜찮은 걸까, 나한테 나쁘게 굴지 않았다면 괜찮은 걸까? 우리는 안심국을 어떤 신으로 이해해야 할까.

다행히도 안심국의 해이한 삶은 서천국의 국법에 어긋나는 것이었고, 그는 법적 처벌을 받고 반성한다.

우리는 흔히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하지만 안심국은 변했다. 완벽한 가장으로.


돌아온 안심국은 부인을 아끼고 사랑하였고, 슬하에 무려 열 명의 자식을 둔다.

이렇게 대가족을 꾸리고 나니 소싯적 인간 세계에 심었던 소나무가 무럭무럭 자라 집을 지을 재목이 되었다.

안심국은 가족을 이끌고 인간 세계로 가  소나무를 베어 집을 짓는다.


집 짓기를 위한 연장을 만들고 연장으로 나무를 벤다. 집터를 다진 후에 집을 짓는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이 집의 뼈대를 '윤리'로 세운다는 것이다.


오행으로 주춧돌을 놓고
인의예지로 기둥을 세우고
삼강오륜으로 들보를 얹는다


필자는 이 부분을 이중 건축이라고 해석한다.

안심국이 나무로 짓는 물리적 건축과 윤리로 짓는 도덕적 건축을 동시에 한다.

물리적 건축과 도덕적 건축은 동시에 이루어지며, 이 둘은 구분되지 않는다.

신은 집이라는 작은 우주를 만들었다.


집에서 산다는 것도 신의 건축처럼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집은 외부의 날씨는 물론 벌레를 비롯한 온갖 물리적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준다. 집을 이루는 벽, 바닥, 문과 같은 물리적 요소가 주는 보호 속에 우리는 살아간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곳에서 삶을 산다. 지금은 1인 가구의 수가 급증했지만, 옛날엔 대가족이 살을 비비며 살았다. 가족들은 싸우고 화해하고 함께 울고 웃었다. 서로를 미워하고 사랑했다. 어른은 죽음을 맞이하고 아이가 태어났으며, 아이는 가족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한 명의 어른으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집이라는 작은 우주 속에서 끊임없는 생명의 순환을 겪으며 살았다.


안심국이 사람들에게 선물해 준 것은 비단 건물뿐이 아니었다. 그는 짐승이 사람말을 하고, 옷이 옷나무에서 열리는 무질서한 인간 세상에 윤리 즉 함께 살아가는 법을 전해주었다. 집의 뼈대를 윤리로 지음으로써.

안심국이 방탕한 생활 탓에 유배까지 다녀왔단 사실이 신화에 담아야 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는 인간 세계에 집을 가져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를 함께 전해준 신이니까.

이렇듯 집의 기원은 집에서의 삶과 떼어 놓을 수가 없다.


깡통전세의 피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러는 한편 돈을 적게 들여 부동산으로 돈 버는 법은 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투자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노동의 대가로는 축적할 수 없는 부의 크기와 힘을 안다. 다만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집은 분명 물건이지만 그곳엔 분명 사람이 살고 있다고. 그 형태가 어떠하든 누군가의 시간과 잠과 잠시 잠깐의 삶이 담겨 있다고.


그러니 집을 한낱 물건으로만 보지는 않았으면,
집이 작은 우주임을 기억해 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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